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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문익점, 목화씨 훔쳐오지 않았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848]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원나라 농민들이 목화를 심는 것을 보고, 추위에 떠는 백성들이 솜옷을 입을 수 있도록 목화씨를 고려에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원나라는 목화가 다른 나라에 퍼지는 것을 막았기에, 아무도 목화씨를 가지고 국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원나라 경비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목화씨를 붓대에 넣어 고려로 돌아왔다”

 

   
▲ 문익점면화전시관의 문익점 영정

한 블로그에 위와 같은 글이 올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태조실록(太祖實錄)》 7년(1398년) 6月 13일자 기록 “문익점 졸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문익점이) 계품사(計稟使)인 좌시중(左侍中) 이공수(李公遂)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元)나라 조정에 갔다가, 장차 돌아오려고 할 때에 길가의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그런가 하면 《고려사》 기록에도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얻어가지고 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에는 목화가 널려 있어 금수품목도 아니었기에 훔쳐올 필요가 없었지요.

여기서 문익점(1329~1398)과 관계된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것이 또 있습니다.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어와 키우면서 이 땅에서 무명천(면직물)을 처음 짜기 시작했다.”는 그동안의 통설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지난 2010년 7월 15일 국립부여박물관이 밝힌 것에 따르면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때보다 800년 앞선 백제의 면직물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익점이 원나라로부터 목화씨를 들여오기 이전 고조선 때부터 이미 목화를 재배하고 동아시아 최고의 옷감 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상명대 박선희 교수는 말합니다.

 

   
▲ 경남 산청의 문익점전시관(오른쪽)과 목화 씨앗을 맨 먼저 뿌린 곳 빗돌

다만, 문익점이 가져온 것은 인도면으로 나무이며, 꽃의 크기가 술잔만 하지만, 그에 견주어 우리나가 기르던 초면은 풀이고 흰 버들개지처럼 작아 생산성이 떨어졌던 것이 다른 것이지요. 누가 문익점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역사를 왜곡한 듯 한데 인도면을 들여와 목화의 생산성을 높여 백성이 쉽게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도록 한 것만으로도 이미 영웅이기에 역사를 왜곡해가면서까지 영웅을 만들면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