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릉의 들머리 에는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붉은 기둥의 홍살문이 있다. ▲ 비각 ▲ 헌릉은 전형적인 쌍릉으로 왼쪽이 태종, 오른쪽이 원경왕후 민씨의 릉이다. ▲ 원경왕후 민씨의 릉 ▲ 헌릉은 난간석이 잘 갖춰져 있는데 두 릉 사이 난간석이 연결되어 있다. ▲ 봉문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봉분 아래에 둘러놓은 병풍석의 면석에는 수솬인면인신상 무늬가새겨져 있다. ▲ 병풍석의 면석 사이에 있는 우석에는 여저영탁(불교) 무늬가 새겨져 있다. ▲ 릉 뒤편으로는 석양, 석호 같은 석물들이 릉을 지키고 있다. ▲ 릉 앞의 혼유석(魂遊石, 영혼이 나와서 놀도록 한 상) ▲ 태종릉 혼유석 뒤쪽 받침돌에는 태종우(太宗雨)를 기리는 작은 구멍이 있다.
보리암 위에서 본 영응기적비 보호각 정면에서 본 남해영응기적비 보호각 기적비각 정면 현판 1903년 대한제국 고종황제 때 세운 비석. 지역민의 상소로 세웠다고 한다. 남해금산영응기적비, 조선 태조이성계가 산신께 기도하여 감응을 얻었다는 내용과 금산의 유래를 기록한 비석 ▲ 태조 고황제 기도처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관세음보살의 영험기도처로 유명한 남해 보리암의 바로 앞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기도처가 있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산신께 기도하였고, 그에 감응하여 조선을 개국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성계는 산신께 기도하면서 만약에 자신이 임금이 된다면 험준한 남해금산(당시 보광산)을 모두 비단으로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는 비단으로 덮어주겠다고 산신께 약속했지만 막상 임금이 되고나서는 험준한 산을 모두 비단으로 덮을 수가 없어 고민을 하였다
▲ 남해 관음포 이순신공원 종합계획 조감도 ▲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유언, 전장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적에게 말하지 말라. ▲ 유허비각에 이르는 소나무길 ▲ 대문 앞에서 본 유허비각 ▲ 충무공 유허비각 현판. 大星殞海 (큰별이 떨어진 바다) ▲ 충무공 유허비각 내부 천장 ▲ 충무공 유허비 ▲ 첨망대로 가는 소나무 숲길 ▲ 관음포 해전이 벌어진 바다에 작은 섬이 있다. ▲ 광복후에 세운 첨망대. 관음포 앞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해전의 현장을 볼 수 있도록 세운 정자 ▲ 1698년(음) 11월 19일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관음포 해전도 ▲ 공원 해변에서 본 관음포구 ▲
쌍계사의 승탑, 교구본사로 또 유서깊은 역사에 견주었을 때는 너무도 소박하고 그 수도 적었다. 쌍계사 극락교, 사찰의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그곳은 극락세계에 비유된다. 그 극락세계를 가려면 많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야 이를 수 있다고 가정하고 돌다리도 건너고 계곡도 건너고 굽이 굽이 산길도 돌아가야만 되는데, 극락교는 이제 부처님의 세계인 극락에 거의 다다았다는 뜻이다. 일주문에 이르면 이제부터 부처님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일주문을 자나면 금강문이 있다. 금각문에는 극락세계를 지키는 수호신인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다. 쌍계사 천왕문, 천왕문은 하늘의 세계를 동서남북으로 크게 나누어서 각각의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장들이 지키는 곳이다. 실제로는 한곳에 모아놓았지만, 4명의 천왕은 각각의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지키는 범위가 다르다. ▲ 천왕문을 지나면 이제대웅전에 이르기 전 마지막단계로 누문이 있다. 그런데 쌍계사에서는 8각9
오른쪽에 흥선대원군의 척화비와 왼쪽으로는 충무공의 충렬사가 보인다. 충렬사 오르는 계단과 삼문 최근에 세운 충렬사비 남해 관음포 충무공 이순신장군 사당 충렬사 충렬사 현판 충렬사 사당 옆에 세운 충무공비 충렬사내 이순신장군 영정과 신주 충렬사 사당 내 이순신장군이 쓰던 병장기와 깃발 그리고 관인의 확대모습 충렬사 내 세운 비석에는 충무공의 내력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비석의 위에는 용트림하는 청룡과 황룡이 새겨져있다. 특이한 것은 이수의 용들에 단청을 한 모습이다. 관음포 안에 있는 재현된 거북선 거북선안에는 거북선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포와 병장기 들이 전시되어있다.
