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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배울 때는 엄한 스승, 끝나면 다정한 어머니

[국악속풀이 180]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묵계월 명창이 목이 좋거나, 운이 좋아서, 또는 선생을 잘 만나서 명창이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의 결과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20세 이전에 방송을 통해서 젊은 명창 묵계월의 이름은 온 나라에 퍼져 나갔다는 이야기, 노래뿐이 아니라 송서로 유명한 이문원의 삼설기(三說記)를 착실하게 배워 오늘에 이어준 고마운 존재라는 이야기, 송서는 다른 노래를 배우지 않고는 부르기 어려운 소리라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힘차면서도 구성진 묵계월 명창의 소리는 연습을 통해서 얻은 결과라는 이야기, 무엇보다도 묵계월의 소리속을 제대로 맛보려면 성음사에서 제작한 <민요삼천리>라는 음반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 음반을 추천하는 이유는 죽헌 김기수(金琪洙)선생이 민요 반주를 위해 관현악으로 편곡하였는데 묵계월의 노래와 반주음악, 합창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우리민요의 멋과 특징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명반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경기창은 묵계월과 김옥심(金玉心)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고, 남도창은 성창순, 성우향, 한농선, 오정숙, 남해성 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당시 국립국악원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필자도 이 연습에 참여한 바 있다. 연습장에는 독창자를 비롯하여 관현악 연주자, 합창단원 등 매일 수십 명이 모여 연습을 하였는데 우리가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있는 점은 묵계월 명창의 연습태도였던 것이다. 그는 대명창이면서도 항상 연습시간을 충실히 지킨 것은 물론, 연습이 시작되기 전 누구보다도 먼저 나와 목을 풀고 있었다. 우리 젊은 연주원들은 “묵계월과 같은 대가도 저렇게 연습을 열심히 한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개 이름이 나고 바빠지게 되면 연습할 시간도 없고, 평소실력으로 준비 없이 무대에 오르기 쉬운 법인데, 우리가 지켜 본 묵계월은 그런 명창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습이 끝나고 차후의 연습계획이나 시간약속 등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거의 자기의 주장이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의 일을 뒤로 하면서 남을 먼저 배려하는 넓은 마음씨나 그 겸손한 태도야말로 젊은이들에게 묵계월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든 기본이 아닌가 한다.

또한 연습이 끝난 후에는 바쁘게 자리를 뜨지 않고 젊은 연주자들이나 학생들까지 일일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수고했어요”, “내일 또 만나요” 등 자세를 낮추는 따뜻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유명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세를 낮추는 겸손한 태도는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 생전에 묵계월 선생의 쾌유를 빌면서 그린 이무성 한국화가의 그림

경기도 과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동가극단의 후예인 묵계월의 제자 임정란도 묵계월 선생은 소리를 지도해 주실 때는 매우 엄격한 스승이었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마치 어머니 같이 생선탕도 끌여주시고, 냉면도 사 주시던 따뜻한 분이었다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당대 최고의 명창을 스승으로 모셔서 소리를 배웠고, 연습을 생활화 하면서 얻어낸 자신만의 특유한 목구성을 갖게 되었던 묵계월, 그 위에 자기주장이나 목소리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나 자세를 낮추는 겸손한 태도 등은 묵계월의 활동무대을 더욱 확대시켜 당대 최고의 경기 명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묵계월은 1965년도부터 한국국악협회의 민요분과 위원장이나 고문직을 맡아가면서 경기민요의 발전을 위한 대국민 활동이나 공연활동의 폭을 본격적으로 넓혀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공연 활동물들은 <대한민국국악제>의 민요공연이나, <무형문화재>의 발표공연, 그리고 <인간문화재 대제전>이나, <명인명창 한마당>, <종합민속예술제>, <한국의 문화유산>, <한국의 신명> 등 이다.

그 중에서도 묵계월의 고희기념 공연이었던 <인생70, 소리60 발표회>나 <묵계월 1995, 끝없는 소리길>, 그리고 <묵계월 경기소리 및 삼설기 발표회> 등의 기획 공연들은 이전의 단순한 노래중심의 공연물에서 탈피하여 구성이나 내용을 알차게 만들고, 의미 부여를 분명하게 하여 매우 돋보인 무대로 평가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굵직굵직한 공연무대에서 묵계월을 위시한 경서도 명창들은 높은 예술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왔는데, 이러한 활동들은 그 자체로도 경기소리의 저변을 확대하는 확산운동이었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경서도 소리를 위한 전공자들을 선발하기 시작하였고 본격적으로 경서도창이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크게 일조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공자가 많아지면서 탄력을 받게 된 경서도 소리는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이나 대도시의 문화원, 또는 사회단체에서는 경서도 소리를 거의 필수과목으로 지도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초등학교를 비롯한 중, 고등학교에 국악강사가 파견되어 일선학교에서의 국악교육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예술인으로 대접받지도 못했던 소리꾼에 불과했으나 묵계월이 가꾸고 키운 열매는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이요 독특성을 지닌 전통문화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묵계월의 제자들 가운데 임정란, 최근순, 유창 등은 <경서도 소리극(京西道唱劇)>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하여 문화계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남도(南道)의 창극이 아니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높은 벽으로 생각되어 온 것이 곧 창극분야였는데, 이제는 경서도 소리극들이 심심치 않게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묵계월이 남기고 간 업적은 소리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공연, 소리극, 교육, 연구 등 각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