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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손기정 일장기 말살사건 주동자 수주 변영로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52]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탕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노래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위 시는 1922년 3월 《신생활》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수주 변영로 선생의 시 ‘봄비’입니다. 화곡로를 따라 서울시를 막 벗어나면 고강지하차도가 있는 삼거리에 수주 변영로 선생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이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매번 좌회전하면서 수주 선생을 쳐다만보고 가다가 어느 날은 수주 선생을 뵈기 위해 차를 세웠습니다. 

 

   
▲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수주 변영로 동상

수주 선생의 동상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짐작이 가시겠지요? 수주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수주 선생의 무덤도 근처 고강동 능골산에 모셔져 있기에 부천시에서 이곳에 선생의 동상과 시비를 세운 것입니다. 

수주 선생은 왼손에 책을 들고 앉아 느긋하게 저를 내려다보십니다. 위 시는 선생이 앉아 있는 곳 옆의 시비에 새겨져있었습니다. 수주 선생을 올려다보니 먼저 생각나는 것은 ‘논개’라는 시이고, ‘酩酊 40년’이란 수필집입니다. ‘수주’ 하면 술을 빼놓을 수 없겠죠. 잠시 수필집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지요. 

나는 아소시(兒少時)부터 교오(驕傲)하기 짝이 없었다. 거의 병적이었다. 따라서 동무가 없고 어른들하고 어디를 갈 때에도 훨씬 앞서거나 훨씬 뒤떨어져 가며 '아무개야' 하고 노상에서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이 무삼 교만일꼬. 교(驕)에는 종류가 허다하니 재주가 있으면 재교(才驕), 학문이 있으면 학교(學驕), 돈이 있으면 재교(財驕), 지체가 좋으면 벌교(閥驕) 등등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상에 열거한 어느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다. 턱없이 가량없이 분수없이 교만하였다. 거의 고질화된 교만으로 안팎 모르는 사람이 없어 대개 무벌(無罰)로 통과되었다. 

지금 생각하여도 포복절도(抱腹絶倒)할 것은 하룻날 술에 취하여 사랑에 혼자서 있노라니 정영택(鄭永澤, 安立) 교관이 아버지를 찾아오셨다. 세상이 다 아는바 정옹(鄭翁 ― 당시는 30대이었지만)은 바짝 마르기로 유명하다. 사랑 미닫이를 열고 보니 찾는 아버지는 안 계시고 술 취해 누운 나뿐이었다. 이하는 정옹과 나 사이에 진무류(珍無類)의 대화. 

정옹 진중치 않은 어조로,
"영복아!"
"……."
"아 이놈 영복아!"
"원숭이 왔나?"
성미를 잘 아는 정 교관은 못 들은 체,
"어르신네 어디 가셨니?"
"어디 출입하셨어."
"
어딜 가셨을까?"
"모르지."
"이놈, 어린놈이 대낮부터 술이 취해서 학교도 가지 않고."
"대낮이라니, 술은 밤에만 먹는 거야?"
기경(奇驚)하기로 유명한 정 선생도 이에는 어안이 벙벙.
"에이, 고 자식."
하고 떠나려 할 때 나는 한걸음 더 내치어,
"여보게, 히로(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수입된 양담배) 한 개만 주고 가게."
망설망설하다가 홱 한 개를 던져 주고 총총 문을 나시었다. 
                                                        --「眼下無人의 驕童」, 25쪽~27쪽 


   
▲ 수주 변영로(왼쪽), 변영로의 《수주수상록》

하하! 어린놈이 술에 취하여 아버지 친구 분에게 반말조라니! 수주 선생의 술벽은 어려서부터 유명하였군요. 설명을 보니 부천의 옛 지명이 “수주(樹州)”였으며, 변영로 선생이 호를 이곳 지명 ‘수주’에서 따온 곳이네요. 그리고 부천시 “오정동”이란 지명도 인조 때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낸 변삼근의 아호랍니다. 그러니까 수주 선생은 집안 대대로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오셨군요. 

기적비(紀積碑)를 보니 수주 선생의 형님들도 대단하였습니다. 맏형은 한말과 일제 초기에 판사와 변호사를 한 변영만 선생이고, 중형은 대한민국 건국 후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변영태 선생입니다. 저는 수주 선생을 문학자로서만 알고 있었는데, 수주 선생은 1919년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셨네요. 

그리고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과 청구구락부 조직책 주동자로 구속되어 107일간 모진 고문과 형벌을 받은 항일운동가이시기도 하구요. 그렇기에 많은 문학가들이 일제 말기에 일제의 강요에 못 이겨 친일 작품을 조금이라도 발표했을 때에도 수주 선생은 한편도 이를 쓴 적이 없습니다. 

수주 선생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갑니다. 바로 옆이 김포공항이라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수주 선생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화곡로에서 부천 쪽으로 가다보면 갑자기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가서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전에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할 때 유심히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수주 선생의 동상을 본 기억도 나네요. 

아무튼 매번 이 삼거리를 지나다니면서 수주 선생을 그냥 지나침에 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차에서 내려 차분하게 수주 선생을 뵙고, 수주 선생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더구나 수주 선생이 문학자일뿐 아니라 항일운동가라는 것까지 알고 나니 기분이 뿌듯합니다.

 * 변영로( 卞榮魯, 1897 ~ 1961)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한 시인.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은 매우 유명하며 이밖에 주요 작품으로 《두만강 상류를 끼고 가며》, 《정계비(定界碑)》, 《논개》 등이 있다. 1924년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을 노래한 시집 《조선의 마음》을 내놓았으며, 손기정 일장기 말살사건의 주동자로 고초를 겪은 항일문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