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나라현 아스카지방의 한 구릉지에 있는 용개사(지금은 강사‘岡寺’로 부름)는 백제출신 의연(義淵, 643~728)스님이 지은 절이다. 의연스님은 일본 법상종(法相宗)의 시조이며 수제자로는 나라 동대사(東大寺) 초대 주지 양변(良弁) 스님과 살아있는 보살로 추앙 받는 행기(行基) 스님을 비롯하여 현방(玄昉), 도자(道慈), 도경(道鏡), 도장(道場) 스님 등 쟁쟁한 분들이 많다.
특히 행기스님은 몸소 제자들과 함께 일본 곳곳에 다리와 제방을 쌓아 백성들의 삶 속에서 실천불교를 전파한 분으로 유명하며 그가 지은 절만도 오사카와 교토 등에 49개사가 현존하고 있을 정도로 고대불교계에 추앙받는 스님으로 일본에서 행기스님을 모르면 일간첩이라 할 정도로 이름난 스님이다.
▲ 용개사를 창건한 백제 의연승정 (국보)
의연스님은 이렇게 일본불교계에 쟁쟁한 제자들을 둔 분이다. 그래서인지 출생부터 남다르다. 《곤자쿠이야기》설화집에 전해지는 의연스님의 탄생설화 곧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를 천황이 손수 궁중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왕자와 함께 키웠다”는 부분은 의연스님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당시 천지왕(626-672)은 왕후와 궁녀 등 무려 부인이 9명이나 있었고 이들 소생의 자녀가 16명이나 있던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천지왕은 자청해서 ‘강보에 싸인 아이’를 황실로 불러들였다.
이러한 궁금증은 의연스님의 출신 성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신찬성씨록, 新撰姓氏録, 815년》에 “백제 성명왕으로부터 유래한다, 百済聖(明)王より出づ” 성이 이치키씨(市往氏)다. 이 성씨는 조정에서 하사 받은 성씨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천지왕이 큐슈 행차 시에 백제 성명왕의 후손인 호족의 딸과 관계를 맺고 낳은 게 의연스님이라는 설도 있다. 이 설이 맞는다면 궁궐 밖에서 얻은 왕자를 부잣집 담장에 두고 가게 하여 궁궐로 불러들인 셈이다.
▲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용개사( 지금은 강사)로 오르는 길
용개사가 의연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제사연기집, 諸寺縁起集,1333년》에 있는 용문사연기(龍門寺縁起)이다. 이 자료에는 의연스님이 국가안위를 위해 건립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의연스님은 용개사 뿐만 아니라 용문사, 용복사, 용궁사, 용왕사, 용선사라는 절도 지었는데 여기서 절 이름에 용(龍)자가 붙는 것은 ‘수신(水神)’을 모시는 뜻으로 기우제(祈雨祭)를 관장했던 절로 추정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절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용개사 뿐이고 용문사는 1952년 발굴조사가 이뤄져 용문사터에서 네 모퉁이의 협주초(脇柱礎)와 79×73cm의 용문사탑 심초(心礎) 등이 발굴된 상태이다.
▲ 백제 의연스님은 용개사 외에 용문사, 용복사, 용궁사, 용왕사, 용선사도 지었는데 안타깝게도 용개사만 현존한다. 다만 용문사는 발굴작업으로 그 초석이 확인되었다.
법상종의 시조로 추앙받는 의연스님이 창건한 용개사는 에도시대(江戸時代,1603-1868)까지는 흥복사(興福寺)말사에 속해 흥복사에서 주지를 뽑아 보냈으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1336-1573)에는 흥복사 주지가 주지를 겸하기도 했다. 또한 에도시대 이후에는 천년고찰 장곡사(長谷寺) 말사로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흥복사와 장곡사는 모두 서국33기도 도량으로 천년고찰들이다. 서국33기도도량(西国三十三箇所)이란 오사카·교토·나라·기후 지방에 있는 관음영험도량으로 일본에서 가장 효험이 난 절로 알려져 지금도 해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 용개사 일주문
용개사는 서국 33절 관음도량의 하나로 여기서 서국 33이란 관세음보살보문품(観世音菩薩普門品)에서 말하는 관음보살이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33가지로 변화한다는 신앙에서 유래하며 33가지 공덕을 얻기 위해 33개 절을 순례하면 현세의 업을 모두 씻고 극락왕생한다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용개사는 제7번 도량으로 이 절에서는 해마다 10월에 의연승정개산기야점차회(義淵僧正開山忌野点茶会)를 열어 1,400여 년 전 의연스님의 창건 정신을 되새김하고 있다.
▲ 용개사 삼중탑
용개사 안에는 본당 앞 동쪽에 의연스님이 용을 잡아넣고 뚜껑을 덮었다는 용개못(龍蓋池)이 있다. 용개사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의연스님처럼 고대 일본에서 활약한 한반도계 스님들은 모두 신통력이 뛰어난 분들로 묘사되고 있는데 백제 출신 원세(圓勢)스님이 수행 중에 휘황찬란한 광채를 발한다거나 역시 백제 출신 홍제(弘濟) 스님의 경우는 삼곡사를 짓기 위해 황금과 적색 안료 등 값나가는 물건을 사오다가 해적에게 잡혀 바다에 던져 졌으나 거북이가 구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고대 일본에서 한반도계 스님들은 ‘신통력’의 명수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연못에서 용이 나오지 못하도록 덮개를 해서 덮었다고 해서 생긴 용개사 절의 유래가 서린 용개못
의연스님의 무덤을 비롯하여 백제 출신 의연 스님의 향기가 곳곳에 서린 용개사 경내를 둘러보고 비탈진 언덕을 내려오면서 자랑스러운 의연스님의 모습을 그리는 즐거움에 푹푹 쪄대던 무더위도 잊었다. 아스카에 발걸음을 옮기는 분들은 용개사(지금은 강사‘岡寺’)에 꼭 들려서 백제 의연스님의 발자취를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찾아 가는 길★
*주소: 奈良県高市郡明日香村岡806 (岡寺‘오카데라’, 일명 龍蓋寺‘류가이지’)
*가는 길: 오사카 천왕사역(天王寺駅)에서 긴테츠미나미오사카선(近鉄南大阪線)을 타고 가시하라진구마에(橿原神宮前)역에서 내린다. 이곳 가시하라진구에키 히가시구찌(橿原神宮駅 東口) 버스정류장에서 23번이나 16번 버스를 탄 뒤 오카데라마에(岡寺前)에서 내려 약 15분 정도 언덕길을 걸으면 강사(岡寺) 나오는데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절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라지역에서 찾아 갈 때는 가시하라진구마에(橿原神宮前)역 까지 가서 위와 같은 요령으로 찾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