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1923년 9월1일 관동대지진 당시 스미다구에서는 혼쵸(本町)지역을 중심으로 대화재가 발생하여 아라카와(荒川) 강변에는 피난 나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 <조선인이 공격해온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져 구(舊) 요츠기바시(四つ木)에서는 군대가 기관총으로 조선인을 총살하였으며 일반인들도 살해 행위에 가담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아라카와 강의 방수로 개설 역사를 조사하던 어느 소학교 교사가 이 지역의 노인들로부터 관동대지진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교사는 이러한 증언을 토대로 이들을 추모하자고 주변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지 두 달 뒤인 11월 도쿄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헌병경찰의 감시 하에 아라카와 강변에서 두 차례에 걸쳐 희생자 발굴 작업이 이뤄졌는데 그때 유해를 어디론가 운반하였으나 희생자 유골의 행방은 그 후 조사할 수 없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여 유골도 무덤도 없이 진상도 규명하지 않은 채 86년이 흘렀다. 이에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역사를 반성하며 여러 민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본사회의 창조를 염원하여 민간 여러분이 힘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2009년 9월 5일
관동대지진시 학살당한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 봉선화”
▲ 아라카와 강변의 조선인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비
▲ 아라카와 강변 학살 현장에 추도비를 세운 니시자키(西崎雅夫方)씨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증언 |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 9월 1일 도쿄시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화는 불통되었고 교통기관은 파괴되었으며 수도와 전기도 끊겨 도시는 유령의 도시로 변했고 사람들의 인심은 흉흉했다. 7.9도의 대지진은 대장성, 문부성, 경시청 등의 주요 관공서 등을 무너뜨렸으며 65억 엔에 이르는 물적 손실과 사망, 행방불명자, 부상자를 포함한 이재민 등 인적 피해만도 100만여 명으로 추정될 정도의 큰 지진이었다.
민심이 극도로 불안해진 가운데 엄청난 재앙의 국가 위기를 수습하려고 일본경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하여 계엄령을 선포하는데 이때 도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치바현 등지에서 한국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느니 폭동을 일으켰느니 하는 등의 유언비어를 고의로 퍼뜨린다. 당시 계엄령 선포자는 미즈노(水野鍊太郞)와 아카지(赤池濃)로 이들은 3.1운동 때 조선에서 총독부 정무총감과 경무국장을 역임한 자들이다.
▲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 안의 도쿄도위령당(東京都慰霊堂), 이곳엔 일부 신원 확인이 안 된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50여 명의 유골도 안치되어있다.
조선인 학살을 일삼은 자경단(自警団)을 놓고 일본정부는 그동안 주민들이 신변방어를 위해 만든 자발적인 주민모임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 개입 사실을 발뺌해 왔다. 그리고는 후소샤(扶桑社) 교과서 등을 통해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조차 ‘조선인대학살’ 부분을 단순한 ‘민간조직에서 한 일로 국가는 모르는 일’로 은폐해 왔다.
▲ 도쿄위령당 안에는 아직 밝혀 지지 않은 조선인 희생자 유해가 방치되어 있다 |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두달 뒤인 11월 도쿄의 신문에 따르면 헌병경찰의 감시 하에 아라카와 강변에서 두 차례에 걸쳐 희생자 발굴 작업이 이뤄졌는데 그때 유해를 어디론가 빼돌렸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2009년 9월 5일 이곳에 세운 추도비에 자세히 적혀있다. 이 비문은 관동대지진 때 도쿄도 스미다구 아라카와(荒川) 강변에서 일어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사죄의 뜻에서 양심있는 일본인이 세운 비문이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은 여러 곳에서 이뤄졌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스미다구에서는 혼쵸(本町)지역의 아라카와(荒川) 강변, 치바현 나기하라마을의 구(舊) 육군 나라시노 연습장 등으로 현재 이날의 학살을 기억하고자 치바현의 관음사 위령비를 포함하여 4곳에 조선인 추도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 나기하라 학살현장에서 증언을 하는 팔순의 오다케 할머니
그렇다면 관동대지진에 희생당한 사람은 몇명일까? 일부 보도에는 6천명에서 7천명을 이야기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당시 학살된 조선인 수는 공식 기록보다 3.4배나 많은 2만 3,058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선인 학살과 관련된 정확한 피해사실의 규명이 하나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한 희생자 숫자조차 파악이 안되고 있는 것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일본 경찰에 의한 조선인 학살의 은폐사실을 정확히 밝히고 도쿄 위령당에 방치된 조선인 희생자 유골을 신속히 파악하여 가족에게 인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