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왕비로 산다는 것. 뭔가 제목에서부터 잔잔한 엄중함이 느껴지는 ‘왕비’라는 자리는, 참 높고도 어려웠다. 한 나라의 왕비 역할을 잘 해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음은 고금의 예에서 잘 알 수 있지만, 복잡한 정치 셈법이 얽혀 있었던 조선의 왕비는 특히 더 어려웠다. 이 책 《왕비로 산다는 것》의 지은이 신병주는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주부들이여 왕비가 되자’라는 주제의 특강 요청을 받고, 왕비를 주제로 한 강의를 할 수는 있지만 제목을 ‘왕비로 산다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실제로 그렇게 강의했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도 조선의 왕비는 동화나 사극 속 왕비처럼 아름답고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누릴 수 있는 것보다 제약이 더 많았고, 엄격한 궁중에서 비슷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힘든 직업이었다. (p.8-9) 왕비는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지위라기보다 정치적 상황에 휩쓸려야 했고 답답한 구중궁궐에서 왕의 내조에 전념하는 역할을 요구받는 위치에 있었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에 있는 인공 정원 아미산이나 궁궐 후원을 산책하는 일 또는 궁궐에서 독서를 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왕비의 숨통을 터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세계적인 부자는 참 많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에 대한 관심은 넘쳐나도,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관심은 그만 못하다. ‘그들은 부자가 된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서사는 많아도, 부자가 되어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서사는 훨씬 적다. 이향안이 쓴 책, 《나눔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든 진짜 부자들》은 나눔을 실천한 전 세계의 부자들과 지식인,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다룬 책이다. 기부 문화를 만들어 낸 사업가 워렌 버핏부터 나눔의 정신을 세계에 퍼트린 배우 오드리 헵번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인물은 김만덕, 후세 다츠지, 전형필 세 명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만덕은 굶주려 죽을 위기에 처한 제주 백성들을 구한 제주의 거상이며, 전형필은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쓴 수장가다. 그런데 후세 다츠지는 무척 새롭다. 그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법정에 선 일본 변호사다. 1880년 미야기현에서 태어나 메이지 법률학교에서 법 공부를 한 뒤, 23살의 젊은 나이로 판검사 시험에 합격한 촉망받는 법조인이었다. 인정받은 실력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34)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정사(政事)와 같은 큰일은 어떠하겠습니까?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한다…자못 모골이 송연해진다. 군주에게 부지런하게 일해야 한다고, 게으르면 망한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정도전의 기개가 매섭다. 심지어 건물 이름도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의 ‘근정전(勤政殿)’이니, 거기서 정사를 보는 임금은 자신도 모르게 태도가 엄정해지지 않았을까? 조선왕조는 문치 국가였다. 과거에 합격한 인재들은 모두 시작(詩作) 능력이 출중했다. 시 짓는 솜씨가 문재를 판별하는 주요 기준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시를 쓰며 자라난 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필수 교양으로 시를 쓰고 읊었다. 조정에 출사한 최고의 문사(文士)들이 임금 곁에 머물며 늘 바라보는 장소가 경복궁이었던 만큼, 이들이 경복궁에 대해 지은 시문도 많이 남아 있다. 한문학자인 지은이 박순이 쓴 이 책, 《시가 흐르는 경복궁》은 경복궁을 주제로 옛 문인들이 쓴 글과 시에 지은이의 독창적인 관점을 덧붙인 책이다. 책에 실린 글이 모두 깊이 음미할 만하지만, 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나누는 삶을 살았던 위인들.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지고 있으면 더 가지고 싶고, 좋은 것은 나만 가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모르는 사람들과 좋을 것을 나눈다는 것은 그런 본능에 역행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그런 소유의 본능을 이기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있다. 그것이 출세에 크게 도움 되는 일은 아니었다. 복지 개념이 없다시피 했던 먼 옛날에는 빈부격차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심지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고진숙이 쓴 이 책, 《아름다운 위인전》에 실린 위인들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김만덕, 이지함, 이헌길, 이승휴, 을파소 이 다섯 사람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 자신이 속한 양반 사회나 가진 자들의 세계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세계를 위해 헌신했다. 책에 실린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감동을 주지만, 특히 더욱 눈길을 끄는 사람은 이헌길이다. 이헌길은 천연두(두창)에 걸린 어린 정약용을 구해낸 선비다. 이헌길이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 감탄하는 정약용의 수많은 저작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웃는 낯에는 함부로 대하기 힘든 힘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웃는 얼굴이라는 말처럼, 웃음에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신비한 치유의 힘이 있다. 우리 문화유산에는 유난히 웃는 표정이 많다. 얼핏 보면 근엄하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은은한 웃음기가 배어있다. 이런 잔잔한 웃음기가 우리 문화유산을 보면 볼수록 매력 있게 만든다. 김은의가 쓴 이 책, 《웃음꽃이 핀 우리 문화유산》은 우리 문화유산에 나타난 웃는 표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책이다. 첫째 마당, ‘유형 문화유산 속 웃음꽃’에서는 그윽한 불상의 미소, 지붕 위 웃는 기와, 하회탈 등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웃는 표정을 다뤘다. 둘째 마당, ‘우리 그림 속 웃음 보따리’에서는 무덤 벽화, 민화, 풍속화에 나타난 웃는 표정을 살펴본다. 셋째 마당 ‘무형 문화유산 속 웃음 바다’에서는 판소리와 탈춤에 나타난 해학적인 장면을 집어낸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는 ‘세계 속 웃음꽃’으로 세계 곳곳의 문화유산에서 나타난 웃는 표정을 조명한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달신의 미소다. 옛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길림성 집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219쪽) 등잔과 관련하여 또 다른 속담은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게 있는데 등잔은 방을 환히 밝혀 주위를 잘 볼 수 있게 하지만, 정작 등잔 밑은 그림자가 져 보기 힘들지요. 