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소장 임종성)는 오는 4월 6일 한식(寒食)을 맞아, 아침 9시 30분부터 구리 동구릉 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봉분을 덮고 있는 억새[靑薍, 청완]를 자르는 「청완 예초의(靑薍 刈草儀)」를 거행한다. 건원릉은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봉분이 억새로 덮여있는데,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太祖, 1335~1408년)의 유언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를 옮겨와 봉분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 건원릉 억새(청완) 관련 문헌 기록 - 인조실록(인조 7년 3월 19일): 태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청완(억새)을 처음으로 썼음. - 건원능지(1631년, 능상사초편): 태조의 유명(遺命)으로 함흥에서 옮겨왔으며, 한식에 억새 베기를 함. 예로부터 해마다 한식날마다 건원릉에서 풀베기를 진행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국가유산청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듬해인 2010년부터 매년 한식날에 억새를 베는 「청완 예초의」를 거행하고 있다. 「청완 예초의」는 봉분의 억새를 베는 ‘예초의(刈草儀)’와 1년 동안 자란 억새를 제거했음을 알리는 ‘고유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1일부터 44일 동안 한강 이남의 조선 남부를 탐사했다. 대학노트 약 350쪽을 여행기로 가득 채웠다. 삽화도 다수 그려 넣었다. 수많은 주막에 들렀다.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사람도 당시 그처럼 많은 주막을 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여행기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도 ‘주막’인 것 같다. 그가 숙박한 주막을 중심으로 그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먼저. 그가 여행기 첫 쪽에 적어 놓은 여행단 내역을 보겠다. (뒤침) 우리 여행단은 다음과 같다: 조지 C. 포크 미국 해군 소위 전양묵, 양반 정수일, 조지 포크의 수행원 가마꾼 12명 말몰이 소년 2명(11월 5일 공주에서 한 명이 추가되어 3명이 된다) 하인 1명 총계: 18명의 인원에 2필의 말, 3대의 가마 5 상자의 트렁크, 3개의 손가방, 사진기, 삼각대, 총기 상자, 돈 바구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십팔사략(十八史略, 원나라 증선지-曾先之가 펴낸 중국의 역사서)》에는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이야기, 곧 ‘관포지교(管鮑之交)’가 나옵니다. 관중과 포숙아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장사를 했습니다. 관중은 항상 이윤을 더 많이 가져갔고, 장사에도 종종 실패했습니다. 남들이 관중을 탐욕스럽거나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 때, 포숙아는 결코 그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관중이 이윤을 많이 가져가는 것은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이고, 장사에 실패하는 것은 때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의 단점이나 실수를 볼 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보고 쉽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포숙아는 그 행동 뒤에 숨겨진 상황과 본질적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관계는 비난과 단죄가 아닌, 이해와 통찰 위에서 꽃피울 수 있습니다. 포숙아의 이 무조건적인 믿음이 관중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세(勢)가 되어줍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주군을 섬기게 되면서 잠시 떨어져 지냅니다. 훗날 제나라의 군주가 된 제 환공(桓公)은 포숙아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포숙아는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