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손현목 기자]
▶ 작가 소개:
송운 한부득 선생은 현재 임고중학교(경북 영천시 임고면 소재) 국어 교사이다. 그의 손말틀은 010-4914-0600, 누리편지는 hbd9180@hanmail.net 이다.
작가 한부득 선생과 필자의 인연은 1991년 3월 경북 영천에 있는 여자고등학교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어떻게 살다보니 벌써 20년이 넘는 인연이다. 20여 년 전 당시에는 작가나 필자나 총각선생으로 여학생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학교생활이 많이 난감했다. 전근으로 1년 만에 한 선생이 인사이동으로 다른 학교로 옮겼다. 그 이후에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단 1년 같이 근무하고 20년이 넘도록 끈을 이어 준 것은 무엇일까?
한부득 선생과 필자는 전공이 국어교육이다. 그래서 지금도 경북에서 중등학교 국어 교사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동문이나 선후배 관계인 것은 아니다. 한 선생과 이렇게 오랜 인연을 이어오게 된 것은 아마 ‘비슷하거나 같은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미리 약속하지도 않고도 20년이 넘는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운명이다. 그 운명 중의 하나가 우리 전통 목판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다. 이것이 ‘한국목판각협회’를 만들고 활동하게 명령하는 힘이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만난다. 만나서 계획 중인 ‘아름다운 한글전’ 준비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1박 2일 하는 일은 이제 예삿일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쉬지 않고 함께 나아가리라는 것이다.
▶ 작가 한부득의 작품에 대한 말
작품의 밑바탕은 《훈민정음(訓民正音)》 언해(諺解) 영인본을 확대 복사하여 적절하게 재구성하여 볼록새김(양각)을 하였다. 그리고 작품의 위쪽은 한글 기본 글자를 다양하게 14가지 글꼴(폰트)로 구성하되, 양각과 음각을 교차하여 자연스럽게 “얼”이라는 글자를 표현하였고, 아래쪽은 알퐁스 도데(프랑스, 1840~1897)의 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 선생님이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 중에 하신 말씀을 오목새김(음각)을 하였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있으면 심훈의 《상록수》에서 채영신이 일본 순사의 방해로 아이들 반 이상을 예배당 밖으로 내보내고 창밖으로 칠판을 보이게 한 다음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연상된다.
왜 독일은 점령지인 알자스 지방에서 프랑스 어를 못 쓰게 하였을까? 왜 일본은 식민지인 조선에서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을 방해하였을까? 그것은 자기 나라 말에는 그 민족의 ‘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얼’은 ‘혼’이요, ‘정기’이다. ‘얼간이’, ‘얼빠진 사람’등을 보면 ‘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말을 지키려고 애썼던 것이다. 일제가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우리말을 연구하고 보급하던 학자들을 감옥에 보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 옥고를 치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나라의 말과 글이 제 길을 찾는 곳에 사람의 살 길이 열린다.”고 했고, 《조선말 큰 사전(1947년)》 머리말에는 “말은 사람들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그 낱낱의 말은 다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준 거룩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및 물질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 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말이 ‘얼’의 근본임을 강조한 바 있다.
오늘날의 급격한 서양화, 국제화, 세계화 물결 때문에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 되었다. 이제 그 답을 우리말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