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봄의 전령 매화가 피어났다. 겨울내 나라가 온통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탄핵사건으로 움츠려들어서인지 해마다 3월 중순이면 피던 매화가 올해는 4월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꽃망울을 터트렸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을 정도로 그 자태가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온나라 절에는 많은 매화나무가 있고, 특히 한 두그루 유명세를 타는 유서깊은 매화나무가 있는데 특히 순천 선암매는 한국의 유명한 매화꽃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힐 정도로 매혹적이다. 선암사에는 무우전과 팔상전 주변에 피어난 20여 그루의 매화나무 있는데, 그 가운데 300년 이상 자라나 고목이 된 백매와 홍매 각 1주가 한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를 '선암매'로 부른다. 이 선암매는 고려시대 중건한 전각의 상량문에 선암사의 와룡송과 함께 매화 관련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랜 세월 선암사의 흥망을 지켜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의 선암매는 고려 천년의 후손 나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현재 선암매 주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은 매화나무 말고도 선암매의 후손에 해당하는 20여 그루의 매화가 자라나고 있어 이 계절이 되면 선암사를 온통 매화향으로 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상과 보살상이 조성되었다. 우리가 부처와 보살상을 조성하는 까닭은 깨달은 사람의 모습을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여 그가 설파한 진리를 깨닫고자 함이다. 더 나아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삶을 사는 현실에서 부처님 처럼 또는 문수보살 등의 보살님과 같은 삶을 살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상이 조성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시작된 불상 조성은 처음에는 그리이스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인도의 서북쪽 간다라지방(현 파키스탄)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불교가 이웃나라로 전파함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불상의 제작방법도 함께 전해지게 되었고, 이를 전해 받은 나라들은 전해받은 조성기법과 원칙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법들을 추가하고 또 자신들의 모습과도 비슷한 모습의 불상들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불상들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서역 실크로드를 거치고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고, 그렇게 들어온 깨달은 부처님의 모습들이 불국토를 이루고자 하였던 선조들에 의하여 많이 조성되었다. 그런데 같은 원칙과 기법으로 조성한다고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서 또 조성하는 조각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려는 삼국시대 이래로 불교가 숭상되었던 불교국가였다. 따라서 전국 곳곳에는 신라시대를 이은 절들과 불상들이 많이 조성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고려시대의 절 건축물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건축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고려시대 건축물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이다. 이 건축물들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 가운데 가장 잘 지은 건축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이후 지어진 조선시대의 그 어떤 건축물들 보다도 비례감도 좋고, 각 부재들의 가공기법도 뛰어나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조각품들은 남북국시대(통일신라)의 조각품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삼국시대 이래 남북국시대의 조각품들은 불상들의 조각상이 매우 정교하고 비례감이 뛰어난 반면, 고려시대의 조각들은 정교한 비례감은 오히려 떨어지고 그 규모가 커졌다. 이는 지역별 그 지방의 호족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규모를 강조한 탓도 있겠지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도 바뀐 탓이 아닌가 한다. 이를 현대미술과 빗대어 보면 정교한 사실적인 작품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오히려 급이 낮아보이고, 예술에 추상성을 도입하여 조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이국적인 국토 한자락인 제주도는 언제 가 보아도 아름다운 한국의 보물 땅이다. 제주도는 비록 섬이지만 남한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 우뚝 서있고, 산 꼭대기는 전체적으로는 솟아오른 듯 보이지만 가운데가 화산의 분화구로 움푹 패여있어 물이 고여있다. 이 분화구는 사슴이 찾는다고 하여 이름을 '백록담'이라 붙였다. 한라산 주변에는 크고 작은 분화구들이 펼쳐져 있는데, 제주도를 남북으로 횡단하기 위하여 낸 도로를 오르다 보면 한라산 1,100고지를 통과한다. 그 주변에 가면 한라산 정상을 못오르더라도 한라산을 올려다보고, 또 바닷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어승생악이 있다. 어승생악은 한라산관리소와 박물관이 있어 한라산 생태를 공부할 수도 있어 많은 탐방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어승생악에 오르려면 이곳 주차장에서 30분~40분 정도만 오르면 되는 곳이라, 한라산 정상을 못오르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어승생악에 오르면 근세 일제강점기 나라잃은 한국의 아픈 상처도 함께 볼 수 있다. 어승악생 정상에서 제주 북쪽해안가를 살필 수 있는 일제강점기 군사용 동굴진지가 설치되어있는 것이다. 지금은 군사용 진지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명소로 언제나 손꼽히는 서해 태안반도 꽃지해수욕장의 빛내림 저녁노을이 황홀한 장관모습. 