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다섯 살에 와카(일본 고유의 시)를 짓고 열 살부터 한시를 척척 짓던 신동! 일본사람들이 말하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845~903)의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스가와라를 가리켜 ‘인간에서 신이 된 분이며 텐만궁의 천신(天神), 학문의 신, 문화의 신으로 영원히 일본인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 ‘인간에서 신’이 된 사람은 일본 천황 외엔 감히 넘볼 수 없는 말이지만 스가와라에게만은 예외다. 살아있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이라는 뜻의 현인신(現人神, 또는 現御神) 사상은 세계 2차대전에서 패전을 맞기 전까지 천황에 대한 일본 국민의 극존칭이었다.
▲ 일본 전국의 텐만궁 신사 앞에는 주인공 스가와라 미치자네와 관련이 깊은 검은 황소상이 있다
그러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한 히로히토왕은 이른바 ‘인간선언’을 통해 자신은 ‘신(神)’이 아님을 만천하에 고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내려와 시민들과 악수하고 체육대회에 참석하는 등 ‘인간세계’에서 살다가 간 사람이다. 천황도 신이 아니고 인간이 되어버리는 판에 유일하게 ‘명신(名神)’이 되어 일본 전역에서 떠받드는 주인공이 된 천만궁 신사의 제신(祭神)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자랑스럽게도 한반도계 출신 학자이다.
교토시에 있는 기타노텐만궁(北野天満宮), 후쿠오카시의 다자이후텐만궁(太宰府天満宮), 야마구치현의 호후텐만궁(防府天満宮)은 우리의 조상 스가와라를 모시는 일본의 3대 천신신사(天神神社)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후쿠오카의 다자이후텐만궁을 지난 주에 찾아갔다. 마치 늦가을 날씨를 연상케하는 그리 춥지 않은 12월의 다자이후텐만궁 안을 돌아보는데 한무리의 한국인 아줌마 부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 다자이후텐만궁 본전으로 가는 들머리(입구)
다자이후텐만궁의 유래와 역사 더나아가 고대 한국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는지 가이드는 후다닥 일행을 이끌어 본전(대웅전과 같은 중심 건물) 앞에 줄지어 놓고 사진 한방을 찍고는 서둘러 관광객들을 버스에 오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무엇을 보고 갔을까? 그 아줌마들은 말이다.
일본의 신사는 신사의 격에 따라 궁(宮), 대사(大社), 신사(神社)로 불리는데 스가와라를 모시는 텐만궁은 ‘일본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명치왕 사당인 명치신궁(明治神宮)에 버금가는 품격 높은 사당이다.
다자이후텐만궁에서 학문의 신으로 떠받느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태어난 것은 서기 845년 8월 1일로 아버지 스가와라노 고레요시와 어머니 오오토모 사이의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글을 또박또박 잘 읽어 신동으로 불린 꼬마 신동 스가와라 집안은 할아버지 대대로 고급 관리와 문장박사로 통하던 집안으로 증조부 스가와라노 후루히토(菅原古人)때에 하지(土師))씨에서 스가와라(菅原)로 성을 바꾸었다. 한국 사회에서 성을 바꾸는 일은 몰락한 가문을 뜻하지만 일본은 현재까지도 성씨를 바꾸거나 새로 만드는 일은 흔한 일로 가문의 몰락은커녕 가문의 영광이거나 새 출발을 뜻하는 것이 한국과 다르다.
▲ 전국최고의 수험 합격보장(?) 신사로 참배객들로 항상 붐빈다
▲ 본전 안에서는 그날도 기도 받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태어난다 해도 미국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피가 주는 유전요소 때문이다. 호적 같은 것으로야 미국인이 될 수 있을지언정 피의 역사로는 속일 수 없는 것이 인류 역사다. 마찬가지로 스가와라 씨가 영국이나 미국에 태어났다 해도 그의 몸속에 흐르는 피는 한국인의 피다. 피는 시공을 초월한다. 우주도 변하고 천체도 변하지만 오직 영원한 것은 피다.
이 족보는 노미노 스쿠네부터 족보가 시작되지만, 노미노 스쿠네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서기》에 “수인천황(垂仁) 3년 3월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 일본발음 아메노히보코)이 왔다. 그가 가져온 것은 구슬, 칼, 창 등 이른바 7종의 신기(神器)로 이것은 현재 효고현에 보존하고 신물(神物)로 삼고 있다.”라고 했으며 《신찬성씨록》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천손(天孫) 곧 신라에서 건너온 왕자인 천일창의 후손이다.”라고 되어 있다.
