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현재 보존되어 있는 서대문형무소 수감 181명의 여성 수감자 가운데 정부로부터 독립운동의 공훈을 인정받은 인물은 총 13명으로 6.62%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3․1운동 관련이 7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그래도 2006년부터는 1명씩 이나마 꾸준히 발굴하여 포상하였으나 201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아예 없는 실정이다.”
▲ 주제발표자 오병한 국가보훈처 연구원(왼쪽),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
이는 12월 17일 늦은 2시에 열린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제7회 공동 월례연구발표회에서 발표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의 발표 내용 일부다. 박 관장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여수감자 수형기록카드를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수감 감옥과 연령․출신지역 여수감자의 특징과 형량 따위를 분석해 냈다. 그러면서 기록과 근거를 바탕으로 포상하는데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인정할 수가 있음에도 그 실적은 지지부진하다며, 나라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독립운동 하였으나 기리지 않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보였다.
발표 가운데 또 눈에 띄는 대목은 “1937년 서대문형무소의 여성 수감자가 193명이므로 평당 수용밀도는 4.1명이나 되었다. 심지어 1.23평의 작은 방에 5명이나 수용되었는데, 일본 감옥의 수용밀도가 1.19명 이었던 것에 견주면 조선 여성들의 수감 실태는 아주 열악한 상태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1938년이 되면서 여성 수감인원이 식민지 말기로 갈수록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기 때문에 감옥의 열악함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었다. 식민지 권력의 폭력적인 수감실태가 점점 심해진 것이다.”라는 대목이다.
▲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배치도
▲ 김귀현 수형기록카드
한 가지 더 관심을 끈 대목은 “‘보존원판’ 번호를 활용한 여수감자 특징 분석”이었다.
“1920년부터 1945년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여성 수감자들 가운데 수형기록카드가 남아있는 181명의 인물들은 죄목이 치안유지법위반(99명), 보안법위반(48명), 출판법위반(1명)이 148명으로 81.7%가 소위 ‘정치범’ 또는 ‘사상범’이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들의 ‘죄’가 일제의 식민지배에 반(反)하는 치안유지법위반 또는 보안법위반 등이므로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였던 독립운동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박 관장은 토론자나 청중으로부터 엄청난 손품을 판 노력의 결과가 보인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토론자 이명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이 논문이 완벽하기 위해서는 여성만이 아닌 남성수형자와의 견줌을 시도하고, 전국 다른 형무소 자료와도 비교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박관장의 발표에 앞서 “간도관리사 이범윤의 활동과 변계선후장정”이란 주제로 오병한 국가보훈처 연구원의 발표도 있었다. 오 연구원은 간도관리사로 파견된 이범윤과 고종 그리고 고종의 최측근 이용익과의 관계를 규정짓고, 간도관리사의 한계와 문제점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 발표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들
그러나 토론에 나선 박민영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나치게 중국 쪽 자료를 많이 인용하고 신뢰한 듯하며, 기존 연구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다른 점을 연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지정토론자 말고도 청중 가운데서도 활발한 토론이 이어져 연구발표는 상당한 결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조선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져 저항한 독립투사들을 가두었던 서대문형무소, 그곳엔 아직도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었다. 물론 자료들의 대부분이 없어졌을 것이지만 현재 남은 것만으로도 빨리 그 흔적을 분명한 사실로 엮어낼 필요가 잇다. 그런 점에서 박경목 관장의 노력은 우리가 함께 큰 손뼉을 쳐주어야 할 것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