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삼성병원이 사용하다가 새로 단장하여 시민 품으로 돌아온 경교장을 둘러보았습니다. 경교장은 잘 아시다시피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했을 때부터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이지요. 경교장은 원래 일제강점기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이 김구 선생에게 쓰시라고 제공한 건물입니다.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는데, 일본 냄새가 난다고 김구 선생이 근처에 있던 경교(京橋)의 이름을 따서 경교장이라고 하였지요.
▲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한 뒤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무실로 쓰던 경교장
경교장은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 뒤 6. 25. 전쟁 전에는 중국 대사관저로 쓰이다가 6. 25. 전쟁 중에는 잠시 미군 특수부대 및 임시 의료진 주둔처로 사용되었네요. 그리고 1956년부터 12년간은 월남대사관으로 사용되다가, 1967년 삼성이 매입하여 그 후 줄곧 강북 삼성병원으로 쓰였더군요. 저도 예전에 이 병원에 왔을 때 경교장 뒤로 큰 병원 건물이 세워지고, 경교장은 겨우 건물 앞면만 남고 속은 병원으로 사용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다가 경교장을 복원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삼성이 통 크게 내놓아 지금 다시 예전 모습으로 복원된 것입니다.
최창학은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 비행기를 헌납하고 거금을 기부하는 등으로 친일행위를 하였는데, 약삭빠르게 김구 선생을 경교장에 살게 하였지요.
실제로 전시물을 보다 보니 최창학 동기의 순수함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 있더군요. 최창학의 식구들은 경교장과 한 울타리에서 살았다는데, 수시로 경교장에 드나들며 최창학의 짐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신탁 통치 반대운동 때와 김구 선생 서거 당시에 경교장에 몰려드는 인파들로 인하여 집과 가구에 흠집이 생기는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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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두희 흉탄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김구 선생의 저고리 |
▲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진 직후 사진
그리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고 죽은 안두희에 대해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놈은 체포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얼마 후 감형되고, 6. 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풀려나오지요. 그리고 다시 군에 복귀하여 소령까지 승진하고 예편 후에는 군납업체를 운영하며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세금을 내는 부자까지 되었다고 하고...
전시물 중에는 평생을 김구 선생을 보좌하였던 엄항섭 선생이 쓴 추모사도 있습니다. 추모사를 읽다보니 '月印千江'이란 말이 눈에 띕니다. '월인천강' 하면 세종 때 한글을 반포하고 한글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이 먼저 생각나는데, 엄항섭 선생도 '월인천강'이란 말을 인용하면서 김구 선생이 비록 가셨지만, 달이 천개의 강에 비추듯이 김구 선생은 삼천만 동포의 가슴 가슴마다 계시다고 말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제 가슴 속에도 살아 있습니다. 예전에 백범 일지를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던지... 이번 경교장 방문에서 그 백범일지의 원본을 본 것도 수확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 한양 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