▲ 본전 건물
여러 문헌이 증명하듯 노미노 스쿠네(野見宿禰)는 일본의 대중 스포츠 ‘스모’의 조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며 ‘스모’는 《일본서기》 수인천황기(垂仁天皇紀)에 스마히(捔力)라고 했으며 수인 7년조(垂仁7年)에 보면, 당시에 천하장사라고 뻐기던 ‘다이마게하야(當麻蹶速)’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을 물리칠 사람을 찾던 중 이즈모(出雲) 출신의 노미노 스쿠네(野見宿禰)가 나타나 한판 결투를 시킨 결과 보기 좋게 한방에 게하야를 때려눕혔다.
그래서 천황은 거들먹거리던 게하야의 토지를 몰수하여 노미노에게 하사하고 천황의 곁에서 보필케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일본 씨름인 스모의 시작이라고 일본역사는 쓰고 있다. 한반도 출신 노미노 스쿠네는 일본 스모의 창시자인 것이다.
일본이 학문의 신이자 천신(天神)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한반도 출신이라고 밝혀 주었다면 구태여 스가와라의 족보이야기는 안 해도 될 터인데 스가와라 씨를 완전히 일본인으로 여기게끔 만들어 놓는 바람에 조상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게 안타깝다.
자, 그러면 스가와라의 맨 처음 족보상의 첫 인물인 일본스모의 창시자 ‘노미노 스쿠네’ 다음 인물을 살펴보자. 그 후손의 성씨가 그대로 ‘노미’씨라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러나 족보에서 보듯이 ‘스모 할아버지’는 성씨를 이내 ‘하지(土師)’로 바꾸게 된다. 왜 바꾸었을까? 똑똑했기 때문이다.
▲ 고대한국 출신 후예로 일컬어지는 텐만궁의 제신 스가와라미치자네 초상
다시 이때의 상황을 《속일본기》를 통해 살펴보자. 때는 수인천황(垂仁天皇) 32년으로 사랑하던 왕비가 죽었다. 그때까지 일본은 무덤에 산 사람을 함께 파묻는 순장제도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조정안은 늘 시끄러웠다. 문명사회로 한발자국씩 내달으면서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그래서 수인천황은 왕비의 장례를 앞두고 산 사람을 순장 시키지 않을 묘안이 없을까를 대신들과 의논하였는데 이때 스모 창시자 노미(野見宿祢)씨가 순장을 대신할 좋은 아이디어를 천황에게 제시했다. 당시에는 힘이 센 자가 머리도 좋았던 모양이다.
노미씨는 산 사람 대신 흙으로 사람형태의 인형과 말을 무덤에 묻을 것을 권유하고 스스로 손수 이를 만들어 천황에게 바쳤다. 이를 하니와(埴輪)라고 한다. 수인천황은 산 사람을 매장하지 않고 사람형상을 묻는 방법을 일러준 노미의 아이디어에 몹시 기뻐하며 그 공적을 칭찬해마지 않았다.
이에 수인천황은 노미(野見) 씨에게 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 완벽한 모습을 갖추었으므로 흙을 다룰 줄 아는 스승이란 뜻의 토사(土師, 일본 발음은 하지)성을 하사했다. “흙의 스승”이란 “흙의 연금술사”를 뜻하는 것이며 이는 단순히 흙으로 말과 사람 형상만을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土師)라는 성을 하사받기 전인 노미(野見)라는 성씨는 건축 도구인 “끌”이라는 연장을 뜻하는 일본말로 노미=하지씨는 흙과 나무와 석재를 잘 다룰 줄 아는 건축과 조각에 뛰어난 한반도 출신의 장인 그룹이었던 것이다.
《속일본후기》에도 하지(土師)씨는 노미(野見宿禰)씨의 후예이며 이즈모계(出雲系)로 설명하면서 아메노(天穂日命)→다케노(建比良鳥命)→노미(野見宿禰) →하지(土師)-스가와라(菅原)씨 관계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노미노 스쿠네 할아버지는 천황으로부터 하지(土師)라는 성을 하사받았고 하지 씨는 다시 일본의 50대 천황 간무왕을 낳은 생모 백제여인 고야신립의 친정인 大枝(오오에) 씨와 학문의 신 스가와라( 菅原)씨 집안으로 나뉘게 된다. 이 일은 스가와라의 증조부 때의 일이다.
▲ 12월 초순인데도 늦가을 정취가 물씬한 경내에서 글쓴이
이렇게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집안은 이른바 ‘도래인’으로서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건너와 황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조정에서는 문장박사로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학자 집안에 태어나 걸음마를 익힐 때부터 글을 배운 스가와라가 5살에 천자문을 줄줄 외웠다는 것은 어쩜 새삼스런 일이 아닐지 모른다.
*매화 꽃을 사랑한 일본 최고의 학문의 신 스가와라미치자네를 모시는 다자이후텐만궁의 이야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미치자네'는 '노'를 빼고 '스가와라 미치자네' 라고도 발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