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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석문학100리길'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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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이웃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

효석문학 100리길 제4구간 답사기 (1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계속 산길을 가는데, 왼쪽 바위틈에 토종벌통 3개가 보인다. 벌통의 나무 색깔로 보아서 최근에 만들어놓은 것 같다. 농약으로 인해 요즘 벌들이 수난을 당하는데, 토종벌들은 무사한지 걱정이 된다. 지리산에서 벌을 키우는 친구에게 전화 걸어서 물어보니, 토종꿀은 1년에 단 한 번 늦가을 서리가 내린 뒤에 수확하기 때문에 더 귀한 꿀로 간주한다고 한다. 이에 견줘 양봉꿀은 한 해에 많게는 세 번까지 수확할 수 있다. 최근에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봄이 되면 꽃이 순차적으로 피지 않고 일제히 피기 때문에 꿀을 많이 수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산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는데, 아주 예쁘게 꽃밭을 가꾼 시골집이 나타난다. 정원에는 으아리, 장미, 황금낮달맞이꽃 등이 예쁘게 피어있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보니 외딴집에 사는 것보다는 이웃이 있는 마을에서 함께 사는 것이 더 좋다. 외딴집은 경치가 좋고 또 조용하므로 살기 좋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막상 시골에서 살아보면 이웃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좋다. 사람은 무리 지어 함께 사는 동물의 한 종(種)일 뿐이다. 산속 깊은 곳에서 혼자서 살 수는 있으나 이웃이 없으면 사는 재미는 줄어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효석문학 100리길 제4구간 답사기 (1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이 끝나면서 흙길이 나타난다. 작은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 숲속으로 나 있다. 나는 사전 답사 때에 모닝을 운전하여 전체 구간을 다녀왔기 때문에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우리가 이날 걸은 길은 평창으로 귀촌하여 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걷는 산길이다. 걸어가다가 나무가 나타나면 나무 이야기, 풀꽃이 나타나면 풀꽃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계속해서 숲속 길을 걸어가다가 보니 길가 손 닿는 곳에 빨간 산딸기가 많이 달려 있다. 크지는 않지만 따서 먹어보니 맛이 아주 좋았다. 우리들은 모두 산딸기를 따 먹느라고 걸음이 느려졌다. 동심으로 돌아간 우리들은 손이 빨갛게 물드는 줄도 모르고 산딸기를 따 먹었다. 좌우 양쪽으로 산딸기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문학길 제4구간은 산딸기 길이라고 이름 붙이면 좋겠다. 출발한 지 50분이 지나 10시 20분에 우리는 작은 쉼터에 도착하였다. 아마도 산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위한 쉼터인 것 같다. 간식거리로 누군가 참외를 가져왔고 누군가 떡을 가져왔다. 황병무 선생이 막걸리를 두 병이나 사 왔다. 나는 술에 약한 체질이어서 막걸리를 한 잔만

바다에서 파도가 치듯 출렁거는 호밀밭

효석문학 100리길 제3구간 답사기 (1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는 대화천 오른쪽 둑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국도 31번 도로가 지나가는 하안미교를 다리 아래로 건너자 오른 편에 비석 2개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하나는 하안미1리에서 세운 ‘88 서울올림픽 기념 비석이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1리 사람들이 왜 서울에서 열린 88올림픽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는지 잘 모르겠다. 당시는 권위주의적인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정부에서 비석을 만들라고 시켜서 만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다른 비석에는 ‘半程’(반정)이라고 세로로 비석 이름이 쓰여 있다.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반정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이 곳은 예부터 한양(서울)과 영동 지역을 이어주는 길목으로서 원주와 강릉의 중간지점 (각 200리)이라 하여 반정(半程)으로 불리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공문서의 전달이나 공무로 급히 가는 사람이 타고 갈 말을 매어두는 역(驛)과 이 길을 오가는 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주막집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 없다. 선인들의 애환이 서린 고장의 유래를 후세에 전하고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을 길이 간직하고자 이 돌을 세운다. 1993년

