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때는 지금으로부터 1천여년 전, 일본 교토의 고구려절에 있었던 이야기다. 고구려절에 영상이란 스님이 속가에서 놀러온 사람과 바둑을 두고 있던 이야기는 일본설화집 《곤자쿠이야기》에 나온다.
이 책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 말에 나온 설화집으로 모두 31권으로 되어 있으며 인도, 중국 ,일본, 한국(고대 3국)에 관련된 1000여 설화가 수록되어있다. 이 책 14권 28화에 고려사(高麗寺, 고마데라라고 발음하며 고구려를 뜻함)이야기를 들어 보자.
영상(榮常) 스님은 평소처럼 스스럼없이 속가 사람과 바둑을 두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걸식승이 나타나 법화경을 독송하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다. 누구는 한가하게 앉아서 신선처럼 바둑을 두고 누구는 걸망을 들고 걸식을 하나 싶지만 걸식승은 정중히 이들이 바둑을 두는 자리에 서서 법화경을 독경할 뿐이다.
▲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고마데라터(고려사지)
웬만한 스님이라면 바둑을 멈추고 끼니를 이을 만한 쌀이라도 한줌 보시할텐데 어찌 된것인지 영상스님은 보시는커녕 바둑을 두면서 걸식승의 독경소리를 비웃듯이 흉내낸다. 흉내만 낼뿐 눈도 깜짝 안하고 바둑을 두던 스님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바둑을 다두고 일어나려는 순간 벌어졌다.
영상 스님의 입이 그만 뒤틀려 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 움직 일수 없게 되자 부랴부랴 의원을 불러 약을 먹고 치료를 받지만 끝내 치료는 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설화에서는 “비록 걸식승이라 할지라도 법화경 독송자를 멸시하는 언행을 하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지만 기자의 관심은 1천여 년 전 일본 땅 고려사(高麗寺)라는 절에 있다.
고려사는 교토 기즈가와시(木津川市)에 지금도 그 절터가 남아있다. 이 절의 창건은 6세기 말 고구려에서 건너온 혜변(惠辯)스님으로 추정하며 서기 660년대에 들어 가람이 정비 되어 금당(대웅전), 탑, 강당, 중문과 회랑을 갖춘 명실상부한 대사찰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절은 《곤자쿠이야기》 설화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12세기 말까지 건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2009년에 이 절터에서 대량의 토기(12세기 말~ 13세기 초)가 발견됨으로써 가마쿠라 시대까지 이 절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 한때 큰 규모의 절이었던 가람의 초석
고려사터 발굴은 1934년 향토사학자 나카즈가와(中津川保一)씨에 의해 고려사 기와 굽던 터가 발견되었고 이후 1938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2년간 발굴 조사 결과 1940년 국가지정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부터 5개년에 걸쳐 재차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 고마데라절(高麗寺) 가람 배치도, 금당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대웅전이다.
고려사가 있던 이 절 근처는 고구려에서 집단으로 건너온 도래인들의 마을로 지금도 마을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채 1천여 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 있다.
물론 일본땅에는 고려사(고마데라,高麗寺,고구려를 뜻함) 말고도 백제사라는 이름의 절터와 현존하는 백제사도 있다. 고구려와 백제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이와같이 일본 땅 곳곳에는 이들의 후손들이 일군 마을이 있다. 또한 당시 최고의 종교였던 불교의 절들이 그 시대 고대 한국인들의 삶을 전하고 있다. 기즈시의 고구려절인 고마데라(高麗寺)도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