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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략기 중국 내 “일본영사관”은 고문의 현장

[맛 있는 일본이야기 267]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19세기 많은 조선 난민들이 연변지역에 이주해 와 도문강 연안에 정착하였다. 1905년 일로전쟁(러일전쟁)후 조선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되었다. 1907년 8월 일본은 소위 조선사람의 생명 안전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용정촌에 기어들어 불법적으로 통감부간도파출소를 세우고 중조변계분쟁을 일으켰다. (가운데 줄임) 그뒤 1909년 11월 2일 간도일본총영사관을 세워 산하 5개 영사분관을 두고 방대한 경찰 기구를 설립하여 간도를 포함한 동북지방의 침략 발판으로 삼았다. 전시실은 진실한 물증과 역사자료를 이용하여 간도일본총영사관의 내막을 폭로하고 있다.” (필자가 문구를 읽기 쉽게 수정)

   
▲ 악명 높은 용정 시내의 간도총영사관 건물, 지금은 용정시인민정부 청사로 씀

이는 길림성 용정 육도하로(六道河路 869)에 있는 옛 간도일본총령사관 터에 있는 “간도일본총영사관 죄증 전시관” 앞에 있는 안내문이다. 1909년에 세운 건물 치고는 제법 튼튼해 보였는데 옛 간도일본총사령관 터에 여러 채의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중앙 건물은 “룡정시인민정부” 청사로 쓰고 있으며 청사 건물 뒤에는 일본의 잔학성을 전시하고 있는 중국식 표현으로 ‘죄증(罪證)’ 전시실이 있다.

 

   
▲ 안중근 의사가 잡혀있던 하얼빈총영사관(오른쪽)하얼빈총영사관 앞에서 팔이 묶인 채 서있는 안중근 의사

   
▲ 구 일본영사관 자리엔 현재 화원소학교 가 들어서 있다.

용정의 영사관뿐만 아니라 하얼빈 영사관 등 중국 땅에는 여러 곳에 옛 일본영사관 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과 달라 당시의 영사관에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다가 가두고 고문하기 위해 반드시 지하에 고문실과 감옥을 만들었다. 하얼빈 영사관의 경우에는 안중근 의사 등 숱한 독립운동가가 잡혀 고문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옛 일본 영사관 건물을 찾아가게 되면 맨 먼저 건물의 지하실에 눈이 간다.

 

   
▲ 러시아와 중국 국경지역 수분하의 구일본영사관, 얼마전 까지 영어학원이었으나 현재는 비어 있는 상태(2014.9.28), 건물 1층 부분 이하가 고문실로 쓰인 곳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수분하(綏芬河)에 있는 일본영사관 건물은 현재 말끔하게 수리되어 외관상으로는 전혀 흉악한 영사관 건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9월 28일 찾은 이 영사관 건물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영락없이 지하 감옥을 파 놓았다. 건물 외관이 하도 예술품처럼 근사해 보여 건물 밖에서 어른거리다 현관문을 보니 자물쇠가 열려 있어 들어가 보았다. 사람은 없고 얼마 전까지 영어학원으로 쓴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인 이 건물에서도 틀림없이 조선인들을 잡아다 온갖 고문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허울은 멀쩡한 “영사관” 이름을 달았지만 실상은 일제 침략시대에 ‘고문과 인권유린’의 악명 높은 곳이 바로 중국 내에 남아 있는 “옛 일본영사관”이다.

 

   
 ▲ 간도 옛 일본영사관 자리에 붙은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