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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서 기술을 전수 받은 일본 종이(和紙)의 현주소는?

[맛 있는 일본이야기 249]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종이기술은 610년 고구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공식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일본서기》의 고구려 승려 담징이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했으며 이 보다 앞서 513년에는 5경 박사가 백제에서 건너와 한자와 불교를 보급하면서 사경작업이 이뤄졌기에 이 무렵에 이미 종이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이는 일본 위키 사전에 나오는 일본 종이의 유래이다. 일본 종이를 와시(화지, 和紙)라고 하는데 기록상으로만 봐도 1400여년이 지났으니 상당한 기술이 축적 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대장경을 찍는 종이가 말해준다.

대장경에 관한 이야기는 세종 6년(1424)에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건너온 사신들의 단식투쟁 기사가 보이는데  “우리들이 조선에 온 것은 대장경을 얻기 위해서이며 만일 경판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돌아갈 수 없다. 차라리 여기서 식음을 전폐하고 죽어 버리겠다.” 는 기록이 그것이다. 당시 일본은 대장경을 만들 능력이 없었기에 조선의 대장경을 숱하게 얻어 갔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 일본 종이(和紙)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장경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 우왕 14년(1388), 포로 250명을 돌려보내주면서 부터다. 이후 효종 (1619-1659) 때까지 무려 83회나 대장경을 요구해온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적혀있다. 시도 때도 없이 번번이 대장경을 요구해오는지라 조선 조정에서는 아예 고려대장경을 다 집어주자는 아찔한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다 집어 주고 난 뒤에 또다시 요청하면 어쩔거냐는 논란 끝에 종이를 가져오게 해서 찍어주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일본 쪽에서 1416년 (태종 16년) 10월 13일에 종이와 먹을 가지고 와서 대반야경을 인쇄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종이가 대장경을 인쇄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조악하여  할 수 없이 조선에서 특별히 종이를 따로 제조하여 인쇄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게 독자적인 대장경판을 만들어 경전을 척척 찍어내고 싶었던 일본이 대장경을 만들게 되는 것은 메이지시대에 간행된(1880~85) <대일본교정축쇄대장경(大日本校訂縮刷大藏經)>이다. 이것은 <고려대장경>을 모범으로 삼고 중국과 일본의 불전으로 증보하여 1,916부 8,534권을 수록한 것이다. 

한국의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이 만들어 지고 난 뒤 644년만의 일이다.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기로 유명한 <고려대장경> 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일본의 <대일본교정축쇄대장경>은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이것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구려 담징스님으로부터 전수 받은 일본 종이의 현주소가 궁금하다. 

   
▲ 고구려 담징스님이 그린 일본 법륭사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