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4 (금)

  • 구름많음동두천 3.2℃
  • 맑음강릉 4.8℃
  • 박무서울 6.0℃
  • 연무대전 7.1℃
  • 박무대구 4.0℃
  • 맑음울산 3.7℃
  • 박무광주 5.9℃
  • 맑음부산 7.5℃
  • 맑음고창 0.4℃
  • 구름많음제주 7.0℃
  • 맑음강화 4.9℃
  • 구름많음보은 3.6℃
  • 구름많음금산 6.0℃
  • 맑음강진군 2.1℃
  • 맑음경주시 1.3℃
  • 맑음거제 5.5℃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노기신사(乃木神社) 터, 역사적 사실 알려야 한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32]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랴오둥[遼東]반도 남단부에 있는 군항도시 여순에서 러일전쟁의 격전지 203 고지를 가보았습니다. 일본은 러시아 함대가 기항하고 있던 여순항을 기습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을 도발하였지요. 그런데 러시아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쉽게 여순항을 점령하지 못하자 여순항이 내려다보이는 203 고지 점령에 사활을 겁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은 만 명이 훨씬 넘는 전사자를 내고서 겨우 고지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고지에서 여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향하여 맹포격을 가하여 함대를 격침하고서야 겨우 여순을 점령할 수 있었지요. 

이 전투를 이끈 일본군 사령관이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입니다. 비록 전투에서 승리하긴 하였지만 너무 많은 일본군의 희생이 뒤따랐기에 노기 사령관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잠깐 일었는데, 여순 공략전에서 노기의 두 아들도 전사하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노기는 명장으로 성가가 올라가지요. 그런데 노기는 나중에 단순한 명장에서 군신(軍神)으로까지 추앙받습니다. 곧 1912년 명치 일왕이 사망하자 일왕 장례식 밤에 본인도 부인과 함께 할복자살하면서, 사람들은 노기를 군신으로 추앙하며 신사(神社)까지 세우지요. 부인과 함께 할복자살까지 하여 제국주의에 충성하려는 노기,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노기신사(乃木神社)가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남산의 리라초등학교 뒤편에 남산원이라는 사회복지법인이 있는데, 바로 이 자리가 노기신사가 있던 자리입니다. 저는 이런 사실을 최근에 안중근 의사 의거지 답사기를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 노기신사에 사용되던 석조물은 탁자와 의자로 쓰인다.
     
그래서 저번에 모처럼 한국에 온 친구를 만나러 명동에 나가는 기회에 남산원에도 들렀습니다. 마당에 들어가 노기신사의 흔적이 어디에 좀 있을까 둘러보는데, 마당 한쪽의 나무 밑에 놓여있는 돌탁자와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탁자를 둘러싸고 있는 돌들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다가가 보니 역시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당시 노기신사에 사용되던 석조물들이 이곳에서 야외 탁자와 의자로 사용되고 있었네요.        

그리고 그 옆으로는 수조도 놓여 있는데 수조에는 한자로 봉납(奉納), 어수수사(御手水舍)라고 새겨져 있는 글씨가 보입니다. 보통 신사 들어갈 때 입구에서 손을 씻고 들어가는데, 이 수조도 그런 역할을 하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또 한쪽 절개지에는 축대식으로 석재들을 붙여놓았는데, 이 또한 예사 축대로 보이지 않아 다가가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이 또한 신사의 석물(石物)들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 중 한 석물에는 한자로 새겨져 있는 글씨도 보입니다.    
     

   
▲ 한자로 봉납(奉納), 어수수사(御手水舍)라는 글씨가 새겨진 수조

   
▲ 축대식으로 쌓인 석재들 역시 신사의 석물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가끔 일본인들이 자기들의 군신 노기의 흔적을 찾아 이곳을 방문한다는군요. 그런데 남산원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곳이 과거 노기신사의 터였다는 설명, 그리고 남아있는 석물이 당시의 석물이었다는 설명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비록 수치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수치스러운 역사도 역사는 역사인데 그런 설명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여튼 여순의 203 고지에 올랐다가 노기 마레스키를 알게 되고, 그 신사가 한국에도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네요. 답사의 묘미라는 것은 이렇게 전혀 뜻하지 않는 것도 알게 되는 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