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늦봄부터 여름 내내 '메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엷은 분홍색에 수줍은 듯 들판 여기저기 피어있던 메꽃이 자취를 감췄다. 가는 세월이 아쉬운 듯, 달랑 한 송이 매달려있는 '메꽃'이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바야흐로 나팔꽃 세상이다. 새벽에 해님과 함께 피어나 오후에 지는 나팔꽃.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뚜뚜 따따 기상나팔을 부는 듯 피어난다. 메꽃보다 늦게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꽃이 핀다. 전봇대, 울타리, 풀섶 가리지 않고 덩굴을 뻗어 꽃을 피운다. 잡풀과 뒤섞여 잡풀이 꽃을 피운 듯 잘 어울린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해뜨기 직전 어렴풋한 여명이 창을 밝히면 어김없이 마당에 묶어놓은 개가 산책가자고 짖어댄다. 운동시킬 겸 데리고 논밭을 지나 뒷산 한 바퀴를 돌아오는 일상이 즐겁다. 동녘 산에서 얼굴을 내미는 해돋이 광경도 날마다 색다르다. 꼬끼오 닭울음 소리도 정겹고 짹짹이는 참새 소리도 이쁘다. 밭을 일구고 다지고 씨뿌리며 돌보는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 손길에 따라 자라고 열매 맺는 온갖 채소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된다. 시골에 내려와 살다 보니 재미있고 배우는 것도 많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였다. 궁금증이 발동해서 뭐 하시는지 여쭈어보았다.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농촌에 안 사시우?"하고 되물으신다. 배추 모종 손질하시고 쪽파 종자 다듬으시는 중이라신다. 아하! 벌써 김장배추, 무, 파 심기를 하는구나. 여린 배추싹이 무럭무럭 튼실히 자라 속이 꽉 찬 김장배추가 되겠구나. 겨울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도회지 나가 사는 아들딸 식구들 모여와서, 배추 절이고 파 다듬어 김장하느라 왁자지껄 웃음 가득 한 시골마당 풍경이 그려진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맛도 좋고 향도 좋고 보기도 좋은 부추 요즘 시골 밭 귀퉁이엔 하얀 부추꽃이 한창이다. 나 어릴 땐 '정구지'라고 했고 시어머니는 '졸'이라고도 했다. 봄 여름내 잘라서 온갖 요리에 곁들여 먹었다. 된장찌개, 추어탕, 오이소박이, 깍두기에 잘 어울린다. 돌보지 않아도 잘도 자라는 부추 어느 날 꽃대가 올라오더니 꽃이 피기 시작했다. 너무 작아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쪼그리고 앉아서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사진기로 근접촬영을 해보았다. 너무나 어여쁜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쩌자고 이리도 앙증맞게 예쁜가? 꽃말이 '무한한 슬픔'이라 했던가? 그저 밭 어귀에 덤으로 나서 아무 때나 가위 들고 싹둑 잘라 먹고, 사나흘 지나면 또 자라나와 잘라먹으며 귀한 줄 몰랐다. 누가 보라고 이렇게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운단 말인가? 왠지 그 꽃말처럼 서글픔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한국전쟁 때 가장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던 철의 삼각지대(평강ㆍ김화ㆍ철원)의 일각인 철원을 가본다는 막연한 설레임를 갖고 찾은 철원이었다. 백마고지를 보기위해 한탄대교를 지나다 오른쪽으로 오래된 다리가 보였다. 승일교였다. 승일공원에 차를 세우고 다리 밑으로 내려가 올려다보았다. 6.25 전쟁 전 공산 치하에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해, 전쟁 중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뒤 남한에서 완공하였다는 승일교!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승일교를 도보로 넘어 송대소를 지나 직탕폭포까지 걷는 '한여울길'이란 한탄강 둘레길의 출발점이다. 국도로 20분 정도 북으로 달리면 오른쪽 낮은 언덕에 포탄 자국을 뒤집어쓰고 골조만 앙상히 남은 건물이 보인다. 1946년에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인근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인 노동당사다 안내 선간판엔 사상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회유 고문하고 살해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적혀있다. 그 시절 미군정하의 남한도 힘든 상황이었을 터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남북한이 모두 혼돈의 시절을 겪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르고 오늘날까지 분단되어있다니 순간 눈가가 촉촉해지며 서글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강원도 철원 김화읍에 사는 동창의 초대로 난생처음 철원지방을 여행했다. 6명의 대학입학 동기들이 함께했으며 1박 2일 일정이었다. 철원군은 3.8선 북쪽에 있으며 한때는 북한 땅이었고, 한국전쟁 때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고지쟁탈을 위해 전투를 하다 수많은 군인이 희생된 백마고지가 있으며, 민통선이 가로지르고 있고, 비무장지대(DMZ)가 있는 곳이다. 또한, 7월 초에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유산에 오른 한탄강이 흐르는 곳이다. 첫날은 형편에 따라 각자 출발하여 한탄강 유역을 탐방하고 저녁에 한탄강 중류 지질명소인 '직탕폭포'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시간 넘게 운전하여 한탄강 지질명소 가운데 한 곳인 '고석정'에 도착했다. '일억 년 역사의 숨결. 신비로운 고석바위와의 만남'이라고 새겨진 돌비석과 '유네스코 세계지질유산등재'를 축하하는 펼침막이 나를 반겼다. 한탄강 유역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절벽바위와 주상절리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설명 선간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일억 년 전 화산활동으로 마그마가 올라와 땅속에서 서서히 식어서 만들어진 화강암이 오랜 세월이 흐르며 융기하여 고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101년 전 오늘(1919년 4월 15일)은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와 고주리에서 29인의 독립운동가가 순국한 날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추모행사는 취소되었다. 