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지금도 삼정사의 가람과 부속건물들은 규모가 커서 넓디넓은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 텐데 오오토모 씨가 창건할 당시에는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가질 않는다. 특히 지금은 삼정사 경내와는 다소 벗어나 있는 신라선신당까지 모두 삼정사 안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의 가람크기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의 큰절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삼정사에서 눈여겨 볼 곳은 아무래도 신라인 원진스님의 무덤인 당원(唐院)과 우물 그리고 범종일 것이다. 중요문화재인 절 입구의 인왕문에서 걸어 들어가면 우리나라 대웅전에 해당하는 금당이 나오고 금당을 따라 올라가면 역대 일왕들이 태어났을 때 사용한 우물인 삼정의 영천(三井 靈泉)인 아카이야 (閥伽井屋)가 나온다. 그 길로 곧장 올라가는 길에 영종당(靈鐘堂)이 있는데 여기에는 나라시대의 종으로 알려진 커다란 범종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 지증대사 원진이 잠들어 있는 당원 입구
이 범종은 삼정사와 쌍벽을 이루던 연력사 승려들이 산문파(山門派)와 사문파(寺門派)로 갈라져 싸우던 시절에 변경이라는 스님이 윗 절인 연력사로 가지고 갔는데 종을 칠 때마다 ‘돌아가고 싶다’라는 소리를 내어 그만 계곡 아래로 던져 버렸는데 그때 긁힌 자국이 지금도 선명하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종이다.
범종각을 나와 바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일체장경이란 커다란 건물과 만나는데 이곳은 정말 예사로 지나 칠 수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이곳에 고려대장경인 일체경이 모셔져 있기 때문에 필히 들러봐야 할 곳이다.
삼정사에 고려대장경이 있다하면 놀라겠지만 분명히 이곳에는 고려대장경이 모셔져 있다. 고려대장경은 대형 팔각윤장(八角輪藏) 속에 모셔져 있는데 이 대장경이 이곳으로 온 사연은 풍신수길의 5대 참모 중 하나인 모리데루모토(毛利輝元)가 1602년 야마구치현(山口縣) 국청사(國淸寺)에서 가져온 것이다.
▲ 고려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장경각 |
경장 안은 자유롭게 들어 갈 수 있는데 고려대장경이 있다는 말에 놀라 들어가서 한참이나 팔각윤장을 뚫어져라 바라다보았다. 원래 있었다던 국청사에는 무슨 사연으로 건너갔으며 모리장군은 왜 시가현의 삼정사까지 고려대장경을 가져온 것인지 자세한 내력은 밝혀져 있지 않아 훗날 그 내력을 알아보기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산산이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조선의 유물들은 이렇게 시가현의 고찰 삼정사 경내에까지 와있어 나그네의 마음을 심난하게 한다. 경장을 빠져나와 당원(唐院)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일본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조탑인 삼중탑을 볼 수 있다. 지진이 많은 나라여서 인지 한국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탑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삼중탑이나 오중탑 같은 목조탑이 일본절에는 많다.
지증대사의 원진스님의 무덤을 둘러보고 나와 지친다리를 좀 쉰 다음 찾아가야 할 곳이 바로 신라선신당이다. 500엔의 입장료를 내고 삼정사를 들어갈 때 나눠주는 절 안내장에는 삼정사 경내 오른쪽 위에 신라선신당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삼정사 경내 소속이 아니다.
▲ 신라선신당 본전 앞에서 일본유적답사단과 글쓴이 |
드넓은 삼정사 경내만 돌아봐도 다리가 아플 지경인데 경내를 벗어난 신라선신당까지 걷기에는 다소 힘이 부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택시를 탈거리도 아니고 다른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삼정사에서 나와 정문에서 밖을 향해 서서 왼쪽으로 걸었다. 한 10여분 걸었을까? 큰 길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홍문왕 무덤이 나오고 그 위쪽에 신라선신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홍문왕(弘文天皇)은 일본의 39대 천황으로 1870년에 이르러 겨우 39대 천황으로 인정받은 왕이다. 말하자면 1870년까지는 천황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1192년 사무라이 정권에 권력을 넘긴 조정은 1868년 명치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무신들의 정권력에 눌려 그야말로 황실은 명맥을 근근이 유지할 뿐 황실 족보도 변변하게 갖추지 못할 지경이었다. 39대 홍문왕이 1870년도에 되어서야 천황으로 인정받아 황실족보에 오른 사실만 봐도 일본 황실가의 생활이 얼마나 곤궁하고 형편이 어려웠나를 짐작할 수 있다.
