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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예술의 빛으로 세상을 비출 등대, 현대무용

데스툴(Derstuhl) 카페, 신인 유망주 이효정 안무가의 ‘홈(HOM)’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19]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12월 20일 저녁 8시와 9시 연희동에 있는 데스툴(Derstuhl) 카페에서 현대무용 작품 ‘홈(HOM)’이 선보였다. ‘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필자는 목구조에서 부재와 부재를 끼워 넣어 연결하기 위해 안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 생각났다. 또, 영어로 ‘홈’은 ‘집’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연달아 나면서 두 단어의 기묘한 연관성이 무엇일지 궁금함을 가지고 공연장으로 서둘러 출발하였다.

 

이효정 안무가는 홈에 관하여 한국어로는 움푹 들어간 부분의 ‘파인 공간’, 영어로 ‘집’을 뜻한다며 두 단어 모두 ‘안정’을 의미한다고 소개하면서 여성들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가장 친밀한 공간인 집에서 육체노동으로 인해 피로가 쌓이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공연은 모두 네 군데의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관객들은 공간을 이동하면서 관람하였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한 무용수의 불안정한 움직임에서 시작하여 네 명의 무용수들이 각각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동작을 선보였다. 무용수들은 공연 내내 무표정으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모든 관절을 사용하며 거칠고 투박하게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마치 필자가 집안일을 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서둘러서 집안일을 끝내지 않으면 다른 일에 밀려서 못하거나,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힘들어도 멈추지 못한다. 필자에게 집안일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집에서 아내이자 엄마이다. 필자가 잠깐 집안일을 손에 놓으면 집안은 엉망이 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부탁할 수 있지만 자발적으로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어릴 적부터 필자는 집안일은 엄마의 일이고 아내의 일이라는 무언의 주입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명절에 친척들과 모이면 어린 여자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식재료를 다듬거나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거나 어린 동생들을 돌본다. 당연하듯 여성들은 명절 내내 주방에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노동한다.

 

 

어린 마음에 필자가 가져다 둔 음식을 받아먹는 남자 사촌들이 얄미웠지만 막상 내 옆에서 식재료를 다듬으라는 말을 할 생각을 못 했다. 여성 어른들을 따라 당연한 듯 주방의 일이 여성의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집안일은 특정 여성이 아닌 그 집을 사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일이 당연함에도 말이다.

 

테이블에 기어오르기도 하고 벽과 마주하기도 하며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쉼 없이 거칠게 춤을 추다가 무용수들은 모두 처음 시작한 공간에서 모여들었다. 길게 땋은 머리를 조용히 밟기도 하면서 모두 줄을 지어 앉기도 하고 서로 기대며 이내 춤을 마무리하였다.

 

우리나라는 2023년 12월 기준, 남자 49.8%, 여자 50.2%로 여성의 인구 비율이 0.4% 더 많다. 그럼에도 사회는 여성들을 ‘소수자’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소수자는 사회적 소수자를 뜻한다. 주류집단과 구별하여 인종, 성별,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차별이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영역에 배제되거나 억압을 받는다.

 

 

이효정 안무가는 “안정적이라고 믿어왔던 집이라는 공간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과 억압의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여성들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겪어온 피로와 한계, 그리고 정신적 고통의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 구조에서 여전히 소수자들인 여성들이 겪는 불안정성과 억압이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함께 극복해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서로 손을 맞잡고 연대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예술가는 사회의 변화를 마주하며 느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예술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술가의 시선은 조금 더 진보적이고 앞서간다. 예술가들의 사회에 관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 작품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끌어갈 철학과 방향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이러한 면에서 예술가는 사회의 이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공연을 보며 앞으로 이효정 안무가가 사회에서 느낄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예술로 표현할 때마다 사회의 올곧은 길을 밝게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앞으로의 이효정 안무가의 활발한 작품 활동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이효정 안무가는 서울예술고등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였다. 이효정 안무가는 ‘홈(HOM)’에 참여한 무용수는 안유진, 권용희, 김정윤, 설은주, 하연주며, 사진 김나현, 영상 현석현, 그래픽 디자인 김예진, 의상 인앤양 인 하모니, 음악 Nadine byrne, 공간제공 데스툴(Derstuhl)이 함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