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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도 죽어서도 충견, 시부야 역전의 “하치코”

[맛 있는 일본이야기 254]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도쿄 시부야 거리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그 복작대는 시부야 역 앞 작은 공원에 충견 하치의 동상이 서있다. “시부야 역의 하치 동상”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으로 어제 찾은 하치동상 앞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그 가운데는 하치의 모습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이 날도 하치는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충견 하치는 1923년 일본 북부 아키타현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아키타견(秋田犬)으로 한국의 진돗개만큼이나 뼈대 있는 족보 출신이다. 태어난 이듬해 충견 하치는 개를 좋아하는 동경제국대학 농학부 교수인 우에노 씨 집으로 오게 된다. 우에노 교수는 하치에게 꼬리표를 달아 화물열차 편으로 아키타에서 도쿄까지 실어 오는데 무려 20시간의 긴 여행길 이었다.

이때부터 하치는 우에노 교수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대우 받으며 무럭무럭 크게 되는데 충견 중에 충견인 만큼 주인의 극진한 사랑을 뼈 속까지 느끼게 된다. 우에노 교수 집에는 하치 말고도 죤과 에스라는 개가 있었는데 유독 하치만은 주인의 출퇴근 시에 현관에서 배웅을 했으며 어느 날 부터인가는 주인이 이용하는 시부야 역까지 마중을 나가게 된다.

하치가 우에노 교수 집에 도착한 뒤 1년 쯤 지난 뒤 그만 주인 우에노 교수는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숨져간다.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하치는 주인이 귀가하지 않자 그로부터 사흘간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의 장례식날도 하치는 시부야역에 가서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뿐만 아니라 주인이 죽은 뒤에도 하치는 주인을 잊지 못해 시부야역에 나와 늘 주인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개보존협회 초대회장인 사이토우 씨는 이러한 내용을 아사히신문에 투고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고 하치는 그 덕에 하치공(ハチ公)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명세는 하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었다.

 

   
▲ 사람들의 인기를 한몸에, 도쿄 시부야 역 앞 충견 “하치코” 동상

유명해진 하치는 시부야역에서 재우는 날도 많았고 또한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고 가기도 했는데 주인이 죽은 뒤 10년 쯤 되던 1935년 3월 시부야 역에서 조금 떨어진 개천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 되었다. 나중에 해부를 해보니 독약을 넣은 먹거리를 먹은 것으로 판명되었고 귀 부분도 무엇에 물린 자국이 있다고 전한다.

충견 하치의 죽음은 당시 화제가 되어 장례식날은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했으며 승려 16명이 독경을 읊고, 화한이 25개, 생화다발이 200개 편지와 전보가 각각 200여 통이 접수 될 만큼 하치를 아끼는 사람들의 애도 물결이 컸다. 그 뒤 하치를 그리는 사람들이 1935년 동상을 만들었으나 1944년 태평양 전쟁 때 금속공출로 철거되고 난 뒤 지금의 동상은 1948년 다시 만든 것이다.

살아서 주인에 충성한 하치는 죽어서도 사람들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지금도 시부야 역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