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죄명은 치안유지법 위반이라고 붙이고 일제는 조선어학회가 국체변혁을 목적으로 만든 결사조직이라는 죄를 뒤집어 씌워 혹독한 고문을 시작하였다. 일제는 조선어사전까지 뺏어다가 사전을 편찬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조선어사전편찬은 장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일본말을 사용하는 시대에 한글을 연구 보급하려는 것은 조선문화의 향상과 민중 민족의식을 높여 종래는 조선독립을 꾀하려는 것이다”
위는 1942년 10월 10일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어학회사건의 진상 발표”에 나오는 기사의 일부입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한글 학자들이 잡혀 들어갔으며 함흥지방법원에서 16명이 공판을 받고 이윤재, 한징 두 분은 심한 고문으로 옥사를 당하고 맙니다. 한징(韓澄, 1886 ~ 1944) 선생은 서울 출신으로 1927년 계명구락부가 추진하던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였다가 사전편찬이 중단되자, 조선어연구회의 우리말 사전 편찬 활동에 합류하였습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이윤재 등과 조선어사전의 편찬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31년 이후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표준어 제정과 우리말사전의 편찬에 헌신하셨지요.
▲ 옥중순국한 조선어학회사건의 한징 선생, 한징 선생의 조선말사전 자료 유품
이 무렵 조선어학회의 월급이 박봉이어서 대부분 저녁에는 인쇄소에서 교정 일을 보는 경우가 많았으나 선생은 그 시간도 쪼개어 쉴 새 없이 사전 원고를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선생의 꿈은 오로지 조선말 큰 사전을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 내놓아 우리 말글을 잊지 않는 겨레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가 조선어말살정책 일환으로 조선어학회 인사들을 잡아들이는 바람에 광복을 1년 앞두고 옥중 순국을 하게 됩니다. 국가보훈처는 평생 우리말과 글을 지키다 순국하신 선생의 뜻을 받들어 2014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생을 뽑았으며 정부는 1962년 한징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엊그제 한글날을 맞아 선생의 ‘우리말글 사랑 정신’을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