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7 (목)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문화심의회는 6월 20일 <군함도(軍艦島)>로 알려진 나가사키의 하시마(端島)를 포함한 다카지마탄광유적지 (高島炭跡) 등 9건을 사적으로 지적하도록 문부과학상에게 건의했다. 이 밖에 명승 5건, 등록기념물 6건, 중요문화적경관 1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유적은 내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정부가 추천한 ”명치일본의 산업혁명유산 큐슈· 야마구치 관련지역으로 올 여름과 가을에 걸쳐서 실시 예정인 유네스코 자문기관에 의한 현지조사 전에 사적지정으로 국가에 의한 보호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 과거 하시마탄광이었던 <군함도(軍艦島)> 위는 일본 아사히신문 6월 20일치 기사로 여기서 말하는 <군함도>란 해저탄광지로 일제강점기 때 인구밀도가 수도 도쿄의 9배가 넘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이다. 탄광이나 금광지역이 활황기 때에는 언제나 광부와 그 가족들 그리고 돈벌이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군함도>가 단순한 일본인들의 돈벌이 장소였다면 오늘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이지만 그러나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탄을 캐다 숨져 간 곳이기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해저 700m에 있는 지옥 같은 탄광 속에서 조선인들은 12시간씩 2교대로 구부린 채 탄을 캐 날라야했다. 탄광 일이란 갱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열악한 작업 환경이라 한 달에 적게는 수명씩 많으면 몇 십 명씩 죽어나가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광부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은 가혹한 노동과 배고픔이었다.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고자 일부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라 대부분 물속에 빠져 죽거나 설사 헤엄쳐 간다고 해도 육지에 닿기 전에 잡혀 고문을 받기 일쑤였다. <군함도>는 나가사키항에서 18km 떨어진 곳으로 1887년부터 1974년 까지 석탄 채굴을 하던 곳이다. 1890년 미츠비시가 이 섬을 매입해 해저광산으로 이용했는데 미츠비시는1916년 급증하는 노동자를 수용하고 태풍으로 인한 파손을 막기 위해 일본 최초의콘크리트 구조 대형 아파트(9층 규모) 단지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 조선인들이 강제연행되어 중노동에 시달리다 죽어간 <군함도> 콘크리트는1941년 41만 톤의 석탄을 캐낼 정도로 일본의 근대화의 초석을 이룬 곳이라고 일본인들은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강제로 끌려와 열악한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져간 가슴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한수산 작가의 <까마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인들이 겪어야 했던 쓰라린 강제노역의 역사도 일본은 함께 유네스코에 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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