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한글이름은 개인, 단체 개성을 돋보이게 해 벌써 10 수년전쯤 지난 일이다. 나의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보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오더니 갑자기 뾰루퉁하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아버지 내 이름은 왜 한글이름이어요? 이상하다고 아이들이 놀리잖아요."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리곤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그 아이들에게 이름으로 상받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구 해." 그 뒤로는 우리 아이의 입에서는 다신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우리 집안에는 족보가 있어서 나는 한자 돌림자를 이름 중에 가지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이름 중에 한자 돌림자를 써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자손이 많이 퍼진 가문을 보면 사촌간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오며, 전화번호부에 보면 동명이인이 많게는 수백 명에서 수십 명씩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젠 한자로의 돌림자는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한글로 짓게 되었다. 큰 아이는 "아름 솔", 작은 아이는 "으뜸 솔"이다. 한자 대신에 순 우리말 '솔'자로 돌림자를 대신했다. '솔'자는 우리말사전에 보면 다음과 같이 좋은 뜻을 가진 낱말들이 나온다.1. 소나무, 우리 조상들이 소나무 외에는 모
“한글을 아시나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도대체 한국 사람치고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 모두 곰곰 생각해보자. 우리 겨레의 글인 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잘 아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늘 말글과 떨어져 살 수가 없다. 무한한 공기 속에 살기에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우리도 말글 속에서 그냥 살아가기에 말글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말을 못하고 글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 또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격찬하는 위대한 글자인데도 정작 제나라 사람들은 그 위대함을 모르고 푸대접하기 일수이다. 남의 나라 글자인 한자와 영어쓰기에 더 골몰해 있을 정도임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터이다. 1999. 3. 3자 한겨레신문에는 박승규 경북대 강사의 글이 실려 있었다. “13년전 한국에 온 네팔 카투만두대학의 한 교수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생긴 일이다. 당시 나는 습관적으로 이름을 한자로 적어주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왜 한국 사람이면서 중국의 글자로 이름을 썼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전혀 얘기치 않은 상황에 매우 당황해, 우리나라는 중국의 옆에 있기 때문에 그
▲ 김홍도의 무동(舞童) 작년 8월 말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아들과 한밤중에 심각한 토론을 했다. 그 아이는 8월 내내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던 것 이다. 내가 늦게 들어가 서 씻고 나니 12시가 되었다. "아버지께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 밤중에?" " 예, 내일 풍물반 연습이 있는데 그전에 처리해야 되어서요." 우리 아이는 1학년부터 특별활동으로 풍물반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여름 방학 기간에 풍물전수를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풍물전 수가 아닌 사물놀이 전수를 간다고 해서 가기 싫다고 빠진 적이 있었기에 심각한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그 동안 이 학교의 풍물반은 경희대 풍물패연합에서 지도를 해 주었으며, 그 풍물패는 호남좌도의 임실 필봉굿 계열이었기에 사물놀이가 아닌 순수 풍물놀이를 지켰고, 당연히 남원의 필봉굿 전수관으로 갈 줄 알았다가 바뀐 탓에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또 우리 아이는 풍물놀이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온 터여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저는 개학한 날(8월 27일) 가을 축제(사실 축제라고 쓰면 일본식 한자말이다) 때 사물놀이 공연을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인터넷 다음사이트의 우리 풍물반 카페에 글을 올렸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이며, 양력으로는 1월 20~21일경이다. 소한(小寒)과 입춘(立春) 사이에 있는 절기로, 해의 황경은 300도가 된다. 음력 섣달로 한 해를 매듭짓는 절후이다. 대한의 마지막 날은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여겼다. 절분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초가 된다. 이때 세끼 중에 한 끼는 꼭 죽을 먹었다.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쉬는 때이므로 삼시 세끼 밥 먹기가 죄스러워 그랬다고 전한다. 일을 하지 않고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정신일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新舊)간에 하는 것이 풍습이다. 이때 신구간이란 말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1월 25일∼2월 1일)로 보통 1주일 정도이다. 대한 무렵은 한해에 가장 추운 때이다. 우리 주변에는 연탄불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여 냉골인 방에서 혹한을 견뎌야 하는 어려운 이들이 있다. 나 한 사람의 등이 따뜻하면 남의 고
