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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우키시마폭침 현장에서 향을 사르는 김리박 시인

[맛 있는 일본이야기 260]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침 9시 반 차를 몰아 마이즈루를 향했다. 해마다 아내랑 둘이서 추도식이 열리기 이삼 일 전에 가서 추도비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향을 사른 뒤 가져간 꽃과 과일 그리고 곡주를 올리면서 희생된 조선인들을 기렸으나 올해는 아내가 일이 있어 혼자 다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도비 주변의 무궁화는 탐스런 꽃을 피웠고 원한의 바다는 잠잠했다. 요즘 건강이 안 좋아 장거리 운전이 몹시 피곤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몇 번이나 쉬면서 왔다.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키시마호 폭침의 비극을 알리는 추도비에는 꼭 다녀 올 생각이다. 요에(余江勝彦)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지역민들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지켜주는 고마움이 이곳에 올 때마다 든다.”

이는 교토에서 우리 토박이말로 시를 쓰는 재일동포 시인 김리박 선생이 우키시마호 폭침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다녀와서 쓴 글의 일부다. 일본표기로는 “우키시마호침몰순난자비(浮島丸沈殉難者の碑)”라고 부르는 이 추도비의 유래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 1978년 8월 24일 세운 우키시마호 폭침 희생자 추모비


일제강점기 일본의 탄광에서, 군수공장에서 힘겨운 노역을 하던 한국인들은 8월 15일 감격의 해방을 맞아 꿈에도 그리던 고국행 배에 올랐다. 한국인 7,000여 명은 해방되던 1945년 8월 22일 우키시마호(浮島丸)를 타고 일본 북동부의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돌연 이 배는 교토 앞바다 마이즈루항으로 뱃머리를 돌렸고 급기야 8월 24일 오후 5시20분 ‘우키시마호’는 폭침되어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고향땅을 밟기도 전에 배에 타고 있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진실로 참혹한 사건이지만 국내에는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승선자 7,000여 명 중 4,000여 명이 교토 마이즈루항 앞바다에 수장 된 지 올해로 69년을 맞이한다.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우키시마호의 도리우미 함장은 사건전모를 발표하고 조선인 3,735명 중 524명과 일본인 25명을 합해 총 54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승선장부가 없는 상황에서 일본측의 이런 숫자는 무의미한 것으로 아직 이 사건의 정확한 전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해마다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김리박 시인


폭침의 원인을 두고 일본 정부는 태평양 전쟁 도중 미국이 설치해 놓은 어뢰에 배가 폭발했다고 했지만 생존자들은 “일본이 강제노역 등의 보상을 피하려고 배를 폭파했다”고 절규하고 있다. 사건 이후 20년이 지난 1965년 박경식 씨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재일동포 작가 김찬정 씨의 《우키시마호는 부산항으로 향하지 않았다》등이 발표되면서 이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러나 아직도 이 문제는 완전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의혹투성이다.

일제가 저지른 아시아 침략의 한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할 1945년 8월 24일 교토 앞바다 “우키시마호폭침사건”은 엊그제 9월 1일의 관동대지진시 조선인 대학살사건과 함께 하루속히 그 진상이 밝혀져야 할 사건이며 유가족들의 한 서린 마음을 보듬어 주어야 할 사건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자 하는 일본이라면 이 문제는 일본이 앞장서서 풀어야 할 숙제이다.


금세기가 지나기 전에 나는 이 참혹한 사건의 진상규명 소식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