곧 가까이 두고 먼 곳만을 헤맬 때 쓰는 말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처럼, 이리 좋은 문화를 가까이 두고 먼 곳을 찾아 헤맸다. 외국문화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서도, 정작 한국문화에는 무심했다.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우리문화에 이토록 아름다운 뜻이 숨어있었다는 걸, 그리고 귀한 우리문화를 그동안 잘 몰라서 무심하게 대했다는 것을. 이 책,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는 지은이 김영조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내는 〈날마다 쓰는 우리문화 편지〉 가운데 한국인이 ‘제대로’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가려 뽑은 책이다. 필자 역시 저자의 숱한 편지를 탐독한 끝에 한국문화와 더 가까워졌고, 요즘도 우리문화 편지를 날마다 읽으며 한국문화를 배워가고 있다. 한국인이지만 이처럼 따로 배우지 않으면, 어쩌면 외국인보다도 더 과문할 수 있는 것이 우리문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 반갑다. 제1장 명절과 세시풍속, 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생과 사를 가르는 긴 가로선. 언젠가 사진에서 본 눈 내린 종묘의 풍경, 어둠이 짙게 깔린 종묘와 하얀 눈 색의 대비는 생과 사의 경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지은이의 표현에 따르면 종묘는 ‘유교식 신전’이다. 죽은 임금의 육신은 백이 되어 왕릉에 묻히고, 정신은 혼이 되어 종묘에 깃든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신전, 그것이 바로 종묘다. 흔히 종묘를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정도로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이라면, 김향금이 쓴 이 책 《종묘에서 만난 조선 왕 이야기》가 종묘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종묘’라는 엄숙한 공간을 쉽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무척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종묘는 태조 4년(1395), 태조의 지대한 관심 속에 완공되었다. 태조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종묘 건물에 쓰일 재목을 한강에 나가 살필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경복궁에서 북악산을 등지고 있는 임금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종묘가, 오른쪽에는 사직이 세워졌다. 종묘와 사직을 짓고 나서 궁궐과 성곽을 차례대로 지었다. 이렇듯 종묘는 임금이 사는 궁궐보다 더 먼저 지어진 곳이자, 임진왜란으로 모든 것이 불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운명이 때로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좋은 벗이 해주는 위로는 천군만마보다 더 힘이 날 때가 있다. 이덕무와 박제가도 그랬다. 서얼로 태어나 가진 재주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울분을 삼켜야 했던 그들은, 서로가 가진 슬픔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귀한 재능을 알아봐 주고 독려해 주며, 어려운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갔다. 강민경이 쓴 이 책, 《운명아, 덤벼라!》는 신분이 주는 한계에 힘없이 굴복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 이덕무와 박제가의 우정을 담았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덤벼라!’는 자세로 맞서 분투할 때, 견고할 것 같던 운명도 슬쩍 길을 비켜주었다. 두 사람은 외적으로는 매우 달랐다. 우선 이덕무는 박제가보다 아홉 살이 많았다. 이덕무는 큰 키에 마른 편이고, 박제가는 키가 작고 다부졌다. 이덕무는 유순한 성격이었고, 박제가는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p.28) 내 삶에 대해 감히 누가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단 말입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삶이 정해져 있다고요? 내 힘으로 삶을 어찌할 수 없다고요? 운명이 나를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나라고 그깟 운명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선당! ‘착한 성품을 기른다’라는 뜻의 자선당은 세종이 큰아들인 세자 ‘향’에게 선물한 세자궁이었다.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궁’으로 불렸던 이곳에서 문종은 자랐다. 그러나 자선당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궁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며 궁궐이 불탔고, 이때 자선당 또한 주춧돌과 기단석만 남은 채 모조리 불타버린 까닭이다. 우리아가 쓴 이 책, 《돌아온 자선당 주춧돌》은 세종이 세자를 위해 지은 ‘자선당’에 쓰였던 주춧돌이, 임진왜란 때 화재에 불타고 고종 때 다시 지어졌다가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일본에 실려 가는 수모를 당하는 신산한 세월을 겪은 끝에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자선당이 다시 지어진 것은 수백 년이 지나 흥선대원군 때가 되어서였다. 자선당이 완공되며 고종의 아들인 순종이 자선당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 시기도 잠시, 결국 순종은 일본의 위협에 자선당을 지키지 못하고 창덕궁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p.35)자선당 터로 흥선대원군이 신하들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자선당과 비현각을 지어라. 세자궁은 조선의 미래이다. 주변의 강한 나라들이 조선을 넘보려고 하지만 내가 있는 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옛 그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은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고, 혼자서는 그다지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옛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보통은 친절한 안내가 없으면 옛 그림은 다소 어려운 분야다. 이 책, 《옛 그림 읽어주는 아빠》의 지은이 장세현은 옛 그림을 ‘읽는다’. 보통 그림은 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보는 그림이자 읽는 그림인 까닭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상형문자를 읽듯, 그림을 글자처럼 읽는 것이다. 또 하나, 옛사람들에게 그림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마음을 갈고 닦는 하나의 수양 방법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먹을 갈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붓질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헛된 생각과 욕심을 다스렸다. 이런 마음 수양 그림의 대표적인 분야가 ‘사군자’다.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선비들에게 두루 사랑받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대나무였다. 그림을 그리던 관청인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도 대나무 그림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대나무를 운치 있고 격조 있게 그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대나무 그림에 바위가 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