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서 귀화 장수 김충선 앞세워 日진격 일왕 사로잡아 이순신, 임금이 아닌 백성들 위해 혁명 후 왕에 올랐어야 [그림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역사는 때론 수정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바꿔라! 조선을 바꿔라! 때를 놓치면 나라를 망칠 수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강조한다. 지난 2011년 ≪이순신의 반역≫ 1권을 내고 지난해 ≪사야가 김충선≫을 써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유명작가 유광남과 만났다. - ≪이순신의 반역≫ 1권에서는 이순신이 사야가김충선을 앞세워 교토로 진격하여 천황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한 결말이다. 그런 극적 결말 뒤에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팩션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살짝 귀띔해줄 수 있을까? 1부를 읽은 독자들 가운데 꿈으로 끝나서 허망했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권에서는 꿈이 아닌, 이순신을 통해 역사를 바꾸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여기까지만 말 할 수 있음을 용서해 달라. ▲ 작가 유광남 - 실제 이순신이 반역과 혁명을 하지 못했다면 그건 이순신도 역시 성리학을 신봉하는 그래서 임금을 내칠 수 없는 그런 사람일 뿐이었기에 그런 것 아닐까? 이순신도 신분상으로는 그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요즘 들녘에 가면 보리밭에 파란 물결이 넘실거린다. 이름 하여 청보리밭이라 하던가? 그 보리밭 옆에 노오란 유채밭이 있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게다가 옛 생각을 하면서 보리피리를 불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50~60년 어려운 때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저 보리밭을 유쾌한 심정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그 징그러운 보릿고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 청보리밭(사진작가 최우성)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는 지금도 여전히 굶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50~60년대 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며칠씩 굶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그 당시엔 보릿고개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었다. 지금이야 보리밥을 건강식으로 먹지만 당시는 보리밥 먹어 방귀가 잦다며 쌀밥을 먹는 게 꿈이었던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보릿고개 때 아침밥을 먹지 못한 아이가 동네 부잣집의 술지게미를 얻어먹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학교에 나온 경우도 있었다. 소나무 껍질로 송구죽을 쑤어먹고 쑥을 캐어다가 쑥떡을 해먹거나, 설익은 보리를 베어서 보리개떡을 해먹는다. 그렇게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다행이었다. 못 먹어 부황(浮黃, 오래 굶어 살가죽이 들떠서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추운 겨울 계모가 친아들에게는 솜옷을 입히고 의붓아들 민손에게는 갈대옷을 입힌 것을 안 아버지가 계모를 쫓아내려 했다. 그러자 민손이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춥겠지만 어머니가 나가시면 세 아들이 다 추울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계모를 쫓아내지 말라고 말했다. 이 말에 감동한 계모가 마음을 바로 잡았고, 그의 아버지도 계모를 쫓아내지 않았으며 가정이 화평케 되었다.” 이 이야기는 효심이 지극하면 어떤 악한 사람도 교화시킬 수 있으며, 가정의 평화는 자녀의 효심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삼강행실도》의 한 꼭지입니다. ▲ 세종 때 충신·효자·열녀 330명 사례를 모아 펴낸 《삼강행실도》, 그림과 더불어 한글로 설명을 달아 이해하기 쉽게 했다. 《삼강행실도》는 제 아비를 죽인 진주(晉州) 사람 김화(金禾)를 능지처참(凌遲處斬)에 처한 이후 백성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세종이 ‘엄하게 벌을 주기에 앞서 세상에 효행(孝行)의 풍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책을 펴내 백성들에게 항상 읽게 하는 것이 좋겠다.’란 생각으로 펴내게 한 책입니다. 《삼강행실도》는 1434년(세종 16) 직제학(直提學) 설순 등이 임금 명에 따라 펴냈는데 이 책을 펴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1) 설의 말밑(어원)날 ▲ 여수 향일암에서의 설날 해돋이 모습 ① 섧다: 이수광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을 '달도일(怛忉日)'이라 했다.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말이다. ②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 : 신일(愼日) 곧 삼가고 조심하는 날' 곧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본다. ③ 설다, 낯설다'의설' :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ㆍ문화적 의미의 낯 설은 날' ④ 연세설(年歲說) : 나이를 말하는 말, 곧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 산스크리트어는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이라 하는데 이 '살'이 '설'로 바뀌었다 ⑤ 서다: 한 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 2) 설날 세시풍습과 세배하는 법 설날과 관련된 말 : 차례', 설빔' ,세배, 세찬(떡국)', 세주(초백주, 도소주)' 경북 영일, 안동 지방에서는 이 날 눈이나 비가 와서 질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속담에 '설은 질어야 하고, 보름은 말라야 한다.' 하였다. 집안마다 차례가 끝나면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고 새해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풍습도 남아 있다.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1-1. 비틀즈만 있나? 조선엔 밀리언셀러 임방울이 있었다 ▲ 일제강점기 '쑥대머리'로 120만 장의 음반을 판 임방울 명창 예전엔 음반 백만 장을 판 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십만 장 팔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백십이만 장을 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이야 집에 누구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 한 대쯤은 가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새까맣고 넓은 SP라는 음반을 유성기라는 기기에 얹고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야 음악이 나오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유성기는 부잣집만 가지고 있었으니까 몇 천 대나 있었을까? 그런 그때 조선(한국)과 일본 그리고 만주에서 판소리 음반 120만 장을 판 사람이 있었다. 바로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로 유명한 임방울 명창이 그다. 임방울 명창은 쑥대머리를 부르며 일제강점기의 비참한 민족현실과 가난에 대한 한스러움을 춘향의 신세에 견주어 울분의 소리를 토해냈다. 목이 잡혔다 트였다 하기를 수십 번 가슴이 붓고 목에서 피가 쏟아지는 고비를 거듭하여 비로소 제대로 소리하게 된 임방울은 외삼촌인 국창 김창환의 도움으로 25살에 서울로 올라와 첫무대에서 쑥대머리를 불러 선풍을 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