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윤옥 선생님, 교토에서 거행될 시인 윤동주의 추도식 정보 감사합니다. 일본에 살고 있어도,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일본은 최근 들어 큰 재해가 잇따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저질화가 진행되고 있어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특히 군마현(群馬県, 도쿄에서 50분)의 다카사키시(高崎市)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전쟁 중 연행되어 강제노역으로 사망한 조선인들을 위령하는 평화의 추도비가 20여 년 전에 세워졌고, 현지인들에 의해 해마다 위령제가 거행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우익들이 시비를 걸어 군마현에 철거를 요구한 결과 군마현지사(群馬県知事)는 이에 찬성하여 추도비를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재판에 호소했지만, 법원에서도 막아내지 못하고 철거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어 1월 29일, 불도저로 조선인 추도비는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폭거입니다. 추도비는 한·일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아시아 미래의 평화와 우호를 위해 소중한 징표였는데 이를 없애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들의 철거 반대 목소리가 부족했습니다. 반성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재건할 것을 모두가 맹세했습니다.” 이는 일본 고려박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 교토 도시샤대학 캠퍼스에는 붉은 홍매화가 피어날 시기다. 홍매화 가 활짝 필무렵인 2월 중순, 이 대학에서는 아주 특별한 추도식이 열린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 앞에서 2월 10일(토) 오후 1시 30분부터 시비헌화식(詩碑献花式)에 이어 강연회 등 오후 5시까지 이어진다. 오는 2월 10일 추도식은 <윤동주를 그리는 모임(尹東柱を偲ぶ会), 회장 박희균> 및 <도시샤코리아동창회 (同志社コリア同窓会), 회장 김용주>의 주관으로 열리며, 도시샤코리아센타가 후원한다. 도시샤대학의 윤동주 시인 추도회 일정을 알려온 이는 교토에 사는 우에노 미야코 (上野 都)시인으로 그는 일본의 중견시인으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하여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지금 세계는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등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긴장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기후 이상 문제 등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양심을 바탕으로 한 윤동주의 시는 세계 수십 개 언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니를 5월 21일(2023)에 하늘로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재작년 11월(2022)부터 입원하셨고 퇴원 후에는 다시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갖고 계셨지만, 어머니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환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일반병원에서 퇴원하시자 마자 집으로 모시지 못하고 곧바로 시모다에 있는 온천병원요양병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코로나가 이어지고 있어 직접 면회를 하지 못한 채 주 1회 온라인 면회만 허용되었고 직접 어머니를 뵐 수 있었던 것은 고작 1~2개월에 한 번이었습니다. 그나마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부쩍 여위어 가시는 모습을 보며 발길을 돌려야 할 때마다 조여오던 가슴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순의 친정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다가 지난해 5월달에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낸 이토 노리코 씨의 편지글이다. 이토 노리코 씨와의 인연은 내가 와세다대학 방문학자로 가 있을 때의 인연이니 어느새 25년이 다 되어 간다. 노리코 씨 집을 드나들면서 그의 친정어머니와도 꽤나 오랜 시간 친분 관계를 이어오던 터 였다. 말수가 적은 노리코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내가 놀러 갈라치면 언제나 자상한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었고 맛있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새해가 밝아 오면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사참배를 위해 전국의 유명한 신사(神社, 진쟈)나 절(寺, 오데라)을 찾아 떠난다.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은 비교적 규모가 큰 지역의 신사라도 찾아나선다. 신사참배의 나라 일본인의 모습은 정초가 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사참배야 연중 이어지는 것이지만 특별히 정초에 하는 신사참배를 가리켜 하츠모우데(初詣)라고 하는데 하츠모우데는 단순한 참배가 아니라 ‘정초 기도’의 의미가 크다. 일본의 정초 하츠모우데 풍습은 “도시코모리(年籠り)”라고 해서 집안의 가장이 기도를 위해 그믐날 밤부터 정월 초하루에 걸쳐 씨신(氏神)을 모신 신사(神社)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던 것이 그믐밤 참배와 정초 참배로 나뉘었고 오늘날에는 정초 신사참배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반인들의 정초 기도 풍습은 명치시대(1868년) 중기부터 유래한 것으로 경성전철(京成電鐵) 같은 철도회사가 참배객 수송을 대대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철도를 이용해 유명한 신사나 절을 찾아다니게 되면서 보편화 되었다. 하츠모우데(初詣) 기간은 보통 1월 7일까지로 알려졌지만 마츠노우치(松の内)라고 해서 1월 15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토끼해(계묘년)도 이틀 뒤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곧 용띠해(갑진년)의 밝은 태양이 떠오른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 맞이를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한국은 양력 1월 1일을 설로 쇠지 않기에 그저 하루 쉴수 있는 공휴일 정도로 여기지만 이웃나라 일본은 양력 설(오쇼가츠라고 함)을 쇠기에 지금 한창 설맞이 준비로 바쁘다. 일본에서도 우리처럼 설음식이 따로 있는데 이를 오세치요리(御節料理)라고 한다. ‘일본 요리는 눈으로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보기에 화려한 것이 일본 음식인데 정초 설날 음식인 오세치요리는 그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세치요리의 역사는 나라시대(奈良時代,710~794)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시작은 궁중에서 세치에(節会) 라고 해서 설, 단오, 칠석 등의 행사때 쓰던 공양음식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일반 가정에서 해먹던 설음식이라기 보다는 궁정에서 제례용으로 쓰던 음식이 오늘날 일반 가정에서 먹게 된 음식으로 보면 될 듯하다. 