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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묵화의 백미 ‘묵죽화첩’을 그린 조선화가 ‘수문’

[맛있는 일본이야기 292]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1950~60년대에 미국유학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두뇌 유출된 한국학자들에 대한 보도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15세기 조선초에도 이런 두뇌 유출이 있었다. 불교나 도교 그림을 그리던 최고 수준의 승려화가들이 조선의 억불정책 아래 활동이 어려워지자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갔다.

당시에는 입국심사나 이민법 겉은 것은 없었다. 일본절에서는 조선의 승려화가들을 우대하여 받아들였으므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되었다. 이들이 그린 그림들은 모두 일본미술사로 편입 되어 버렸다. 출가한 사람은 속가의 이름을 버리고 법명을 받는다. 이 때문에 그림에 서명된 이름만으로는 그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이 어렵다.”


이는 미술사학자인 코벨의 이야기다. 그는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에서 15세기 일본의 선묵화를 그린 사람 대부분이 조선인이었음을 그의 스승 후쿠이리키치 교수의 발표를 토대로 밝혔다. 그동안 일본 화단에서는 슈분(周文)이라는 일본 화가가 수묵화를 전부 그린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1925년 후쿠이 교수의 ‘조선인 작품’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동안 일본발음이 같은 슈분이라는 인물 가운데 조선인 슈분(秀文)이 따로 있었음을 알게 된다.



   
▲ 조선인 슈분(秀文)의 묵죽화첩(왼쪽), 일본인 슈분(周文)의 금강산도

슈분(秀文) 또는 리슈분(李秀文)이라는 이름에 대해 조일일본역사인물사전(朝日日本歷史人物事典)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무로마치시대에 일본에 건너온 화가로 추정되며 일찍이 슈분(周文)과 혼동되어 왔다. 조선인 슈분(秀文)이 그린 묵죽화첩에는 ‘영락갑진이십유이세차어일본국도래북양사진수분(永樂甲辰二十有二次於日本國渡來渡北陽寫秀文)’이라는 낙관이 찍힌 작품이 전한다. 때는 1424년 일이며 조선인 슈분(秀文)은 무로마치시대의 수묵화와 조선 회화의 밀접한 관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묵죽화첩 외에도 산수도병풍(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소장) 임화청도(교토국립박물관소장) 등 다수 전한다.”

일본 수묵화의 거장으로 꼽은 인물로는 조세츠(如拙) - 슈분(周文) - 셋슈(雪舟)로 흥미로운 것은 조선인 슈분(秀文)의 아버지가 조세츠라는 이야기다. 이는 코벨 박사가 공부한 교토 대덕사에 전해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코벨 박사는 “1423년 조세츠가 죽자 그의 제자 슈분(周文)이 조선에 건너와 아들 슈분(秀文)을 찾아 일본으로 불러들인 것 같다. 조선을 찾았던 슈분(周文)의 그림에는 금강산을 다녀온 영향으로 뾰족한 산봉우리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고 소개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조세츠의 제자인 슈분(周文)과 조세츠의 아들 슈분(秀文)은 일본발음이 같다.  당대에 이름난 수묵화가였던 이들은 발음이 같아 여태까지 같은 인물로 알았지만 이제 이 둘은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조세츠나 슈분(秀文)은 자기나라에서 푸대접을 받는 신세를 면하기 위해 떠났고 일본에서의 삶은 좋은 대우였으나 끝내 자신의 출신을 확실히 밝히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승려였기에 속가 이름을 버리고 법명만을 사용한 까닭이지만 수묵화 속에 어렴풋이 살아나는 조선의 냄새만은 지울 수 없는 것이리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