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내낀 봉우리 우뚝하고 물은 늠실거리는데
거울 속 민가는 푸른 봉우리와 마주 했네
외로운 돛단배는 바람 싣고 어디로 가는가
별안간 새의 자취 아득하구나
이는 최치원의 ‘황산강 임경대’를 읊은 노래로 여기에 나오는 ‘거울’은 맑은 물을 일컫고 있습니다. 사물을 비추는 것은 꼭 거울이 아니더라도 가능하지만 실물인 거울이 나타난 것은 그 뿌리를 청동기 시대에 두고 있습니다. 그 옛날 동경(銅鏡), 석경(石鏡), 은경(銀鏡) 따위는 통치자의 상징으로 쓰였지요. 고려 공민왕 때 이성계에게 은으로 만든 거울 10개를 주고 맞히도록 한 것도 실은 하늘이 이성계의 뛰어난 무술을 보이게 하여 낡은 고려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통치자를 세우기 위한다는 속사정이 있던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삼국사기》 열전에 보면 설녀와 가실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라 진평왕 때 설녀의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병역을 치른 가실이는 오랜 뒤에야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 고생을 해서 그만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지요. 그때 설녀와 가실이는 헤어지면서 나누어 가졌던 반쪽 거울을 맞추어 보고 혼인을 하게 되는 것처럼 예전에는 거울이 신물(信物) 곧 남녀 사이의 사랑의 정표로도 쓰였습니다.
▲ 심사정이 그린 명경대(明鏡臺)
거울에 관련된 속담도 많은데 “깨진 거울을 보면 재수가 없다”, “거울을 깨트리면 집안이 화를 당한다”, “꿈에 다른 사람이 거울에 비치면 흉하다”, “밤에 거울을 보면 쉬 늙는다” 따위처럼 거울에 관한 속담은 거의 부정적인 것이 많습니다. 한편 거울은 후대의 교훈이나 본보기가 되는 역사를 흔히 거울에 견주기도 하였는데 사감(史鑑), 통감(通鑑), 귀감(龜鑑)에서 ‘감(鑑)’이 거울을 나타내는 것에서도 알 수 있지요. 심사정이 그린 ‘명경대’ 그림에 보면 대상을 여기에 비추어 그 아래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에 따라 죄의 유무를 판단했다니 예전의 ‘거울’은 단순한 거울 이상의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귀하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