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기자] 저번에 차일혁 총경에 대한 글을 기고했는데, 차일혁 총경이라는 분을 전혀 몰랐던 분들에게는 그 시대에 그런 분이 있었나 하는 놀라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당시 시대 상황에 어떻게 빨치산 대장의 장례를 치러줄 수 있었느냐 하는 놀라움이 컸을 것입니다.
▲ 인간에 대한 예우가 끔찍했고, 예술을 사랑했던 차일혁 총경
사실 차대장이 처음부터 장례를 치러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차대장이 사살 보고를 하니 경찰 간부가 이현상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해 서울로 보냅니다. 우리 사회에 꼭 이렇게 과잉 충성하는 사람들 있죠? 그런데 이대통령이 보기 싫다고 거절하여 창경원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가 시신은 다시 돌아왔는데 이현상의 친척들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였답니다.
그리하여 차대장은 토벌을 함께 한 정인주 총경과 상의하여 정중히 화장해주기로 한 것이죠. 왜 있지 않습니까? 역사를 보면 치열하게 싸우다가 상대방 적장을 죽였을 때 적장으로서 예우를 갖춰 장사지내는 얘기 말입니다. 차대장도 서로 한판 겨루었던 상대로서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적장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이후 정인주 총경은 동족끼리의 증오와 살상에 깊은 인생의 회의를 느꼈는지 전쟁이 끝난 후 속세와 인연을 끊고 스님이 되었다는군요.
얘기 나온 김에 차대장에 대한 일화 몇 가지 더 얘기하죠. 1951년 6월 11일 전북일보에 공비 토벌중 소 2마리 노획하였으니 주인은 찾아가라는 공고가 실렸었다는군요. 그 당시 상황으로는 공비 토벌중 노획한 것이니까 소를 잡아 굶주리는 부하들 배불릴 수도 있었을 텐데, 차대장은 소를 잃어버린 농민들의 심정을 생각하고 신문에 공고를 낸 것이지요.
1954년 무주경찰서장 재직 시에는 집이 파괴되어 움막생활을 하는 주민들을 보다 못하여 참호용 자재로 주민들에게 집을 지어주기도 했고, 그 후 1954년 9월 충주경찰서장으로 부임하여서는 충주직업청소년 학교를 만들어 전쟁으로 부모와 집을 잃은 떠돌이 소년들이 학교공부와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군요.
차대장은 또 예술인이었습니다. 차대장은 임방울 명창을 비롯한 예술인들을 관사로 초청하여 임방울 명창의 소리를 할 때에 자신이 직접 고수(鼓手)가 되어 북을 두드리기도 하였다는군요. 그 때 임방울 명창의 소리를 녹음한 릴 테이프를 아들 차길진씨가 광주시에 기증을 하였다는데, 임방울 명창의 육성을 녹음한 릴테이프는 최초로 공개된 것이랍니다.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한 차대장, 또한 예술을 사랑한 차대장. 차대장의 이런 인간미는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차대장의 할아버지 차치구씨는 동학혁명 시절 전봉준의 참모로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고, 아버지 차경석씨는 일제 강점기 민족종교인 보천교 지도자로 활약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답니다.
▲ 차일혁 총경이 좋아했던 임방울 명창
그리고 이러한 내력은 아들 차길진씨에게도 이어져 차길진씨는 이러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애정산맥’이라는 소설로 내고, 세간에 뛰어난 영 능력자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차길진씨의 위 소설을 바탕으로 ‘눈물의 여왕’이라는 대중가극이 나오고, ‘카르마’라는 오페라도 나왔더군요.
또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여명의 눈동자’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 ‘장하림’의 모델이 차대장이라네요. 저는 대학 다닐 때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던 ‘여명의 눈동자’를 우연히 보고 너무 재미있어 방학 때 학교 도서관에서 1회 연재 때 신문부터 찾아내어 하루 종일 이를 읽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주인공 장하림의 매력에 푹 빠졌었는데, 그 장하림의 모델이 차대장이었다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에서 목격한 아들 차길진씨가 전하는 차대장의 마지막 모습은 자못 비장하기만 합니다. 차길진씨의 증언에 의하면 차대장은 조선의용대 팔로군의 노래인 ‘볼가강의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는군요. 그리고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고, 19시간 뒤 시신은 곰나루 근처를 도강하다 가라앉은 인민군 탱크를 끌어안은 자세로 발견되었답니다. 글쎄요, 저는 차일혁 총경이 인민군 탱크를 끌어안고 죽었다는 것은 잘 믿겨지지는 않네요.
차대장이 세상을 버린 지 56년.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기와 이념이 다른 사람들 주장에 대해서는 이해하려들지 않고 무조건 적으로만 간주하는 한쪽으로만 치우친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아직도 이념 대립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한 차일혁 대장, 새삼 그 분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