홍문왕 묘소를 뒤로 하고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단아한 돌로 세워진 도리이가 나오고 다소 어두침침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나무가 우거져 대낮에도 음습한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숲길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곧이어 안온한 양지쪽에 신라선신당 본당 건물이 당당한 그 위용을 자랑한다. 신사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도록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밖에서만 건물을 바라다보아야 하는데 신라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게 만드는 이곳을 찾은 날은 마침 한 무리의 일본 역사유적 답사단들도 찾아와 그들과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 신라선신당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안내판 앞에선 글쓴이 |
《삼정사연기(縁起)》에 따르면 ‘신라명신(新羅明神)은 원진스님이 당나라 유학 때 현신한 불법(佛法) 수호신으로 험난한 뱃길에서 무사 귀국한 원진스님은 삼정사를 짓고 신라명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절에서는 부처님만 모시지만 일본의 절에서는 같은 경내에 부처를 모시는 본당(대웅전)과 부처와는 다른 속신(俗神)을 모시는 신사(神社)가 사이좋게 존재했었는데 이러한 것을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한다. 그러나 명치유신 때 신불분리(神佛分離)정책에 의해 이후에는 사이좋게 한 경내에 있던 절과 신사는 따로따로 갈 길을 달리하게 되었다.
“지금의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은 오오츠 시청 서쪽에 있다. 일찍이 북원(北院)에는 신라선신당을 중심으로 많은 가람과 승방이 있었으나 명치유신 때 정부가 신라선신당과 페노로사묘(1853-1908, 미국인으로 일본의 미술을 서구에 소개함)가 있는 법명원(法明院)만 남기고 모두 헐어 버렸다. 2차대전후 미군의 캠프로 쓰다가 현재는 오오츠 시청과 현립 오오츠상업고교와 황자공원이 들어 서있다.”
이는 삼정사(三井寺, 미이데라) 누리집에 있는 신라선신당에 대한 안내문으로 당시에는 신라선신당이 무척 규모가 컸음을 말해준다. 원래 신라선신당이 들어서있는 이 일대에는 백제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 자리에 원진스님은 귀국 시 험난한 뱃길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 온 것에 감사하며 위험한 고비마다 나타나 자신을 보호해주던 신라명신을 위해 삼정사와 신라선신당을 세운 것이다.
이마이(今井啓一)교수는 《귀화인과 사사‘社寺’》에서 “신라선신당은 원성사의 오사진수(5社鎭守)의 하나로 북원(北元)에 속한다. 이 신사의 본존인 국보 신라명신의 신상(神像)은 산형(山形)의 관을 쓰고 갈색 도포를 입었으며 흰수염을 기른 모습이다. 이 분이 일본의 개국신인 스사노오미코토(素盞烏尊)이다. 이곳 신라선신당 보전(寶殿)에서 미나모토노요리요시(源賴義)의 아들 요시미츠(義光, 1045-1127)는 원복(元服, 나라시대 이후 남자의 성인식)을 했으며 성을 ‘미나모토(源)’에서 ‘신라사브로(新羅三郞)’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미나모토(源) 씨 가문이라고 하면 헤이안시대 이름난 무장집안이다. 가문을 중시하는 무가사회의 장수 집안 아들이 신라를 얼마나 흠모했으면 성씨를 바꿔 버린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 해질 것이다. 신라사브로 요시미츠는 명사수인데다가 말도 잘 탔던 인물로 전해진다.
내친김에 신라선신당을 나와 신라사브로의 무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선신당에서 나와 표지판대로 신라사브로 무덤을 향하여 걷다보면 호젓한 잡목림 길이 나타난다. 한낮인데도 잡풀이 우거져 음침하고 인적마저 뜸 한 곳이라 발걸음을 하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 곳이다.
무장집안의 아들이 성인식 끝에 아예 신라성으로 갈아버린 요시미츠의 무덤만 아니었더라면 중도에 포기 했을 것이다. 조붓한 언덕길을 느린 걸음으로 10여분 채 안되게 걸어 올라가니 신라사브로의 무덤이 눈앞에 다가온다. 미나모토에서 신라사브로라고 이름하나를 바꾼 인연으로 천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인 나는 그의 무덤을 보러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다. 질긴 인연이다.
비록 역사에서는 사라졌지만 한국인에게 신라 또는 고구려, 백제 같은 말들은 쉽게 잊힐 수 있는 낱말이 아님을 체험적으로 실감한다. 그래서 서울에서 오사카까지 비행기를 타고 또 몇 번인가의 차를 갈아타고 오오츠의 신라선신당까지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신라사브로의 무덤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돌계단을 밟으며 한국인 가슴에 흐르는 민족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음미해보았다. 이끼 낀 돌계단 하나하나가 옛 이야기를 말해 주는 듯 무심히 지나 칠 수 없는 세월의 계단으로 다가왔다. 시가현의 삼정사와 신라선신당 그런 곳이다. 부처의 이름으로 새겨진 옛 조상들의 발자취를 찾는 답사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의미가 깊다. 의미있는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다.
★찾아 가는 길
*주소 : 滋賀県大津市園城寺町246 (三井寺, 미이데라, 일명 園城寺, 엔조지)
*가는길: 오사카에서 JR니시니혼 도카이도혼센 ‘비와코센’ (JR西日本東海道本線‘琵琶湖線’)을 타고 오오츠에키(大津駅)에서 내려 케이한버스(京阪バス)를 갈아타고 미이데라(三井寺)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