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1월 21일(수) 국가유산 사적(私的) 유용 의혹과 관련한 자체 특별감사 결과, 김건희를 종로경찰서에 고발하였다. 국가유산청은 해당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11월 차장 직속 임시조직으로 특별감사반을 구성하여, 윤석열 전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의 국가유산 관련 사항들을 모두 조사하였으며, 이번 감사는 지난 12월에 종료되어 경찰에 인계된 특검(특별검사) 수사와는 별도로 국가유산청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결과이다. 특별감사 결과 김건희는 ▲ 국가 공식행사나 외빈 방문에 따른 영부인 접견이 아닌 사적인 목적을 위하여 종묘 망묘루에서 차담회를 열었고, ▲ 대통령의 국가유산 사무에 대한 지휘ㆍ감독 권한을 월권하여 국가 공식행사로 추진하던 광화문 월대와 현판 복원 기념행사에 대하여 사전 점검을 하거나, 단순 전시 관람을 넘어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를 시찰하였으며, ▲ 휴관일에 사적 차담회를 열고, 사전 점검 시 경복궁 근정전 어좌에 앉는 등 국가유산청의 관리행위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김건희가 대통령실을 앞세워 국가가 관리하는 재화와 용역을 사적으로 사용·수익하고, 국가유산 관리행위를 방해한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7년 전인 1919년 오늘(1월 21일) 고종황제는 묘시(卯時, 아침 5시부터 7시까지)에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자기 세상을 떴습니다. 일제는 고종의 죽음이 뇌일혈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윤치호일기》에 따르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매우 건강한 상태였던 황제는 죽은 뒤 혀와 이빨이 타 없어지고 온몸이 퉁퉁 부어오른 주검으로 발견되어 수의로 갈아입히기 위해서 입은 옷을 찢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독살당한 주검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하지요. 고종이 ‘강제 양위식’을 당한 뒤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대한제국은 일본과 병합되었습니다. 고종은 그 뒤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을 알리기 위해 특사를 네덜란드 헤이그로 파견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자주와 독립’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종이 일제로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고 이 때문에 독살했을 것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후 고종의 장례식이 3월 3일로 결정되자 명백한 황제 독살 정황을 전해 들은 백성들은 태극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황제가 만든 탑골공원에서, 황제의 궁궐이었던 경운궁 대안문 앞에서, 그들은 식민지 백성이 아닌 이미 망해버린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용재, 이하 ‘박물관’)은 헌종 연간에 편찬된 박물관 소장 《궁궐지(宮闕志)》를 한글로 뒤친 고문헌국역총서 《국역 궁궐지-헌종 연간: 창경궁ㆍ경희궁ㆍ경성 부각지방》을 펴냈다. 《궁궐지》는 조선 후기 궁궐 전각의 연혁과 배치, 상량문(上樑文) 등 궁궐 조영과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은 기록이다. 일제강점기에 헐은 궁궐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로 평가된다. 박물관은 2023년 고문헌국역총서 제12책으로 숙종ㆍ고종 연간 《궁궐지》와 2024년 헌종 연간 《궁궐지》 가운데 경복궁(1책), 창덕궁(2책) 편을 각각 국역하여 공개한 바 있다. 이번에 펴낸 서적은 2024년에 이어 헌종 연간 《궁궐지》 가운데 창경궁(3책), 경희궁(4책), 경성 부각지방(5책)을 뒤친 것으로, 이로써 헌종 연간 《궁궐지》 전반의 국역이 끝나 19세기 궁궐의 모습과 조선 왕실 문화의 특징을 더욱 종합적으로 견주고 분석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창경궁은 일제강점기 동안 동물원으로 활용되며 궁궐의 명칭과 전각 기능이 크게 변형된 바 있다. 헌종 연간 《궁궐지》에는 당시 창경궁의 원형과 사용 양상을 보여주는 기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