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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유럽 유학 제1호 화가 배운성의 “가족그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824]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화가 배운성(1900~1978)이라고 하면 언제나 “유럽 유학 1호”라는 별칭이 따라다닙니다만 오늘날과 같이 누구나 쉽게 떠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시절이라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고아가 되어 장안의 만석꾼 집안의 머슴으로 들어갑니다. 천성이 싹싹하고 영리한 배운성은 주인의 눈에 들어 중동학교 고등과(1년제)를 마치고 주인 아들의 말동무 겸 몸종으로 유학을 떠나는 행운을 얻습니다. 그 이전에 일본 와세다대학(1920∼22년)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1922년 독일로 건너가게 되지요.

독일에서는 베를린국립미술종합대(1925∼30년)에서 공부했으나 도중에 유학중인 주인집 아들이 병이 나는 바람에 그를 귀국시킵니다. 물론 이때 함께 들어왔다면 배운성의 역사도 그것으로 끝이 나겠지만 그는 홀로 남아 미술공부를 계속하였고 1927년 파리 살롱 도톤전 입선으로 본격적인 미술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어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미전 1등상을 비롯해 국제미전에서 잇따라 상을 받고 당시 세계 3대 화랑 중 하나로 꼽히던 파리 샤르팡티에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등 유럽 화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 화가 배운성(1900~1978)의 "가족그림", 등록문화재 제534호


배운성의 그림은 동양화 기법을 서양 유화에 접목시켜 한국적 정서를 형상화한 독특한 화법으로 당시 화가로서는 드물게 판화작업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뒤 베를린 쿠틀리에 화랑, 파리 사르팡티에 화랑 등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를 지닌 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 등 30년대 후반 전성시대를 구가했으며, 1937년 파리에 정착한 이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40년 귀국합니다만 그의 작품 167점은 그냥 남겨두고 돌아오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귀국 후 홍익대 초대 학장 등을 지내면서 미술교육에 힘을 쏟았지만 6·25 전쟁 당시 월북하는 바람에 1988년 해금되기 까지 그는 남한에서 금기의 미술인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의 대작인 “가족도”는 대형 가족초상화로 우리나라 최초로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화단에서 활동을 했던 배운성의 대표작으로 가치가 크다는 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