소한은 24절기 중 스물세 번째로 양력으로는 1월 5일~6일경이다. 해의 황경(黃經)이 285도일 때이며,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면서 한겨울의 추위가 매섭다. 옛사람들은 소한 15일 중 초후에는 기러기가 북쪽으로 돌아가고, 중후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에는 꿩이 운다고 하였다. 소한은 양력으로 해가 바뀌고 처음 오는 절기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면 대한(大寒) 이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소한(小寒) 때가 1년 중 가장 추운데 절기의 기준이 중국 화북지방이기 때문에 안 맞을 때가 잦다. "대한이 소한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고 할 정도로 추웠다.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또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 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며 눈을 좋은 조짐으로 보았다. ---------------------------------------------------------------
12월 21~23일은 팥죽을 쑤어 먹고 달력을 나눠 가지는 동지다. 동지는 24절기의 스물두 번째고, 해가 적도 이남 23.5도의 남회귀선 곧 동지선(冬至線)인 황도 270도에 오며, 양력 12월 22~23일에 든다. 동지는 대설과 소한의 중간에 있는데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로 즐겼다. 해가 남회귀선에 도달한 때로 밤이 제일 길지만 동지 이후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옛사람들은 이날을 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잔치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고대 로마력(曆)에서 12월 25일은 동지(冬至)날이었고, 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지방,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이 동짓날을 설날로 지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동짓날을 작은설, 곧 다음해가 되는 날이란 의미로 ‘아세 (亞歲)’라 했다.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할 정도로 11월은 동지가 중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성탄절은 《신약성서》에 쓰여 있지 않아서 옛날에는 1월 6일이나 3월 21일을 성탄절로 지내기도 했지만 4세기 중엽이 되어서 로마 교황청이 성탄절을 동지설날과 같은 날로 정했다고 한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
대설은 24절기의 스물한 번째로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양력 12월 7~8일경이다. 해의 황경이 225°에 도달한 때이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고 하지만 꼭 이 시기에 눈이 많이 오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원래 역법 기준지점인 중국의 화북지방의 기후대로 붙여진 것이어서 맞지 않는 때도 있다.옛사람들은 대설기간 중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낳고, 말후(末候)에는 박과의 한해살이 풀인 여주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된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중 십일월령에 있는 노래이다.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면 가정에선 콩을 쑤어 온갖 정성을 기울여 메주를 만든다. 잘 씻은 콩을 고온에서 짧은 시간에 익히는데 손으로 비벼보아 뭉그러질 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삶은 콩은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뺀 후 지역에 따라 둥글넓적하게 혹은 네모지게 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메주를 며칠 방에 두어 말린 후,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알맞게 뜨면 짚으로 열십자로
소설은 24절기의 하나로 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양력 11월 22~23일경이며, 해의 황경이 240°에 오는 때이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살이 간간이 내리쬐어 ‘작은 봄’이란 뜻으로 소춘(小春)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사람들은 소설기간을 삼후로 구분하여, 초후(初候)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천지가 얼어붙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손돌이 죽은 날’이라는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 임금이 배를 타고 통진과 강화 사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왕은 사공이 고의로 배를 흔들어 그런 것이라고 사공의 목을 베었다. 사공은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 사공의 이름이 손돌이었다. 그래서 그 손돌이 죽은 곳을 손돌목이라 하고 지나갈 때 조심한다. 해마다 그날이면 강풍이 불고 날씨가 찬 데, 이는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강화에서는 이날 뱃길을 금한다. 이때의 추위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이바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김남주 시인은 라는 시에서 이 즈음의 정경을 이야기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신호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이다.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 번째이며, 양력 11월 7일이고,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든다. 해의 황경이 225도일 때인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옛사람들은 입동기간 중 초후(初候)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는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말후(末候)엔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인데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으려고 배추를 묶어주며,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는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대가댁 김장은 몇백 포기씩 담는 것이
상강은 24절기의 열여덟 번째 절기로 한로와 입동 사이에 있으며, 음력 9월, 양력 10월 23~24일경이 된다. 해의 황경이 210도 되는 때이다. 이 시기는 맑고 상쾌한 날씨가 이어지며 밤에는 기운이 뚝 떨어지면서 서리(霜)가 내리기(降) 시작한다 하여 상강이다. 옛사람들은 상강기간 중 초후(初候)에는 이리와 비슷한 승냥이가 산 짐승을 잡고, 중후(中候)에는 풀과 나무가 누레지고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봄에 시작했던 농사일도 상강 때쯤이면 가을걷이가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