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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4.3평화기념관, 반성 전제로 화해의 장이 되기를

제주 4.3평화기념관 야외 그리고 봉안당

  
▲ 기념관 연못에 비추어 본 기념관의 모습, 연못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 4.3 평화기념관과 기념비가 보이는 풍경

 

   
▲ 각명비 광장 중앙에 있는 기념 조형물

 

   
 

 

   
▲ 밝혀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들

 

   
▲ 밝혀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들

 

   
▲ 밝혀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들.

 

   
▲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돌판이 들어선 각명부의 배치도

 

   
▲ 희생자들을 봉안한 봉안당

 

   
▲ 2006년 부터 발굴된 참혹한 장면의 은폐현장이 들어났다.

 

   
▲ 발굴된 참혹한 현장모습 재현. 보는 이의 눈을 감게하고, 보는 순간 구토가 저절로 나는 참혹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장면.

 

   
▲ 발굴된 참혹한 현장 부분.

 

   
▲ 4.3 68주년 기념으로 공모한 시들로 시화전을 개최환 펼침막

 

   
▲ 기념시화전의 작품-1

 

   
▲ 기념 시화전의 작품-2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이념으로 갈라진 마음은 동포가 아닌 철천지 원수였다.  일제가 무단정치로 한민족을 말살하던 악몽에서 벗어나자 마자, 집권한 정부는 사상의 불순을 들어 무고한 시민들을 단죄해버렸다. 조금이라도 집권자들의 행위에 토를 달면 빨갱이로 몰라 붙여 참혹한 죽음의 구덩이에 몰아 넣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듯, 공산당이 양민을 학살하듯,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가 캄보디아 양민들을 학살하듯, 제주에서도 1948년 시작한 4.3항쟁을 통해 그 정확한 수를 알 수 없을 만큼 죽어갔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말도 할 수 없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은 것 자체가 죄인이 되어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면서 숨죽이며 살아야했다.

그리고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 민주화 시기에 이르러 겨우 당시의 참혹한 모습한 모습을 들추어 낼 수 있었다. 제주는 4.3사건을 겪은 후 어림잡아 인구의 1/9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이 29,000명 정도이나,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희상자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온전한 이성으로 도덕과 정의를 갖출때 비로소 사람 일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발광하게 되면, 그 때 사람은 포악한 짐승처럼 돌변해버리고 만다. 제주 4.3사건의 현장은 그런 광분한 정권의 야욕자들이 빚어낸 참사였다.

이제라도 우리가 4.3평화기념관을 세우고, 그 잔혹했던 장면들을 다시금 펼쳐보고, 그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벗어난 사실에 대하여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게는 반성을 전제로 더 이상 원한을 품지 말자는 화해의 장이 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하여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현장인 이곳 제주가 이 시대 민족의 분단과 이념을 극복하고 민족화해의 시발점이 된다면 그나마 엄청난 피해의 최소한 소득이 될 것이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