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종이(和紙)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장경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 우왕 14년(1388), 포로 250명을 돌려보내주면서 부터다. 이후 효종 (1619-1659) 때까지 무려 83회나 대장경을 요구해온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적혀있다. 시도 때도 없이 번번이 대장경을 요구해오는지라 조선 조정에서는 아예 고려대장경을 다 집어주자는 아찔한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다 집어 주고 난 뒤에 또다시 요청하면 어쩔거냐는 논란 끝에 종이를 가져오게 해서 찍어주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일본 쪽에서 1416년 (태종 16년) 10월 13일에 종이와 먹을 가지고 와서 대반야경을 인쇄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종이가 대장경을 인쇄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조악하여 할 수 없이 조선에서 특별히 종이를 따로 제조하여 인쇄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게 독자적인 대장경판을 만들어 경전을 척척 찍어내고 싶었던 일본이 대장경을 만들게 되는 것은 메이지시대에 간행된(1880~85) <대일본교정축쇄대장경(大日本校訂縮刷大藏經)>이다. 이것은 <고려대장경>을 모범으로 삼고 중국과 일본의 불전으로 증보하여 1,916부 8,534권을 수록한 것이다.
한국의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이 만들어 지고 난 뒤 644년만의 일이다.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기로 유명한 <고려대장경> 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일본의 <대일본교정축쇄대장경>은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이것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평가를 받고 있다. 고구려 담징스님으로부터 전수 받은 일본 종이의 현주소가 궁금하다.
▲ 고구려 담징스님이 그린 일본 법륭사 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