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안반데기'는 '안반덕'의 강릉지방 사투리다. 한국 동쪽 해안의 북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의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고산지역 가파른 산등성이에 안반처럼 우묵하면서 넉넉한 지형으로 '편안하고 반듯한 언덕' 이란 뜻이라고 한다. 안반데기는 해발 1,100m 고산지역으로 늘 구름이 안개처럼 피어나는 땅으로 한여름 무더위에 전국이 열대야로 몸살을 앓아도 이곳은 더위를 잊고 사는 곳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게된 계기는 한국전쟁이후 땅없는 농민들이 좋은 농지는 고사하고 기댈곳 없던 피난민들이 국유림으로 가득한 이곳에 들어와 오로지 산림에 불을 놓고, 곡괭이와 톱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개간하여 화전밭을 만들면서 농경지가 되었다. 이곳은 피덕령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고루포기산을 좌우측에 둔 농경지로 그 면적은 195.5ha에 이르며 넓게 펼쳐진 농경지가 마치 독수리 날개모양이다.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안반데기 탐방로는 5.0km가 넘는 먼 거리로 그 폭은 200m 이상이다. 안반데기는 1965년 정부에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온 경작자들에게 매각하여 산지를 개간한 농민들은 자신 소유의 농지를 갖게 되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인지라 이곳만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산하에는 빼어난 곳이면 어느곳이든 정자가 있다. 정자는 굽이쳐 흐르는 계곡이나 강을 낀 언덕이면 자리잡기 딱 좋은 건축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마음을 가다듬고 복잡한 세상사를 잊게하며 사람이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시설로, 한국인의 자연관과 그에 어울리는 건축관을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런 정자는 수백년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마을의 유서가 깊은 곳이면 어디나 있었다. 정자는 그 크기가 그 위치에 따라 다양하다. 넓은 곳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는 큰 정자를 지었고, 호졋한 냇가에 혼자 즐길 수 있는 곳에는 한칸짜리 작은 정자도 지었다. 이런 정자는 오랜 세월 시간과 함께 한국인의 역사를 담은 문화유산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 두루두루 널리 펼처져있다. 조현숙 사진작가는 수십년 동안 전국의 자연속에 숨어있는 정자와 누각들을 찾아다니면서 사계절 자연의 변화와 함께 변하는 정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전국에 숨어있는 정자들을 목록으로 정리하여 시간나는 대로 찾아다니면서 사진으로 담으면서 남다른 흥분과 환희심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세월 담아왔던 사진들 가운데 작가의 마음속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1936년 독일은 독재자 히틀러의 세상이었다. 그 무렵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정점에 놓여 있었으며 한국인은 희망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일제감점기, 전국의 평야에서 생산된 곡식은 일제를 위한 군량미로 공출되어 정작 농사를 지은 농민들도 하루 3끼조차 먹고 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청년기 운동선수인 손기정도 배불리 먹을 밥도 없어 굶어가면서 마라톤에 전념하였고, 선수로 뛰는 것조차 공정하지 못하여 어렵게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올림픽에서는 쳐다보기도 싫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여건 속에서 손기정은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 당시 마라톤 전구간을 인간 한계라 여기던 2시간 30분의 기록을 깨고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하였다. 손기정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기 전, 한국에서 전국적으로 모인 선수들 대상의 선발전을 거쳐 조선인 대표로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본인 선수들과 여러차례 선발전을 거치는 동안 우승하여 출전권을 얻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한국인 손기정 대신 일본선수를 출전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편법의 선발전을 하였다. 하지만 달리는 시간기록으로 선발할 수밖에 없는 마라톤인지라, 대회가 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언듯 보면 화면 전체 호랑이 한마리만 있는 듯 보이지만, 호랑이의 등 뒤 소나무 가지에는 작은 까치가 매달리듯 앉아서 노래하고 있다. 