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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세계적 명문가는 어떻게 아이를 공부시켰을까

《세계 명문가의 공부 습관》, 글 최효찬, 그림 최현정 / 스콜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84)

금년에 낙백(시험에 떨어지니) 하니 나그네 마음 놀라워

외로운 객관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네

계룡산 짙은 구름은 푸른색 묻어 버리고

금강의 높은 물결은 차가운 소리 으르렁

저무는 하늘 비바람에 돌아갈 길 캄캄하구나

 

과거에 떨어지고 돌아갈 면목이 없는 선비의 비참한 심경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 책에 나오는 김득신이 쉰넷의 나이에 또다시 과거에 낙방하고 상심한 마음으로 쓴 시다. 그는 쓰린 마음을 안고 돌아가, 다시 과거 시험에 도전해 결국 쉰아홉 살에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집안마다 가풍이 있듯이, 공부하는 분위기도 집집마다 다르다.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가문은 모두 공부를 중요시하는 가풍이 있었지만, 어떤 점을 중히 여기는지는 조금씩 달랐다.

 

최효찬이 쓴 이 책, 《세계 명문가의 공부 습관》은 뛰어난 학자와 관료를 배출한 동서양의 가문들이 어떻게 자녀 교육을 했는지 보여준다. 우리 명문가를 다룬 1부에서는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서애 류성룡, 청장관 이덕무, 백곡 김득신을 다루고, 세계 명문가를 다룬 2부에서는 찰스 다윈, 마리 퀴리, 타고르, 발렌베리, 로스차일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퇴계 이황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좋은 공부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뛰어난 제자들을 아들과 손자에게 소개해 주어 친구로 삼게 했다. 한 예로 신언이라는 제자가 용수사라는 절에 들어가 공부하자 어탄사에서 공부하고 있던 아들을 용수사로 보냈고, 손자인 안도가 절에 들어가 홀로 공부하자 도산서원으로 들어와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p.15)

“김성일과 우성전이 지금 《계몽》을 읽으려 한다더구나. 너는 벌써 《주역》을 읽고 있지만 《계몽》도 읽지 않을 수 없으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주역》 읽기를 마치지 못하더라도, 우선은 중지하고 곧장 절에서 내려와서 이들과 함께 《계몽》을 읽는 것이 좋겠다.”

 

이는 이황 본인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공부를 이끌어주는 스승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채 방황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부하다 뜻을 모르는 문장이 나와도 물어볼 곳도 없고, 혼자 공부하면서 답답한 순간이 있어도 마땅히 의지할 곳이 없었다.

 

(p.17)

“나는 젊어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지만, 스승이나 공부 친구가 없어 학문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헛되이 애만 태웠다. 그러나 탐구하고 사색하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때로는 바른 자세로 앉아 밤을 꼬박 지새울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마침내 마음의 병이 들어 공부를 그만두고 잠시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때 스승이나 공부 친구가 있었더라면 갈팡질팡하던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꾸준히 독서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 서른넷에 과거에 합격한 이황을 보면, ‘할 사람은 한다’라는 말이 과히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실력이 출중했던 이황도 과거 시험에는 세 번이나 떨어졌지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한편 임진왜란 이후로 영의정을 두 번 지낸 서애 류성룡 가문에서는 400년 전부터 밥상머리 교육이 이어져 왔다. 삼 대가 같이 겸상하며 자연스럽게 절제력과 배려심을 익히고, 음식과 타인에 대한 예의를 배울 수 있었다.

 

《규합총서》라는 책에 나오는 ‘식시오관(食時五觀)’은 식사할 때마다 생각나는 다섯 가지 마음으로, 밥 한 톨이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들어갔을 수많은 사람의 노력을 기억하고, 음식의 맛만 너무 따지지 말며, 음식 모양을 너무 따지지 말고, 군자로 도리를 다했는지 생각한 뒤 식사하라는 뜻이다.

 

류성룡은 또한 질문을 강조했다. 그는 자녀들이 책을 읽고 나서 질문을 하지 않는다며 질책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사색이 정밀해야 의문이 일어나고, 의문이 일어나야 질문을 하는 것이며, 자세히 질문하는 것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p.50)

“너희 세 사람은 《맹자》를 읽었느냐? 학문은 정밀히 사색하고, 자세히 질문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는데, 너희들은 언제나 사색을 깊이 하지 않기 때문에 의문이 일어나지 않으며, 의문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책을 많이 읽은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노력하기를 바란다.”

 

이렇듯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명문가에서 자녀들에게 수시로 교육했던 내용을 살펴보면, 그 가문이 ‘명문’으로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언뜻 엿볼 수 있다. 시험을 잘 보게 하는 공부를 넘어 정말 인성을 닦는 수단으로서의 공부를 강조하고, 좋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생활 습관도 힘써 길러주었다는 것이다.

 

공부의 길은 길고, 끝이 없다. 사실 평생 해야 하는 것이 공부다. 좋은 공부 습관을 어릴 때부터 익히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투자일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 이 책을 통해 세계적인 명문가가 강조했던 공부 습관과 인성 교육 방법을 두루 살펴보며 앞으로 적용할 만한 부분이 있을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