대신 고주리 순국선열6위(김성열, 김세열, 김주남, 김주업, 김흥렬, 김흥복)의 무덤에 조촐하게 헌화분향하였다. 이 무덤에는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3월 31일 발안장터 만세 항쟁을 주도한 사람들이 잠들어 계신다. 일제는 발안장터 만세 항쟁에 대한 보복으로 4월 15일 근처 제암리에 있는 제암교회에 모이게 하여 출입구를 봉쇄하고 불을 질러 22인을 불태워죽였다. 그리고 그에 항의하는 젊은 부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이웃마을 고주리로 달려가 천도교인이자 독립운동가 6명을 칼로 베어 죽인 다음 그 주검을 불살랐다. 마을 사람들이 타다 남은 주검을 몰래 수습하여 천덕산을 넘어 십리 밖 덕우리에 뭍었다. 그때 어린 나이로 살아남은 김세열의 아들 김원기의 후손 김연목 선생이 무덤을 지키고 계신다. 음력 3월 15일 한날한시에 돌아가신 여섯 분의 제사를 매년 모시며 살아온 후손의 삶이 어떠했을까 상상하기 힘들다. 지난해에는 화성시 광복회(회상 안소헌)에서 무덤에 헌화하러 찾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장마 끝자락 여름산의 색깔은 단촐하다. 옅은 초록빛과 짙은 녹색이 대부분이고 간간히 하얀색이 섞여있으며 황갈색 나무와 땅색이 조화를 이룬다. 어린 밤송이와 산도토리와 망게 열매의 초록빛이 여리다. 물기 머금은 땅을 비집고 나온 하얀 버섯들도 신났다. 촉촉한 대지를 즐기는듯 쉬고 있는 산개구리는 넋이 나간듯 하고 갈색 낙엽과 분간이 되지 않는다. 곧 장마가 끝나면 찬란한 태양의 기운을 받아 모든 어린 것들도 무럭무럭 자라 제각각 굵고 짙은 빛깔의 튼실한 열매가 되겠지. 성급한 인간은 벌써 울긋불긋 다채로운 가을산을 그려본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끊어진 압록강 다리, 6.25때 폭파된 한강인도교와 철교에 관해선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또 다른 끊어진 다리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중국과 북한을 잊는 압록강에 놓인 다리들이다. 몇몇 다리는 지금도 끊긴 체 남아 있고 어떤 다리는 왕래는 하되 북한 경제제제 조치로 시간제한이나 검열을 받으며 가끔 차가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어떤 다리는 완공은 했으나 개통하지 않은 체로 남아있었다. 한ㆍ중합작으로 건설된 압록강 신대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 까닭은 명확치 않으나 개통 되지 않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어 한강대교를 지나 북한땅을 거쳐 압록강 신대교를 넘어 대륙을 달릴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원하며 이번 여행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유적지를 보고 난 뒤 경관 좋은 압록강변을 따라 이동했다. 압록강 상류의 어느 지점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북한 쪽에 근접해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끊어진 다리 하나를 보았다. 다리의 끊어진 부분 사이로 유람선이 통과하면서 운행했다. 북한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가고 강변에서 물놀이를 하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단둥시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향하는 중간에 랴오닝성 통화현 환인시를 통과했다. 입담이 보통이 아닌 가이드의 얘기를 귀로 들으며 눈은 줄곧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짙은 녹색의 우리나라 6~7월 산악풍경과 비슷했다. 다만 하얀 피부의 자작나무를 자주 볼 수 있고 들판엔 논은 보기 힘들고 옥수수밭이 많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고구려의 땅이었고 발해의 땅이었으며 독립운동가의 애환이 서린 땅이다. 갑자기 "창밖을 보세요."라는 가이드의 목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저 멀리 나타난 신비롭게 생긴 직사각형 탁자 모양의 '오녀산성'! 해모수의 아들 주몽이 부여를 떠나와 고구려를 건국하며 첫 도읍지로 세운 졸본성! 아름다웠다. 천혜의 자연요새였다. 사진 한 장 남기고 일정상 먼발치에서 조망하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였던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국내성'에선 시간 여유를 갖고 걸었다. 국내성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한쪽으론 압록강이 흐르는 도읍지로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주몽의 첫부인 예씨부인이 낳은 유리왕자가 단검 반쪽을 갖고 아버지를 찾아와 2대 임금이 되고 도읍지를 국내성으로 옮긴 때가 기원후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북백두산 천문봉에 올라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보았다. 화산 대폭발로 산꼭대기가 날아가고 움푹 패여 생겨난 거대한 칼데라호! 백두산 천지! 사방 기암괴석 절벽으로 둘러쳐진 듯하다. 저 건너편이 북한 쪽이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면 호수로 내려오는 긴 계단이 보이고 삭도(로프웨이)도 볼 수 있다. 북한쪽 능선에도 관광객들이 온 듯 북적이는 듯하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삭도를 타고 내려와서 한라산물과 백두산천지물 합수식을 했던 곳이 바로 저기다. 통일을 염원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고 짙푸른 천지의 물에 흰구름이 그대로 비춰보였다. 정상에 서서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북백두산 기슭 관광안내소에서 관광버스를 내려 바라본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답게 아름답고 또한 신비로웠다. 관광객들도 넘쳐났다. 입장과 안전을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전용버스를 타고 오르는데 두 시간은 족히 걸렸다.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내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백두산 천지를 보고 하산 길에 '장백폭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점심시간을 넘기고 땀에 젖어가며 한 시간 정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