호랑이는 전혀 무섭지도 않고 마치 집에 기르는 고양이처럼 온순하고 다정해 보인다. 이런 호랑이라면 누구나 한마리쯤 옆에 두고 친구처럼 다니면 든든할 듯한 모습이다. 까치호랑이 그림은 조선 후기 백성들의 마음을 표현한 대표적인 그림으로 말쑥한 까치에게 골탕먹는 바보호랑이를 그렸는데,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반가운 새로 사람들이 좋아하였고, 호랑이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로, 호랑이가죽은 액운을 막아주는 호신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겼다. 또한 호랑이는 인간의 삶을 보살피는 산신령의 명령을 따르는 사자로 신령의 복을 받고자 원하는 백성들은 집집마다 실제호랑이가죽은 못걸어도, 이를 대신한 까치호랑이 그림을 그려서 붙였다. 이렇게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호랑이라면 당연히 무섭지 않아야 할 것이고, 영특하기보다는 천진스럽고 바보스러워야 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무섭기 그지없었던 호랑이를 한국인은 친근한 친구이면서 신령을 따르는 영물로 새롭게 형상화 하였다. 요즈음에 실감나게 그리는 무서운 호랑이그림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1984년 8월 6일 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한국진경산수화를 개척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이 그린 한국산수화의 대표작이다. 인왕제색도의 크기는 138.2cm x 79.2cm로 1751년 (영조27)에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 삼청동, 청운동, 궁정동 방향에서 바위로 이루어진 인왕산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린 그림이다. 정선은 한여름 소나기가 그친뒤 맑게 갠 인왕산에 빗물이 계곡과 바위 사이를 흘러내려 이룬 폭포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과, 바위산 주변 언덕 소나무 모습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그린 듯한 순간 포착 산수화를 그렸다. 이때 정선의 나이는 75살로 평생동안 그려온 그림이지만 그 예술혼이 가득한 달관의 경지를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화면 가득 암반으로 가득한 인왕산의 기운이 넘친다. 이 그림은 먹을 진하게 간 먹물을 물에 희석하여 농담을 조절하여, 바위의 질감을 표현하고 산과 바위 그리고 나무와 폭포까지 오로지 먹물로만 그렸다. 정선이 한국의 자연에서 볼 수있는 실경산수화를 보이기 이전, 조선의 화가들은 명나라를 숭상하던 학풍이 내려왔던 까닭에 자연을 그린 산수화까지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전국이 불볕더위로 끓어 오르는 한여름에 서울 관악구, 과천시, 안양시에 걸쳐 펼쳐진 관악산의 맨 꼭대기에는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관악산 연주암 연주대가 있다. 연주대는 조선조 세번째왕인 태종의 첫째와 둘째 아들이었던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위를 동생인 충령대군(세종대왕)에 내어주고 이곳에 머물며 한양의 궁궐을 보면서 가까이 할 수 없는 임금(충령대군=세종)을 그리워하며 궁궐을 굽어보았다하여 연주대라 불렀다고 전한다. 연주대가 자리하고 있는 불꽃바위는 관악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의 하나로 관악산이 전체적으로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흙이 오랜세월 쌓여서 이뤄진 바위로 특히 많은 기를 받을 수 있는 명당터로 알려져 서울과 수도권 불자들의 기도처로 이름난 곳이다. 연주대 비좁은 전각에는 하루도 쉬임없이 아라한의 기를 받고자 기도하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심한 때라도 이곳은 해발고도가 630m 인지라 시내보다 4~5도 낮은 온도인데다가 사방이 탁트여 있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연주대는 관악산 꼭대기에 날카로운 칼바위(불꽃바위)가 서있는 자연암반에 터를 만들어 암자를 지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장미는 본래 원산지가 아시아였으나, 18세기말에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유럽에 유입되면서 아시아의 다양한 장미들을 서로 교잡종으로 만들어 색깔과 모양은 물론 개화 시기등 생태적인 변화까지 이루어져 수많은 품종들이 만들어졌다. 그런 까닭으로 18세기 이전의 장미는 고대장미라고 하고, 19세기 이후의 장미는 현대장미라고 한다. 장미는 생태적으로 온대성 상록관목으로 햇빛을 좋아한다. 장미가 좋아하는 생육온도는 24~27°C 구간으로 야간온도는 15~18℃이다. 30℃이상이면 꽃이 오히려 작아지고 꽃잎수가 줄어들어 퇴색하고, 잎이 작아지고 잎의 색깔은 진해진다. 기온이 내려가 5℃정도가 되면 성장이 정지되고 0℃가 되면 잎이 낙엽이되고 휴면에 들어간다. 장미는 최저온도 18℃에 개화하며 우리나라에서는 5월부터 꽃이 피어나 가을까지 핀다. 