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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임진왜란 때 활약했다는 밥할머니 석상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7]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최근 일산을 다녀오면서 서오릉 모퉁이에 있는 창릉 모퉁이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창릉 모퉁이공원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네요. 이 공원 뒤쪽에 서오릉 중의 하나인 예종과 그의 계비(繼妃) 안순왕후 한씨의 능인 창릉이 있기에 창릉 모퉁이공원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모퉁이공원에는 임진왜란 때 맹활약한 밥할머니의 석상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석상을 보려고 모퉁이 공원에 온 것이지요. 공원이라고 하니 그럴 듯한 공원이 연상되겠지만, 사실 밥할머니 석상과 3개의 비석이 전부인, 공원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야말로 작은 모퉁이 공원입니다.  
 

   
▲ 서오릉 창릉 모퉁이공원에 있는 밥할머니 석상, 목이 떨어진 채다.

밥할머니는 북한산 부근의 대부호 문씨 집안의 며느리인 해주 오씨입니다. 해주 오씨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얘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양반집 며느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밥할머니의 활약상에 대해 알아보지요.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전황은 역전되어 왜군은 남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1593127일 여기서도 멀지 않은 벽제관 전투에서 명군과 조선의 연합군은 왜군에게 참패하면서 오히려 왜군에게 포위당합니다. 

바로 연합군이 이렇게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밥할머니가 등장합니다. 할머니는 연합군 진지에 나타나 적을 물리칠 방도를 알려줍니다. 연합군은 할머니의 계책에 크게 기뻐하며 덕수천(지금의 창릉천)에 횟가루를 뿌립니다. 그리고 밥할머니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북한산 노적봉에 볏짚을 쌓아 노적가리 같이 만들고요

왜적에게 군량미가 엄청 쌓여있고, 그 군량미로 밥해 먹으면서 쌀뜨물이 덕수천에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겠지요. 노적봉(露積峰)이란 이름도 이 때문에 생겼을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가 귀에 좀 익지요? ! 이순신 장군도 목포 노적봉에 볏짚을 쌓고 횟가루를 하천에 흘려보냈다는 얘기가 있지요. 

밥할머니는 이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서 왜군에게 실제 노적가리가 엄청 쌓여있는 듯이 얘기하고, 그 밑에서 쌀을 씻은 쌀뜨물이 덕수천에 흘러내려오는 것이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립니다.  

그래서 이에 겁을 먹은 왜군이 서서히 후퇴하면서 포위망이 뚫렸다는 것이지요. 옆에 있는 안내문에는 한 술 더 떠, 왜군이 밥할머니의 말에 속아 석회물을 쌀뜨물로 알고 마셨다가 복통, 설사를 일으켜 퇴각했다고 나오는군요. 이런 활약으로 해주 오씨를 밥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이겠군요. 

밥할머니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왜군이 1593212일 권율 장군이 주둔하고 있는 행주산성을 공격할 때에 할머니는 아녀자들에게 행주치마에 돌을 주워 나르게 하여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게 하였답니다. 이런 할머니의 공로로 인조는 할머니를 정경부인에 봉하고, 후세 사람들이 이곳에 할머니의 석상을 세워 할머니의 호국정신을 기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고양 밥할머니 보존위원회가 주관하여 해마다 밥 할머니 추향제를 드리고 있구요.  

그런데 밥할머니의 석상은 몸체만 있지 머리가 없습니다. 일제 시대 이런 할머니의 활약상을 시기한 왜놈이 할머니의 머리를 잘라가버려 아직까지 할머니의 머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여튼 옹졸한 놈들이란... 애통하게 할머니의 머리가 없어진 이후 사람들은 할머니의 머리를 새로 만들어 몸체에 올려놓았는데, 그 후로 자꾸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겨 지금은 애석하지만 머리 없이 밥할머니의 석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 창릉 모퉁이공원에 있는 방백 오정일의 선정비와 고양 덕수 자씨 교비 그리고 고양군수 엄찬의 선정비(오른쪽부터)

공원에는 이외에도 방백 오정일의 선정비와 고양 덕수 자씨 교비 그리고 고양군수 엄찬의 선정비가 있습니다(사진 오른쪽부터). 오정일은 황해도 및 경기도 관찰사를 비롯하여 도승지,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기에 오정일의 선정비는 엄찬의 선정비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선정비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 사실 선정도 베풀지 않은 지방 방백들의 선정비가 너무 많아, 저는 솔직히 선정비 보더라도 좀 시큰둥합니다. - 교비(橋碑)는 좀 흥미를 끕니다. 이 비석에는 현종 1(1660)에 조선남과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덕수천에 돌다리를 만든 내용이 나오는데, 비의 앞, 뒷면에 약 800명의 사람 이름이 이두문자로 적혀 있어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 1660년이라면 일반에서도 이미 한글이 많이 쓰이고 있을 때인데, 왜 이두문자로 기록하였지요? 궁금하군요. 

하여튼 고양에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많이 있네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아직 찾지 못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고양시의 구석구석을 찾아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