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인 가운데 일제의 조선침략으로 큰 덕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조선문화재를 싹쓸이한 부류도 그 속에 속할 것이다. 조선땅에 일찌감치 건너와 조선인이 누려야할 온갖 이권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취득한 돈으로 국보급 문화재를 싹쓸이해 가지고 간 사람들!
▲ 고구려 금동미륵반가상 국보 제 118호 (한국 호암미술관 소장)
그 가운데 한사람이 오구라타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다. 동경국립박물관 안에는 그의 이름을 딴 오구라콜렉션이 있을 정도다. 일본 최고, 최대의 박물관인 동경국립박물관의 오구라콜렉션에는 오구라가 조선에서 갈취한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한 조선유물이 총 1,110점에 이른다.
오구라는 동경제대를 나와 1903년에 대구로 건너오게 되는데 그는 조선에서 전기사업, 금융업에 손을 대 막대한 부를 움켜쥐게 된다. 그 돈을 가지고 그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비로자나불입상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수집하는데 질과 양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의 수량이다.
▲ 9세기 통일신라시대 금동비로자나불입상 (현재 동경박물관 오구라콜렉션 소장) |
오구라의 일화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면 당시 조선의 유명한 미술상인 김동현이 갖고 있던 고구려 금동미륵반가상을 욕심낸 오구라는 대구에서 평양까지 일부러 가서 연회를 열고 김씨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탐내던 불상을 매수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써보았으나 김동현 씨가 “어떠한 경우에도 조선문화재의 나라밖 반출은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자신이 차린 연회장을 박차고 뛰어나왔다고 한다. 김동현 씨는 간송과 함께 한국의 문화재를 지키던 사람이라고 동경 고려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에 있는 조선문화재>에는 소개하고 있다.
1964년 대구의 오구라가 살던 거주지에서는 지하실에서 142점의 문화재가 발견 되었다. 당시 오구라 집은 군사령부가 쓰고 있었다. 발견된 문화재는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에 회수 되었다.
▲ 문화재 약탈자 오구라가 대구에 살던 집터 |
【편집자 말】
이 글은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에서 펴낸 <잃어버린 조선문화 유산 -식민지하에서의 문화재 약탈, 유출, 그리고 반환, 공개->에 있는 글을 참고로 소개하는 것이다.
【일본 고려박물관은 어떤 곳인가?】“일본과 코리아(남한과 북한을 함께 부르는 말)의 역사,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풍신수길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하고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 그리고 재일 코리안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기 위해 고려박물관을 설립하였다” 고 고려박물관 사람들은 설립 취지를 말하고 있다. 고려박물관을 세운 사람들은 약 80%가 일본인이며 20여년을 준비하여 2009년 도쿄 신오오쿠보에 문을 열었다. 박물관 운영은 순수회원들의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는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화전>이 열리고 있다. 시는 이윤옥 시인이, 그림은 이무성 한국화가가 그렸다.
*전시기간: 1월 29일 ~3월 30일
* 전시장소: 도쿄 신오쿠보 고려박물관 : 03-5272-3510
* 한국 문의 : 02-733-5027(한국문화사랑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