장미의 번식은 3~4월에 가지를 꺾어서 삽목하여 뿌리가 돋아나면 옮겨심는다. 꺾꽂이 방법은 잎의 상태가 좋은 5매엽이 있는 줄기를 눈 위 1cm 위치에서 5~8cm 잘라서 펄라이트나 암면에 꽂는다. 요즈음 장미가 심어진 곳이면 어디나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데, 오늘 올리는 장미는 고양시 일산호수공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불어닥친 제주도민의 항쟁은 일제강점기의 고난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일제를 벗어나 독립은 되었으나 미군정과 한국내 이념갈등 속에 무고한 제주도민들은 한국의 군인과 경찰들에 의하여 붉은빛으로 덧칠되었고, 지금도 그 희생자 수를 정확히 모른채 제주도 곳곳에서 하나씩 둘씩 계속 발견되고 있고, 그 흔적은 제주민들에 의하여 기념되어지고 있다. 오늘 올린 4.3의 자취는 산속으로 숨었던 주민들이 혹한의 겨울을 견디다가,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군경 토벌대의 말에 얼어죽느니 살고자 귀순하였으나, 귀순한 뒤에는 붙잡혀 용공혐의로 고문을 받다가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기 위하여 제주항에서 배를 타러 끌려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조각상이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자로 집단 수용되었다가 행방을 모른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끌려가서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며 그 전모조차 밝혀지지 않아 안타깝다. 제주는 아름다운 풍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바로 앞세대 사람들은 좌우 이념의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념의 굴레를 뒤집어쓴채 고단한 삶을 살았던 피맺힌 원혼들의 한국 현대사 최대 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코로나 19로 인하여 정상적인 활동은 하지 못하지만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삶의 현장은 계속되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람은 각자 해야할 일들을 스스로 찾아서 열심히 살고 있기에 인간세상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은 그런 환경에서도 이룩한 것들에서 보다 더 뜻 깊은 삶의 의미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한국문화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불교사찰의 일부분으로 그 의미가 남다른 '사찰의 다리'를 주제로한 사진전을 소개한다. 현재 한국에서 불교를 주제로 사진활동하는 단체가 여럿 있다. 그 중에 심상(心像)이란 모임이 있다. 이 단체는 해마다 전시회를 하였는데, 올해로 32회째 사진전을 개최한다. 매년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불교안에서 특별한 주제를 택하여 작품을 만들고, 이를 모아서 매년 전시회를 열어 왔는데, 올해의 주제는 사찰의 주변에 있는 다리를 주제로 정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한국의 사찰은 대부분 깊은 산속 아름다운 자연속 품에 안긴 듯 포근한 모습의 전각들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절 주변에는 산도 있고 계곡이 있고, 연못이 있어, 사찰의 본당인 전각에 이르기 까지는 많은 다리들이 있는데, 계곡을 건널 때 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서쪽해안에서 남으로 길쭉하게 뻗은 태안반도의 시작점인 태안읍 백화산 중턱에는 태을암으로 불리는 천년고찰이 있다. 태을암의 절 이름은 본래 한민족의 조상으로 여기는 단군의 영정을 모셨던 전각인 태일전(太一殿)에서 유래한다고 하지만 현재는 단군을 모셨던 태일전은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있다. 현재 태을암의 중심건물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며 대웅전 가운데는 석가여래 그리고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관세음보살은 현재 사람들의 고통과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모셨고, 지장보살은 부모형제 등 조상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모셨다. 예전에 있었던 태일전은 터만 남았다고 했는데 태일전에 모셨던 단군은 최근 대웅전의 아랫쪽 언덕에 지은 산신각의 중심에 새롭게 모셨다. 산신각에는 다른 절의 경우라면, 가운데에는 북극성을 뜻하는 치성광여래(모든 별들은 움직이지 않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던 옛 사람들은, 북극성을 별들의 왕으로 생각하여 별들의 중심으로 여겼다)와 하늘의 4방위를 뜻하는 하늘신을 그리고 있으나, 이곳 태을암에는 치성광여래 대신 단군이 가운데 모셔져 있고 단군의 뒤에는 도교에서 모시는 신들이 있다.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