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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박문 제2고향 하기시를 가다

[맛있는 일본이야기 237]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등박문(伊藤博文,1841-1909)의 고택이 있는 야마구치현 하기시(山口縣 萩市)는 일찍이 죠카마치(城下町)로 번성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인구 5만의 조용한 소도시다. 몇 해 전 들른 이 도시는 조용하다 못해 유령도시처럼 사람 그림자도 찾기 힘들 만큼 고요했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은 14살 때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고 28살에 신정부인 명치정부에 관리로 나갈 때까지 이곳에 머무는 날이 많았으니 제 2고향인 셈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는 이등박문이 살았던 집을 복원하여 기념관을 만들고 밀랍인형과 동상까지 세워 놓았다.

신정부의 요인으로 발탁된 이등박문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영화 10편, 텔레비전 드라마가 16편, 이등박문 전집 전 36권을 만들 정도로 큰 편이다. 그러나 막상 이등박문 기념관에 써놓은 해적이(연보)에는 그가 하얼빈에서 죽은 것으로만 되어 있을 뿐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그의 죄과가 드러날까 숨긴 것일까?

   
▲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살던 야마구치현 하기시 집을 복원하여 만든 이등박문기념관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심문과 재판과정에서 자신을 한국 의병 참모중장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이등박문이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며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저격한 것이 아니라고 거사동기를 밝혔다. 안 의사는 이뿐만이 아니라 15개 항목으로 이등박문의 죄를 꼼꼼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등박문에 대한 독일의사의 말이 가관이다. 에르윈(Erwin von Blz、1849-1913)이라는 독일 의사는 29년을 일본에 체류한 사람이다. 그는 이등박문의 죽음을 애석해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등박문은 한국인의 좋은 친구였다. 당시 부패한 한국을 올바로 개혁하여 일본 통치하에 두는 것이 한국인의 행복이라고 여겨 60살이 넘는 고령임에도 통감을 맡았다. (이하 생략)”

그러나 그는 이등박문의 죄악을 잘 모를뿐더러 이등박문 자신이 한 말의 뜻도 모르고 있다. “비록 여기서 학문을 닦아 뜻을 이룬다 해도 자기의 나라가 멸망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たとえここで學問をして業が成っても、自分の生國が亡びては何の爲になるか)

물론 여기서 자기 나라의 멸망이란 서구열강에 도전받는 일본을 가리킨다. 일본의 멸망은 안 되고 조선의 멸망은 손톱만큼도 가슴 아파하지 않는 이등박문이 한국의 좋은 친구였다는 것은 대관절 무슨 망발인가!

   
▲ 이등박문 인형 앞에선 글쓴이

어쭙잖은 일본인들은 에르윈의 말이 진실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까 걱정된다. 에르윈이 평형감각을 지닌 지식이라면 결코 조선침략의 선두에 섰던 이등박문에 대해서 그렇게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밀랍인형까지 만들어 이등박문을 선전하고 있는 일본의 하기시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며 오늘 안중근 순국 104주기를 맞아 이등박문의 명백한 죄악 15개조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