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한 명의 궁녀와 김옥균이 비밀리에 밀통하기 시작한 것은 1874년 김옥균의 나이 23살 때였다. 궁녀의 나이는 훨씬 많았으니 31살. 그 때부터 궁녀는 김옥균에게 구중심처 궁중의 동정을 전해 준다.
김옥균은 자신의 일기(1884년 12월 1일 자 《갑신일록(甲申日錄)》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궁녀 모씨는 나이는 42살이고, 신체가 건대하며 남자 이상의 힘을 가져 보통 남자 5, 6인을 당할 수 있다. 평상시에 고대수(顧大嫂)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곤전(중전)의 근시(近侍, 웃어른을 가까이 모심)로 뽑혀 있는 분인데, 벌써 10년 전부터 우리 당에 밀사(密事)를 통고해 주는 사람이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고대수로 통하는 이 궁녀가 기골이 크고 힘이 장사였으며 민비의 측근에서 시중을 들었다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김옥균을 위해 간첩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기에서 김옥균이 ‘우리 당’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개화당’ 또는 ‘독립당’을 말한다. ‘당(黨)’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말하는 정당과는 거리가 멀고 일종의 비밀 동아리 같은 것이었을 터다. 오늘날의 언어 감각으로는 ‘파(派)’라 하는 것이 보다 맞을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무슨 무슨 당이라들 지칭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이 개화당/독립당 혹은 개화파가 바로 갑신혁명의 주역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 말기의 개혁개방, 자주독립 운동의 원천이자 큰 흐름을 이룬다.
‘고대수’는 중국의 수호지에 등장하는 여걸의 별호인데 조선 궁녀 고대수의 본명은 이우석이다. 여기에서는 그냥 고대수라 부르겠다. 궁녀 고대수와 김옥균이 위험천만한 비밀 통신을 하게 된 자초지종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우리는 막연히 이렇게 생각한다. 곧, 김옥균이 궁정에 밀정 궁녀를 심어 놓았는데 그녀가 고대수라고. 그 반대일 가능성은 없을까? 다시 말해, 더욱 일찍 깬 고대수가 주도적으로 김옥균에게 접근했고 김옥균을 통해 뜻을 이루려 했을 가능성 말이다.
봉건 왕조 시대의 역사 기록은 무수리 궁녀와 같은 하층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진실의 민낯을 알 수 없다. 죽은 사람만이 진실을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말이 없다. 아무튼 두 사람의 목적은 하나였을 게다. 썩은 양반들의 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고대수는 1844년 갑신정변에 행동요원으로 활약했던 유일한 여인이다. 첫째 날 통명전(창경궁에 있는 침전) 앞에서 폭약을 터뜨려 변란이 일어난 것처럼 꾸몄던 장본인이다. 물론 사전에 김옥균과 밀담을 통해 폭약을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했던 대로였다. 엄청난 폭발음에 놀란 임금과 왕후는 경우궁(조선 제23대 임금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의 사당)으로 황급히 피난 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성공했다.
혁명은 성공의 절정에서 허망하게 깨지고 만다. 궁녀 고대수에 대한 민왕후의 배신감과 증오가 서릿발친다. 잔인한 앙갚음이 펼져진다. 고대수는 체포된 다음 날인 12월 9일, 오랏줄에 묶인 채 끌려 나간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맨발에 흰 저고리, 속치마만 입은 채 고대수가 광화문의 육조거리를 지난다. 구경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침을 뱉고 돌을 단지기 시작한다. 궁녀의 몸이 금방 피로 물든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지도 않고 돌을 피하려 몸을 구부리지도 않는다. 오직 시린 하늘만을 올려다본 채 날아오는 돌을 다 맞는다.

사형터는 헤정교 앞 공터이다, 혜정교(惠政橋)는 북악산(北岳山) 아래 삼청동(三淸洞)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경복궁 오른쪽 궁장(宮墻) 외부를 따라 동십자각(東十字閣)을 지나 종로까지 도달한 부근에 세워진 다리이다. 경복궁을 나와 광화문 앞의 육조거리를 지나 동대문 방향으로 지나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였다. 따라서 조선 건국 초에 도성의 중심 도로와 교량을 기획할 때부터 세워졌다(《태종실록》 태종 10년 2월 7일). 도심에 있던 다리답게 혜정교 인근은 종로 번화가인 동서대로였다. 조선 건국 초에 혜정교에서 창덕궁 동구 앞까지는 시전의 행랑이 800여 칸 있었다(《태종실록》 태종 12년 2월 10일). 오늘날 광화문 우체국 동쪽에 있던 청계천 다리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수는 혜정교 못 미쳐서 마침내 고개를 떨군다. 숨을 거둔 것이다. 쉬지 않고 날아오는 돌에 살이 흩어지고 뼈가 부러진 채. 이미 숨을 거둔 그녀의 몸은 처형장까지 끌려가 죽음의 의식을 치른다. 까악까악 까마귀 울음이 빈 하늘을 울린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면 나라가 사라질 것이다.
조선 첫 여성 혁명가의 최후는 그토록 비참했다. 그러나 그녀의 소망은 살아남아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