오세치요리는 그 가짓수도 많지만 대표적인 음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말린 청어알: 청어알은 자손 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제 며칠 후면 계묘년 토끼해가 지나고 곧 갑진년 용띠해가 밝는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일본에서는 오오소우지(大掃除, 대청소)를 하고 연말이면 도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 해넘이 국수)를 먹는다. 그런가 하면 집 대문에 시메카자리( 注連飾り, 금줄)를 매달고 집이나 상가 앞에 카도마츠(門松, 소나무장식)를 세워 나쁜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한다. 시메카자리는 연말에 집 대문에 매다는 장식으로 짚을 꼬아 만든 줄에 흰 종이를 끼워 만드는데 요즈음은 편의점 따위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농사의 신(稻作信仰)을 받드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인데 풍년을 기원하고 나쁜 액운을 멀리하려는 뜻으로 신도(神道)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나라신(國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메카자리는 12월 말에 대문에 장식하고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개 1월 7일 이후에 치우는 게 보통이다. 관서지방에서는 1월 15일에 치우고, 미에현(三重縣 伊勢志摩) 같은 지방에서는 1년 내내 장식하는 곳도 있는 등 곳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카도마츠”는 12월 13일에서 28일 사이에 집 앞이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새해 1월 6일부터 1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연극 <프로젝트 내친김에, 언덕의 바리>이 무대에 오른다. "... 난 말이야. 넌 약하다고, 아무 능력도 힘도 없고,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 날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2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거야...“ <언덕의 바리>는 사진 한 장 없는 독립운동가 '여자폭탄범 안경신'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한 여성독립운동가의 비극적 결말에 관한 이야기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형적 서사도 아니다. 이승과 저승이 단절된 세계, 곧 현실과 다름없는 세계 속의 무력한 주인공 이야기는 신화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무력함 안에 경외심이 들 정도로 커다란 힘이 만져지는 모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애초부터, 신화에서 찾아야 할 것은 영웅이 아닌지도 모른다. <언덕의 바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찮음과 위대함이란 서로 등을 맞대고 붙어있는 사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순리가 논리적이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마나즈루에 도대체 뭐가 있니?' 엄마는 애절한 얼굴로 물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역시 내 목소리였고 그대로 현관을 나왔다. 도쿄역까지 가는 전철은 굉장히 붐볐다.” 이는 소설 《마나즈루》의 주인공 케이의 말이다. 케이는 ‘아무것도 없는 곳’인 마나즈루를 향해 오늘도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가 마나즈루로 발걸음을 옮기는 날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마음이 심란한 때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거나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외로울 때, 그리고 12년 전 실종된 남편의 흔적이 몹시도 그리울 때 그녀는 마나즈루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얼마 전, 아끼는 후배로부터 소설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후배는 가와카미 히로미 작품인 소설 《마나즈루》를 번역했다고 하면서 사인까지 곱게 해서 책을 보내왔다. 책 표지에 두른 띠지(출판사에서 홍보하기 위한 책 광고 문구 등이 기재됨)에는 “추리소설과 여행기, 우아한 에로티시즘을 결합한 꿈 같은 작품”이란 광고 문구가 쓰여있다. 아담한 크기의 소설책을 받아 든 나는 책장을 대충 넘겨본 뒤 책상 위 한쪽에 한동안 방치(?)했다. 사실 나는 요즘 소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제 더 이상 물러갈 곳이 없는, 한해의 끝이다. 한해 끝자락에 서면 마음이 허(虛)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에 시달렸던 사람들에게 올해는 더없이 상쾌하고 즐거워야겠지만 복잡다단한 나라 안팎 여건 속에서 불황의 그림자까지 드리운 상황이다 보니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더욱 처진 느낌이다. 생기(生氣)를 잃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무엇인가 이들에게 기(氣)를 채워줄만한 것은 없을까 싶을 때에 눈에 확 띄는 전시회가 있어 다녀왔다. 서울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길상 에너지 전>이란 이름의 전시회가 그것인데 작품을 그린 분은 능허 김성종 스님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붓으로 터치해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놀라고, 언뜻 자수로 한올 한올 수놓은 것인가 싶어 바짝 다가서서 보면 그것도 아니라 놀란다. 그러면 무엇으로 이 그림들을 그린 것일까? 그런 의아함으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작품 하나하나에 쏟은 작가의 공력에 다시 한번 놀란다. 한올 한올, 누에고치가 비단실을 자아내듯 수많은 선과 선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생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왁자지껄 잔치가 벌어졌다. 이름하여 꼬치감(串枾, 쿠시가키)축제다. 꼬치감은 말 그대로 가느다란 대나무 꼬챙이에 깎은 단감을 끼워 말리는 것으로 이것은 곶감으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초에 가가미모찌(鏡甁)에 장식하려는 것이다. 가가미모찌란 정월 초하루에 찹쌀떡을 눈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집안의 신성한 곳에 두는 의식으로 여기에 꼬치감을 얹어 놓는다. 이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풍습으로 신사(神社) 등에서 전해오는 3종의 신기(神器) 곧 거울과 칼, 곡옥을 대신하여 떡, 꼬치감, 귤을 포개어 진설하여 나쁜 액운을 막기 위한 민간신앙에서 유래한다. 칼 대신에 뾰족한 대나무 창에 곶감을 꿰어 말린 꼬치감은 우리가 흔히 먹는 곶감이긴 하지만 특별히 제례용 감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꼬치감으로 유명한 와카야마현 시고마을(四鄕)은 표고(標高) 400m~ 550m에 자리 잡아 겨울은 춥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꼬치감을 만들기에 적합한 조건을 가진 지역이다. 이곳 말고도 기후현, 나가노현, 히로시마 같은 곳에서도 꼬치감을 생산하지만 시고(四鄕)산을 으뜸으로 친다. 시고마을의 꼬치감은 4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지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