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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산자의 피부를 벗긴 일제의 만행 "하얼빈 731부대 유적지"를 가다

[만주에서 찾아보는 배달겨레의 혼 3]

[우리문화신문 =  중국 하얼빈 이윤옥 기자]  “이 화면은 수용자를 묶어 놓고 팔목을 자르는 모습인데요. 그냥 자르는 것이 아니라 팔에 칼집을 넣은 뒤 자르는 모습입니다.” 중국인 안내원의 말은 격앙되어 있었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면 속 소녀의 팔은 두 동강이 났다. 칼집을 넣은 팔목에서는 피가 낭자하게 흘러 나왔다. 이어서 수용자인 앳된 소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좁은 전시관 안을 가득 메웠다. 731부대 전시관을 찾은 중국인 관람객들의 비명소리도 동시에 들리는 듯했다.


   
▲ 여성 수용자를 실험대에 올려놓고 생채 실험을 하는 장면, 산채로 껍질을 벗기거나, 강제 임신, 낙태를 시키는 실험을 하는 등 그 만행은 입에 담을 수 없다.

 

   
▲ 영하에서 산 사람을 얼려보는 실험 모습 재현


이것은 9월 26일 기자가 찾은 중국 하얼빈시 평방에 자리한 731부대 전시관 안의 모습이다. “수용자들 가운데는 독립운동을 하다 잡힌 조선인도 많았습니다. 이곳 731부대로 잡혀온 사람들은 살아나간 사람이 없습니다. ” 안내원은 끊임없이 당시 731부대 안에서 벌어진 잔인하고 끔찍한 생체실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고 전시관 벽면 가득 천인공로할 사진과 당시 상황을 재현한 모습이 섬뜩하여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2005년 8월 2일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1,463명의 명단을 발굴 공개했는데 한국인 희생자 한성진(韓成鎭·1913년생·함북 경성·1943년 6월 25일 체포), 김성서(金聖瑞·함북 길주·1943년 7월 31일 체포), 고창률(高昌律·1899년생·소련 공산당 첩보원·강원도 회양군 난곡면·1941년 7월 25일 체포) 등도 항일운동 또는 반파쇼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끔찍한 실험대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 일본군의 만행을 설명하는 중국인 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관람객들


   
▲ 젊은 중국인 청년들이 전시된 일본군의 만행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일부 수용자의 위는 외과적으로 절제되고 식도와 장을 연결하였다. 일부 수용자에게서 뇌, 폐, 간의 일부가 제거되었다.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피부를 산채로 벗겨내었다. 의식은 살아 있는 반 시체상태의 실험자는 소각 처리되었다.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절단하여 각각 상대방의 국부에 이식하는 성전환수술실험을 했다.” 이 보다 인간이 더 잔인할 수 있을까? 인간이기를 포기한 일제의 잔혹함은 끝이 없이 전식관 마다 차고 넘쳐났다.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 앞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한숨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왜 아니 그럴까? 자기의 동포가 까닭 없이 잡혀 산채로 껍질이 벗겨지고 세균을 강제로 집어넣어 퉁붕부은 모습으로 시커멓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이 눈앞에 펼쳐진 정경이었으니 말이다.


   
▲ 세균을 직접 주입하는 장면

 

일제는 1936년 만주 침공 시 세균전을 고려하여 비밀연구소를 만들게 되는데 당시 이곳은 방역급수부대로 위장하였다가 1941년 만주 731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1940년 이후 해마다 600여 명의 수용자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되어 최소한 3,000여 명의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일본군이  유독가스가 담긴 통이나 폭탄을  패전 뒤에 파묻고 도망가는 바람에  현재도 농촌 지역에서 가스통이나 폭탄이 터져 피해를 입는 주민들이 속출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

 

1947년 미 육군 조사관이 도쿄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936년부터 1943년까지 부대에서 만든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출혈열 101개 등 수백 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및 생체해부실험 등과 동상 연구를 위한 생체냉동실험, 생체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 총기관통실험, 가스실험 등이었다.


 최근 731부대 장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가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발견되어 일본군의 세균전 및 생체실험이 사실로 입증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페스트균을 배양해 지린성[吉林省] 눙안[農安]과 창춘[長春]에 고의로 퍼뜨린 뒤 주민들의 감염경로와 증세에 대해 관찰했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이로 인해 중국인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 희생자들의 이름을 벽면 가득 새겨 놓았다

 

   

▲ 희생자들에게 헌화하는 도다이쿠코 작가


   

▲ 벽면 가득히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종전 후 이시이시로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세균전 연구결과를 모두 미군에 넘기는 조건으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면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얼빈 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자리한 평방(平房, 핑황)지역의 24만 8천㎡(약 73,000평)나 되는 어마어마한 넓이에 일제가 세웠던 731부대 터에 현재 중국은 전시관을 마련하여 당시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 알리고 있다. 전시관 입구 담장 벽면에는 “일제의 만행을 잊지말자”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으며 바로 옆 중학교 교정에서는 학생들이 체육활동을 하면서 씩씩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일제의 잔학함”을 응징하는 소리처럼 크고 우렁차게 들렸다.


   

▲ 하얼빈 평방에 위치한 731부대 모습이며 본부 건물에 전시관이 있다


   
▲ 하얼빈 평방지역에 자리한 일본군 만행의 현장 731부대 입구에 선 기자


깊어 가는 동북지역의 가을하늘을 뒤로하고 731부대의 만행 현장을 나오며 함께한 도다이쿠코 작가는 “왜 이러한 사실을 일본은 시인하고 사죄하지 않는지 모른다. 아니 왜곡이나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지만 기자의 마음은 어둡고 우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