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어제 자야 여사의 <내 사랑 백석>에 대한 글에서 자야 여사의 본명은 김영한이고, 기생으로서의 예명은 진향, 법정스님이 붙여준 법명은 길상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야(子夜)는 백석 시인이 붙여준 별명이지요. 그런데 제 글을 읽으면서 왜 별명을 자야라고 지었을까 궁금해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루는 자야가 함흥 시내 백화점에 갔다가 책방에서 평소 애독하던 잡지 《문예춘추》와 《여원》을 사가지고 돌아서는데, 문득 <자야오가(子夜吳歌)>라는 《당시선집(唐詩選集)》이 눈에 들어오더랍니다. 자야는 그 타이틀이 너무도 아름답고 또 낭만적인 느낌이 들어서 대뜸 사가지고 와서 백석에게 보였답니다. 백석은 시집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눈빛을 반짝거리며 자야를 바라보더니, 말합니다. “나 당신에게 아호(雅號)를 하나 지어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라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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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는 꽃 피고" ⓒ 운곡 강장원 한국화가 |
자야는 당시선집에 들어있던 이태백의 시 <자야오가>에 나오는 중국 동진 시절의 여인입니다. 당시 중국은 북방에서 중국을 엿보는 북방민족(흉노, 선비 등) 때문에 백성들을 돌아가면서 징병하여 변방을 지키게 하였는데, 자야의 남편도 이렇게 변방으로 수자리 살러 간 남자이지요.
장안도 한밤에 달은 밝은데 (長安一片月)
집집이 들리는 다듬이 소리 처량도 하구나 (萬戶擣衣聲)
가을바람은 불어서 그치지를 않으니 (秋風吹不盡)
이 모두가 옥관의 정을 일깨우노나 (總是玉關情)
언제쯤 오랑캐를 평정하고 (何日平胡虜)
원정 끝낸 그이가 돌아오실까 (良人罷遠征)
시에서 남편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자야의 심정이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듬이 소리는 무엇일까요? 잠시 자야오가에 대한 자야 여사의 평을 들어봅시다.
긴긴 가을밤, 장안의 달은 휘영청 밝은데 이 집 저 집에서 모두들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또르락또르락 요란히 들려온다. 대부분 수자리 살러 간 남편이 입을 겨울 누비솜옷을 준비하는 소리들이다. 자야는 이러한 여인들 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다듬이질을 하면서 남편과의 생이별을 서러워한다. 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혹시 건강에 탈이 나신 것은 아닐까? 자야는 온갖 시름을 이기지 못하다가 다시 다듬이질을 계속한다. 이 작품은 떠나간 임을 기다리며 한 여인이 부르는 민요조의 노래로서,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태백이 지은 것이다.
변방으로 수자리 살러가는 남편, 아버지, 아들. 이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아내, 딸, 어머니……. 중국의 시에는 이런 백성의 슬픔과 애환을 노래한 시들이 많습니다. 유교의 4서5경 중의 하나인 《시경(詩經)》에도 이런 시가 하나 있지요. 다음은 신영복 교수님이 번역하신 것인데, 시 중에 나오는 ‘집단행동’은 교수님이 작업조에 편입되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을 ‘집단행동’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 '목련과 새" ⓒ 운곡 강장원 한국화가
산에 올라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아들아. 밤낮으로 쉴 새도 없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머물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에 올라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어머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우리 막내야. 밤낮으로 잠도 못 자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버림받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에 올라 형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형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동생아. 밤이나 낮이나 집단행동 하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멀리 수자리 살러 간, 아니면 만리장성 축성에 동원되어 간 아들, 동생을 생각하는 부모와 형의 심정이 시에 절절이 배어나옵니다. 그런 시이기에 유교에서 5경으로 받드는 《시경》에도 들어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백석은 앞으로 평생 자신을 기다리며 그리워할 자야 여사의 앞날을 예견하고 이런 아호를 지어준 것일까요? 수자리 살러 간 남편을 기다리는 동진의 자야처럼 자야 여사도 백석과의 짧은 3년간의 사랑 후에 긴 기다림의 삶을 살았으니까 말입니다. 자야도 말을 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두 사람의 처절한 숙명이 정해질 어떤 예감에서, 혹은 그 어떤 영감에서 이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던 것은 아닐까. 내가 이날 이때까지 당신을 못 잊어하고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나는 꼭 동진의 여인 자야처럼 기다리는 숙명으로 살아가도록 마련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아직 머나먼 천리 원정(遠征)에서 못 돌아오시고...
‘자야!’ 제 어머님보다 한참 웃어른이신 자야 여사께 ‘자야’라고 하니 불경스럽다고 하겠지만, 왠지 저도 백석 시인처럼 ‘자야’라고 부르고 싶어집니다. “자야! 이 세상 떠나 그곳에 가서 백석을 다시 만나셨지요? 두 분 이젠 헤어지지 말고 그 아름다운 사랑 영원히 누리세요. 자야! 지고지순한 사랑을 다시 일깨워준 자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