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수원 월드컵 경기장 고개를 넘어 영동고속도로 쪽으로 내려가면 고속도로 밑에 심온 선생의 무덤이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심온은 세종의 장인입니다. 얼마 전에 수원 재판 갔다가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잠깐 심온 선생의 무덤에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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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에게 사약을 받은 세종 장인 심온 무덤 전경 |
한 나라 대왕의 장인이면 그 위세나 권세가 대단했겠지요. 그래서 왕의 장인은 국구(國舅)라고 하여 존경의 표현을 쓰지요. 특히 조선시대 최고의 대왕이라 불리는 세종의 장인이었으니, 그 위세가 더했겠지요? 심온이 1418년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가기 위해 한양을 출발할 때에는 왕의 행차에 버금갈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답니다.
그런데 심온은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되어 사약을 내렸습니다. 아니? 심온이 명나라 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심온이 국경을 건너 돌아오자마자 체포하였다는 말입니까? 설마 세종이 자기 장인을 체포하였을까요?
태종이 한 짓입니다. 당시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내려앉았지만, 병권만은 그대로 자기가 쥐고 있었습니다.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내려앉은 정종과는 달리 태종은 실세 상왕이었지요. 이런 때 심온의 막내동생 심정이 명령이 두 군데서 나온다고 불평 섞인 말을 하였는데, 이 말이 태종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당연히 심정은 끌려가 국문을 당하고 참수되었지요.
그런데 이에 그치지 않고 좌의정 박은이 배후에 심온이 있다고 태종을 충동질한 것입니다. 박은은 외척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태종의 마음을 읽고 충동질한 것이지요. 세종은 장인이 무고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 힘이 없어 장인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다만 자기가 사랑하는 소헌왕후의 폐출만은 면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심온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자 유언으로 후손들이 박씨와 혼인하지 말라고 하였답니다. 간신배처럼 태종을 충동질하여 자신을 죽게 한 박은이 미웠겠지요. 심온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나중에 심온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은 당연하였겠지요?
사실 태종도 심온이 무고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태종은 이를 구실로 삼아 외척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입니다. 태종이 외척 세력을 제거하려고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원경왕후의 동생들인 자신의 처남 민무구와 민무질을 먼저 제주도로 유배하였다가 사약을 내렸고, 민무휼과 민무회도 나중에 사약을 내립니다. 자신의 동생들이 죽임을 당하니 원경왕후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더구나 원경왕후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공헌을 한 여걸이 아닙니까?
태종이 이렇게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외척의 세력이 크지 못하도록 철저히 싹을 잘랐기에, 세종이 안심하고 정사를 돌봐 한글을 창제하는 등 찬란한 문화를 피워냈겠지만, 태종 자신은 어찌 보면 불행한 인물입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들을 죽이고, 처남을 죽이고, 사돈을 죽이고... 여동생 경순공주의 남편 이제도 살해하여 경순공주로 하여금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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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비석에 ‘安孝公 墓所’라고 되어 있다. ‘安孝’는 심온이 복권되면서 내려진 시호다. |
차에서 내려 심온의 무덤으로 접근합니다. 심온의 무덤에 다녀왔을 때는 겨울인지라 얼마 전에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심온의 묘역을 하얗게 탈색시켰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돌비석에 ‘安孝公 墓所’라고 되어 있는데, ‘安孝’는 심온이 복권되면서 내려진 시호입니다.
심온 묘역 근처는 공사중입니다. 수원시에서는 이곳을 광교역사공원으로 단장하고, 또 여기에 광교역사박물관을 지어 내년 3월에 문을 열 예정이랍니다. 또 이웃한 곳에 있는 세종의 동생 혜령군 무덤도 새로 조성하는 역사공원으로 이전한다는군요. 나중에 광교역사공원이 새로 문을 열면 그 때 다시 이곳을 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