칠불사 일주문 ▲ 칠불사 일주문 현판 ▲ 일주문 천장 ▲ 칠불사 영지,김수로왕과 허황옥이 그림자로나마 아들의 수행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 칠불사 사리타비들 ▲ 멀리본 칠불사 전각들 ▲ 칠불사 옹달샘 ▲ 칠불사 경내로 들어가는 계단아래에서 ▲ 아자방 굴뚝 ▲ 칠불사 문수전 ▲ 칠불사 문수보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지리산 아래에는 많은 옛 절들이 즐비하다. 그가운데서도 남쪽 하동에는 칠불사와 쌍계사가 대표적
▲ 홍예문을 들어서는 스님과 신도 ▲ 소나무 사잇길로 걸어가는 스님과 신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동해안 낙산사에도 오랫만에 눈이 왔다. 눈덮인 낙산사를 보고싶어 눈소식에 새벽잠을 설치고 가보았으나, 올해도 귀하디 귀한 눈은 불과 3cm에서 그쳤다. 아쉽기 그지 없었지만 그나마 따뜻한 겨울바람에 오전이 지나자 다 녹고 말았다. 그래도 기다리는 동안 낙산사 홍예문을 스님과 여신도가 다정한 모습으로 들어와 겨울 산사의 풍경을 따스하게 감싸주어 훈훈한 마음으로 사진에 담았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낙산사칠층석탑 정밀실측설계,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충남 아산에 있는 세심사는 아산시 명산인 영인산에 깊이 들어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비록 규모는 큰절이 아니지만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오랜 역사 속에 큰 수난의 상처도 어김없이 간작하고 있다. 그래서 절 내 전각도 오래된 건물은 없지만 절의 중심에 한국에서 보기드문 검은 돌로 된 아담한 다층석탑을 두고 북쪽에 아담한 대웅전을 좌우에는 요사채를 비롯한 전각들이 들어서 있다. 경사가 꽤 심한 지형을 이용한 연유로 중심을 이루는 석탑에서 남쪽 동쪽 내리막 에는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아 올려 평탄한 대지를 이루였고 중심에 탑을 쌓고 그 탑에 이르기 위하여는 남쪽에 세심루를 지어서 그 아래를 통해 오르면 석탑과 대웅전을 만날 수 있도록 경내를 배치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탑과 대웅전이 있는 곳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갑자기 찾아온 북극의 한파에꽁꽁 얼어붙은 한강 !! 옛날에는 겨울이면 으레히 얼어붙었다지만 요즈음에는 온난화 현상으로 한강이 얼어붙기도 쉽지 않다.여의도 고층빌딩 그리고 한강을 따라 강변북로고가도로가 펼쳐진 사이로 한강이 꽁꽁 얼어붙었다. 조선시대에는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을 떼어다가 동빙고 서빙고 어름동굴에 저장했다가 여름철 무더위 삼복에 임금의 하사품으로 썼다고 하는데,,, 정말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낙산사칠층석탑 정밀실측설계,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 백사장에 갈매기들과 함께 ▲ 해넘이를 즐기는 아이들 ▲ 누리마루에서 본 해넘이 ▲ 지나가는 배들을 유인하는 듯한 인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