하루에 2차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꽃지는 밀물이면 섬이 되었다가 썰물이면 뭍(육지)으로 변하는데, 뭍으로 변하는 시간에는 다정한 사람들끼리 두손을 잡고 걸어서 섬까지 갔다가 밀물시간이면 육지로 걸어서 나올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떠오르는 태양의 각도가 달라짐으로, 매일 가도 늘 다른 모습의 노을을 볼 수가 있고, 또 하늘의 구름에 따라서도 늘 다른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썰물이 되어서 뭍이 된 바닷가 뻘밭을 걸어보는 것도 자연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꽃지의 바닷가는 뻘밭이지만 모래성분이 많아 발이 빠지지 않아서 걷기에 좋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원앙은 몸무게 500g 정도되는 오리과의 작은 새다. 원앙은 수컷에게 아름다운 장식 깃이 있는데, 이는 이른 봄 번식기에만 뺨에 생기는 것으로, 번식기가 끝나면 깃이나 뺨의 장식 깃도 떨어져 버려서, 암컷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번식기에는 부리도 붉은 색이 되어 확실하게 다르다. 반면 암컷은 늘 회갈색이고, 가슴과 옆구리에 굵은 회색얼룩이 줄로 그려져 있다. 원앙은 동아시아가 원산으로 텃새가 되어서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새로, 한국인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과 연관지어 신혼부부와 빗대어 부부금슬이 좋은 사람들을 원앙같다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옛사람들은 혼인식 때 원앙조각상을 갖추어 두고 행복한 부부가 되길 축복하였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이른 봄이 되면 깨끗한 못이나 개울에 원앙들이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오늘 올리는 사진은 창경궁의 연못에서 본 모습이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법수사는 신라 하대 애장왕(800~809년) 때 창건한 절로, 합천 해인사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던 절이다. 법수사의 지형적 위치는 가야산 계곡의 경사진 곳을 석축을 쌓아서 계단식 터를 다지고 건축물들은 위계질서를 잘 갖추도록 계획하였다. 신라가 고려에 항복할 당시 경순왕은 고려 태조에게 국서를 보내 신라를 고려에 바치면서, 막내 아들을 화엄종의 절로 출가하여 중이 되게 하였는데, 그의 법명은 범공(梵空)이며 후에 법수사와 해인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법수사가 언제 폐사 되었는지 자세한 내역은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절들이 함께 모여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9개의 금당과 8개의 종각이 있었다는 기록이 《경산지》 불우조에 전한다. 현재 법수사터 아래에는 백운동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당간지주도 있다. 발굴조사 뒤 정비한 법수사터의 주요 전각 위치에는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건물의 초석들이 놓여있고, 불국사 석가탑과 같은 형식의 3층석탑이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세워져 있다. 다만 석탑의 상륜부는 많이 손상되고, 찰주를 세웠던 노반만이 남아있다. 탑의 전체적 비례는 불국사 석가탑과 거의 흡사한 모습이며, 맨 아래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봄이 온다는 입춘이 지난 뒤에 눈이 내렸다. 봄눈이라 내리자 마자, 쌓이기 보다는 녹아버려 아쉽기는 하지만, 이번 겨울 마지막 눈이라 생각하며 눈덮인 고궁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정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그 문화유산적 값어치를 뽐내고 있다, 창덕궁의 후원은 왕실의 쉼터로, 후원에 들어서면 도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첩첩산중 심산유곡인 듯 자연속에 몰입되는 정원으로, 자연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지형을 잘 이용하여 곳곳에 정자와 연못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정원의 특징으로 동양 삼국 가운데서도 인위성이 거의 없는 한국전통정원임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창덕궁 부용정(芙蓉亭)은 부용지를 걸터 앉은 듯 정자의 두기둥을 연못 안에 담그고 있는 건축물로, 아(亞)자형 평면을 한 작은 건축물이나, 그 모습이 매우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지붕 또한 아(亞)자형 평면 위에 올라 앉은 것이라, 회첨골이 많아 아름답지만, 회첨골 주변에 물이 스며들 수 있어, 관리를 잘 해야만 하는 건축물이다. 부용이란 연꽃을 이르는 말로, 연꽃 연못위에 연꽃정자를 지은 샘이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전하는 남해군 금산 보리암은 처음에는 보광산 보광사로 불렸다. 그런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된 뒤, 기도할 당시 소원이 이루어지면 보광산을 전부 비단으로 덮겠다는 맹세를 하였다. 그러나 조선왕조 개국 뒤에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니 여의치 않자 고민 끝에 보광산을 금으로 덮는 대신 산의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바꾸어 부르게 된데서 현재의 금산(錦山)이 되었다고 전한다. 남해 금산의 해발고도는 681m애 이르는 높이로 바다에서 보면 높은 산이다. 참고로 관악산의 해발고도는 629m 인 것을 보면 이곳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이 간다. 금산은 해안가에 우뚝 솟은 산으로, 대부분 험준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장엄하며, 그 바위산 중턱에 자리잡은 보리암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바다를 오고가는 수많은 뱃사공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로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험난한 바다에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신앙의 대상으로 관세음보살만한 의지처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3대 관음기도처로는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화도 마니산 아래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전등사는 고구려시대부터 있었던 유서깊은 절이다. 전등사는 마니산 정족산성 안에 있는데, 정족산성은 단군의 세아들들이 지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런 연유로 '삼랑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유서깊은 마니산 전등사에 지난 설날(29일) 내린 눈이 소담스럽게 쌓여 고요한 산사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