꿀벌의 멸종은 식량위기로 닥칠지도

효석문학 100리길 제3구간 답사기 (1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앞부분에 ‘대화장’이 나온다. 봉평 장에서 허생원은 물건이 안 팔려서 재미를 못 보았다. 그래서 일찍 거두고 밤새 걸어서 대화장으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허생원이 조선달에게 제안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 장에서 한 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 걸.” “달이 뜨렷다.” 윗글을 읽어보면 아마도 대화장은 봉평장보다 크고 장사가 잘되는 장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은 사실이다. 대화면은 평창군의 중간 지점에 있다. 조선 시대에 대화면은 강릉에서 한양 가는 간선 도로가 통과하기 때문에 봉평보다 컸다. 봉평은 간선도로에서 벗어난 외진 동네였다. 대화면은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상업이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영월, 평창, 정선의 곡물과 잡곡이 대화로 유통되었다. 대화의 특산물로서 산채와 고추가 유명했다. 특히 대화초는 껍질이 두꺼워서 가루가 많이 나오고 매운 것이 특징으로 서울 경동시장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였다.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통틀

효석문학 100리길, 혼자라면 걷겠는가?

효석문학 100리길 제3구간 답사기 (1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4년 5월 27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김혜정, 윤석윤, 이상훈, 전선숙, 최동철 (6명) 답사기 쓴 날짜: 2024년 6월 3일 효석문학100리길의 제3구간은 대화 땀띠공원~방림농공단지다. 평창군에서 만든 소책자에서는 이 길의 이름을 ‘강따라 방림 가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굽이치는 대화천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금당계곡이 합류된 평창강을 따라 고봉과 절벽이 조화된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는 구간으로 주변경관을 조망하며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특히, 제3구간은 제방길과 강변길로 이루어져 있어 자전거 투어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주변의 산과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자연의 정취와 멋진 풍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길이다. 제2-2구간의 도착지가 제3구간의 출발지가 된다. 땀띠공원은 지하수가 솟아 나오는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연못의 유래에 대해서 돌비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땀띠물 由來 이곳 땀띠물은 그 名稱이 언제부터 유래된 것인지 文獻에는 기록이 없으나 옛부터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찾아 몸을 씻으면 땀

<메밀꽃 필 무렵> 허생원, 양반 가문 출신인 듯

효석문학100리길 답사기 제2-2구간 (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침 10시 15분 무렵, 대화성당에 다니는 전아폴로(아폴로는 아폴로니아의 준말로서 세례명임) 자매가 쉬어가자고 하면서 준비한 간식을 꺼낸다. 자매님은 오이를 썰어서 플라스틱 통에 담아왔다. 우리는 싱싱한 오이를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먹는 사람이야 오이 한 조각이지만 준비한 사람의 정성이 고마웠다. 대화천 물가에는 노란 유채꽃과 애기똥풀, 그리고 하얀 당근꽃 등이 많이 피어 있었다. 때때로 엉겅퀴, 지칭개, 매발톱꽃도 보였다. 이제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 서리가 내리기까지 들판에는 온갖 꽃이 계속 피어날 것이다. 하천 따라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니 왼쪽에 고대동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나온다. 오른쪽 산길로 올라가면 법장사라는 절이 나온다. 절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면 거문산에 오를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친구들과 이 길을 따라 거문산과 금당산을 등산한 적이 있다. 이틀 후인 5월 15일(음력으로 4월 8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다리에서부터 연등이 걸려있다. 다리 앞쪽에 넓은 공간이 있고 잘 지어진 정자가 있다. 정자의 현판에는 ‘허생원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다. 허생원은 소설 <메밀꽃 필

젊은이들의 소확행 중요시하는 현상 바람직

효석문학100리길 답사기 제2-2구간 (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산에 있는 활엽수들은 이제 거의 다 새잎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싱싱한 연두색 기운이 새잎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사람으로 견주면 십 오륙 살의 소년 같다고 할까?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조그만 다리, 구룡교를 건너간 일행이 가지 않고 서 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 다리를 지나서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이정표가 없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사전 답사 차 이 길을 갔기 때문에 알고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을 지나는 길이고, 왼쪽 길은 하천 둑길이다. 두 길은 조금 지나 다시 만나므로 어느 길로 가든지 길을 잃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처음 걷는 답사객은 불안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평창군 담당자에게 이곳에 표지판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이효석은 어느 쪽 길을 걸었을까? 이효석은 마을로 난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걷는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콘크리트 둑길은 최근에 하천정비공사를 하면서 만들었을 것이다. 옛날 길은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다. 곡선은 자연을 따라 만들어진다. 옛날의 마을길은 모두 구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