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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서도소리의 남성 소리꾼, 하인철을 주목하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4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서도의 토속소리, <투전풀이>란 상가(喪家)에서 망자(亡者)와 그 집안 식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또는 밤샘하는 사람들이 졸음을 이기기 위해, 벌이는 일종의 놀이 형식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원래 투전(鬪牋)이란 돈 놀음으로 그림이나 문자를 그린, 종이조각을 가지고 승부를 가리는 성인남자들의 방안놀이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는 돈 놀음보다는 소리가 중심이 되기에 남의 눈을 피해 가며 거액을 잃고, 따는 금지된 거래와는 그 성격과 규모가 다르다. 유지숙이 부른 <투전풀이>는 노랫말 9종, 박기종의 《서도소리 명곡대전》에는 <투전타령>이란 이름으로 40종의 노랫말을 소개하고 있으나, 즉흥적으로 둘러대는 사설치레가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부산에서 서도소리와 경기소리를 중심으로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지도하고 있는, 그러면서 공연활동도 나름대로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남성소리꾼, 하인철 명창을 소개한다. 경기지방의 소리도 그렇고, 더더욱 서도지방의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전반적인 소리꾼들이 점차 줄어들고 현실에서 하인철과 같은 남성 소리꾼이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격려해 줄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쓴이가 그를 서도소리 ‘명창’이라고 당당하게 부르는 것은, 그가 이미 제22회 <상주 전국 민요경창대회>에서 영예의 대상(대통령상)을 받은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서도 소리계에 입문하였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중앙무대로의 진출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전 글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서도소리’란 한반도의 서쪽지역인 관서(關西)지방, 곧 황해도나 평안남북도 지방의 다양한 소리들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 지방의 소리들은 대부분이 그 유명한 수심가(愁心歌)의 창법이나 표현법을 기본으로 하므로 <수심가조>라 표현한다. 특히 긴 소리(좌창)의 끝은 이 노래로 마무리한다. 독자들의 기억을 돕기 위해 수심가에 자주 얹어 부르는 노랫말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1. 약사몽혼(若使夢魂)으로 행유적(行有跡)이면 문전석로(門前石路)가

반성사(半成砂)로구나. (만약 꿈에라도 혼이 다녀간 흔적이 보이면,

문 앞 돌길의 반은 모래가 될 것이오.)

생각을 하니, 임의 화용(花容)이 그리워 나 어이 할 거나.

2. 강산불변재봉춘(江山不變再逢春)이요. 임은 일거에 무소식이로구나.

(강과 산은 변치 않고 다시 봄이 오건만, 한번 간 임은 소식이 없네)

생각을 하니, 임의 화용(花容)이 그리워 나 어이 할 거나.

 

이 수심가조에 포함되는 소리들은 앉아서 긴 호흡으로 부르는 좌창(坐唱)이 있고, 서서 합창으로 부르는 산타령과 같은 선소리 곧 입창(立唱)이 있으며, 서도식의 송서(誦書)인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이 있다. 또한 관산융마(關山戎馬)와 같은 시창(詩唱), 배뱅이굿과 같은 재담소리, 흥겹고 재미있는 각 지역의 민요 등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서도(西道)의 대표적인 소리가 전국 각 지역에 전승되고 있으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해당 지역의 소리제(制)를 자연스럽게 익힌 1세대 명창들이 생존해 있지 않아 간접 전승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은 서도지역의 수심가조라든가, 특징적인 발음, 또는 다양한 표현법이나 창법, 그리고 시김새 등을 서도(西道)식으로 자연스럽게 지도해 줄 명창을 만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부산에서 활동해 온 남성 소리꾼, 하인철도 본격적으로 서도소리를 익히기 위해 서울과 인천지역의 명인 명창을 찾아 소리 공부를 해 왔는데,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첫 스승은 이은관의 제자, 박준영(현, 국가무형 문화재 서도소리 전승교육사) 명창이라고 한다. 당시의 공부과정을 그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20여 년 전입니다, 박준영 스승님을 만나게 되어 서도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 소리를 배우기 위해 자그마치 11년이라는 기간을 부산에서 서울로 오가는 새벽 무궁화 열차를 올라타고 왕래하였습니다.

 

지금은 추억의 음악 재생기가 되어버린 카세트테이프에 스승님과의 수업내용을 녹음하고, 그 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올라 다녔습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젊었고, 또한 서도소리의 매력에 빠져있었기에 피곤한 것도 모르며 소리 익히기에 몰두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 고생이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기에 <부평 복사골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신인부 대상을 시작으로 하여 각종 대회에 출전, 50여 개의 크고 작은 상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도 스승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인철 명창은 현재, 부산에 살며 그곳에서 서도 소리와 경기소리 등을 지도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두메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산촌마을인, 전북 무주라고 한다. 그가 소리를 좋아하게 된 배경 역시, 경기명창 최창남과 가까이 지내면서 취미로 소리를 좋아하던 그의 아버지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하인철은 아버지가 부르는 민요조의 노래보다는 남인수나 현인, 이미자 등등이 열창하는 트로트를 더더욱 좋아했고, 그래서 항상 즐겨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 몰래 트로트 테이프를 사서 혼자 수없이 반복 연습을 하여 완벽하게 암기했고, 그 실력을 친구들 앞에서 발휘하곤 했다고 한다.

 

가령,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들과 산에 나무를 하러 가게 될 때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무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한편에서 항상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체격이 작았고 약했기 때문에 나무를 하는 것 대신, 친구들에게 흥을 돋워 줄 수 있는 노래를 불러주는 역할이 훨씬 더 능률적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친구가 하인철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작업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논농사나 밭농사를 지을 때, 북이나 장고를 동반한 노동요(勞動謠)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한 경우와 같다. 원래 노동요라는 것이 한 사람이 노래를 메기고, 여러 사람이 받아 가며 노동을 쉽고 재미있게 해결할 수 있는 원리인데, 하인철은 이미 어려서부터 경험을 통해 그 필요성을 너무도 깊게 깨닫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가정을 이루고, 어렵게 지내면서도 트로트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아서 항상 녹음테이프를 듣고 따라 부르며 일과 노래 연습을 병행해 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