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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내시들이 죽어서 간 곳 초안산(楚安山) 공동묘지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49]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서울 강북에 초안산(楚安山)이라는 해발 114.1m의 야산이 있는데, 녹천역 뒷산이 바로 초안산입니다.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창작스튜디오를 갔을 때 바로 근처에 초안산이 있어서 올라가보았습니다. 왠 무덤들이 그리 많은지... 요즈음 형성된 공동묘지가 아니라 조선 시대의 공동묘지입니다. 

   
▲ 내시들의 공동묘지가 있는 초안산(楚安山)

왜 여기에 조선시대 공동묘지가 있을까요? 조선시대 경국대전이나 속대전에는 한양에서 십리(4.7km) 이내에는 무덤을 쓰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서울의 4소문 가운데 광희문은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고 하여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불렀지 않습니까? 

이 문으로 나간 시체가 10리를 바로 벗어난 곳에서 편히 쉴 곳으로 최적지가 바로 초안산이었습니다. 도봉산, 북한산 일대도 자격 요건에는 해당되지만, 이 산들은 산세도 험하고 돌산이라 묏자리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였지요. 더군다나 풍수지리로도 초안산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안 이씨 문중에서도 초안산에 묘역을 써서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군요. 그런데 초안산에 입주한 망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내시입니다. 내시들은 동류의식이 있어 죽어서도 같이 모여 있는 것인가요? 

그런데 여기 있는 내시들 무덤 가운데 인조 때의 통훈대부 승극철(承克哲)은 부부 합장묘입니다. 내시가 부인이 있다고 하니 좀 이상하지요? 그러나 결혼한 내시도 있답니다. 물론 내시라 정상적 부부생활을 할 수 없으니 자식을 낳을 수는 없고 양자를 들이지요. 


   
▲ 인조 때의 통훈대부 승극철(承克哲)은 부부 합장묘

한국전쟁 때에는 국군이 초안산에 창동 저지선을 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기도 하였다는군요. 그동안 이곳은 무관심 속에 그냥 공동묘지이겠거니 하며 버려져 있었는데, 이곳이 조선시대 공동묘지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2002. 3. 9. 사적 44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초안산이 죽은 내시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면 산 내시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인덕원입니다. 마을 이름에 인덕(仁德)이 들어간 것을 보면 내시들이 주위에 덕을 많이 베풀었나봅니다.  

그럼 인덕원(仁德院)이라고 하여 ‘원(院)’이라는 이름은 왜 들어간 것일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여행자 숙소, 특히 공무로 여행하는 이들의 숙소가 있는 곳에 ‘院’이란 이름이 들어가고, 지금은 그런 숙소가 없어졌어도 지명에 그대로 ‘院’이 남게 된 것입니다. ‘퇴계원’, ‘장호원’, ‘사리원’, ‘이태원’, ‘조치원 등이 다 그렇게 해서 생긴 지명이지요. 

청계산 원터골 아시지요? 행정명으로는 원지동(院址洞)인데, 이곳에도 옛날에 원(院)이 있었다는 얘기이지요. 과천에서 서울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남태령 고개를 넘기도 했지만 남태령에 산적들이 많아 청계산 원터골로도 많이 온 모양입니다. 

남태령 하니까 하나 더 생각나는 것이 있네요. 월치전(越峙錢)입니다. 고개를 넘는 돈이라... 무엇일까요? 남태령에 산적이 많다 보니 고개 밑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로 고개를 넘고 또 고개를 넘을 때 과천현감이 허락하여 고개 밑 마을의 젊은이들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행하여 넘었답니다. 그러면 고개를 넘은 사람들이 고맙다고 돈을 모아서 이들에게 주었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당연시 되어 가만있으면 스스로 돈을 요구하였답니다. 그래서 월치전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이지요. 혹자는 이놈들 꼴 보기 싫어 원터골로 돌아갔다고도 하고요. 

이왕 원(院) 얘기를 했으니까 역참(驛站) 얘기로 끝을 맺지요. 조선 시대 신속하게 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한 파발(擺撥) 제도가 있어, 기발(騎撥)은 25리, 보발(步撥)은 30리마다 1참(站)을 두었답니다. 

‘역삼동’, ‘역촌동’, ‘역곡’이란 동네 이름이 이래서 생긴 것이지요, 말죽거리도 역이 있어서 말에게 죽을 먹이다보니 생겨난 지명이겠지요? 구파발은 옛날 파발이 있던 곳이라고 구파발(舊擺撥)이고요. ‘한참 걸린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참과 참 사이가 꽤 멀었다고 생각하여선지 ‘한참 걸린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지요. ‘새참’이니 ‘밤참’이니 하며 먹는 얘기도 참(站)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참에서는 쉬면서 밥도 먹으니까 참에서 잠시 쉬면서 먹는다고 새참, 밤에 참에서 음식을 먹는다고 밤참이 된 것이겠지요.  

이거 초안산 공동묘지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 꼬리를 물고 역참까지 왔네요. 하여튼 땅이름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이 많습니다. 여러분들 사시는 동네나 사무실이 있는 동네에도 재미있는 유래가 있겠지요? 혹시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 관심 가져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