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북한산 순례길을 걸을 때 단주(旦洲) 유림(柳林, 1898~1961) 선생의 묘소에 이르니 거북이 입을 꾹 다물고 선생의 비석을 등에 지고 있고, 민화에 나올 것 같은 호랑이 2마리가 양옆에서 선생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단주 유림 또한 아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1945. 12. 2. 임시정부 요인들이 오랜 망명 생활을 마치고 김포 비행장에 내렸을 때, 귀국한 임정 요인에 단주 유림도 있었습니다.
▲ 단주(旦洲) 유림(柳林, 1898~1961) 선생
그런데 유림은 아나키스트였습니다. 무정부주의자가 임시정부에 있었다니 좀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일본 학자가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로 번역하는 바람에 ‘아나키스트’ 하면 굉장히 과격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 유림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무정부라는 말은 아나키즘을 일본 사람들이 악의로 번역해 정부를 부인한다는 의미로 통해왔으나, ‘안(an)’은 ‘없다’의 뜻이고, ‘아르키(archi)'는 우두머리, 강제권력, 전제정치 따위를 가리키는 말로서 ’안아르키‘는 이런 것들을 배격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는 강제권력을 배격하는 아나키스트이지 정부 자체를 부정하는 자가 아니다. 아나키스트는 타율정부를 배격하지, 자율정부를 배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유림은 5년간의 형을 마치고 출옥하자마자 만주로 탈출하여 1942년부터 중경 임시정부에 참여합니다. 마침 임정도 김구 선생이 앞장서서 입장을 달리하던 독립운동가들도 받아들이던 때라 유림도 참여한 것이지요. 아나키스트가 임정에 참여한다고 하니 임정 안에서도 반대가 있었고, 심지어는 유림의 목숨을 노리는 이도 있었나봅니다. 한번은 중국 공산당 주은래가 사람을 보내어 이를 알리려 하였는데, 유림은 이를 제지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이름을 대지 마시오. 내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되면 나는 그를 죽여야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나라 잃은 백성이 이국만리에 망명해 독립운동 한답시고 서로 죽이는 꼴이 되오.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겠소.”
▲ 북한산 순국선열 묘역 단주 유림 선생의 무덤
유림은 17살 때 조선이 일제에 병탄되자 손가락을 끊어 ‘忠君愛國(충군애국)’이란 혈서를 쓰고 국권 회복에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3.1. 운동이 일어나자 가산을 정리하여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4살 난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떠납니다. 유림이 북경에 있을 때에는 단재 신채호와 심산 김창숙이 발간하는 ‘천고(天鼓)’라는 잡지 발간을 거들기도 하였습니다.
유림이 대전감옥에 있을 때에 일제는 유림의 외아들 원식이 결핵에 걸려 요양 중인 것을 알고, 독립운동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서약만 하면 아들의 병도 치료해주고 가석방도 시켜주겠다고 회유하지요. 그러나 유림은 자식을 팔아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런데 외아들 원식이 얘기를 하면서 슬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안중근 의사의 아들 준생이나 이회영 선생의 조카 규서도 일제의 회유와 압력에 조국을 배신하였었는데, 유림의 아들 원식이도 그러네요. 원식은 나중에 일본군 장교가 되고 5.16. 쿠데타에도 참여해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최고위원도 하였는데, 유림은 이런 아들과 평생을 절연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위가 이승만 정권의 고위 경찰이라는 까닭으로 사위 본인은 물론 외동딸도 눈을 감을 때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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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11월23일 서울에 모인 임정 요인들. 원 안이 유림 선생
1961년 4월 1일 단주가 64살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유림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 장례위원장이던 심산 김창숙 선생은 추도사에서 “그대 있어 이 나라가 무겁더니(君在大韓重) 그대 떠나니 이 나라가 비었구나(君去大韓空).”라고 하셨습니다. 시인 구상도 조선일보에 기고한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극성과도 같은 고절(高節)이었다. 단주, 당신이 지녔던 그 인류적 이상이나 민족적인 소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인류해방을 향한 열정이요, 의지요, 혼신이었다. 이러한 고매 정신에 뒤따르는 인격적 결백이 오늘까지의 당신의 생애를 신산으로써 결정지었고, 이제 우리에게도 비통과 억울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유림은 말합니다. “나의 이상은 강제 권력을 배격하고 전 민족, 나아가서는 전 인류가 최대한의 민주주의 아래에서 다 같이 노동하고 다 같이 사상하는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다.” 유림이 꿈꾸는 세상은 올 수 없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