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본다.키가 너무 크다고 일곱 살에 일찍 입학했는데도 나는 항상 맨 뒤에 앉아야 했었다. 글을 몰라 방과 후에 나머지 공부를 자주하였었고 선생님이 무엇을 얘기하시는지 몰라초점 없는 눈으로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보니 자신감도 없어져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였고, 그저 조용히 앉아 칠판만 잘 쳐다보면 혼나지는 않는다는 철칙을 잘 알고 지켰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었던 것들은 그림 그리기, 달리기 그리고 교실청소나 운동장에 쓰레기 줍는 것 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를 착한 어린이로 보시고 선행상도 몇 번 주셨다. 5학년이 되니 그제야 서서히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놀이터가 있었던 동네성당에서는 달랐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때부터 미사 중에 제대를 오르내리며 부산하였다고 하며 또 덩치가 커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힐까 우려했던지 성당 유치원 입학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주일학교 여선생님을 울릴 정도로 말을 안 듣던 말썽꾸러기였다. 아마도 요즘 같으면 ADHD(집중력장애) 문제아가 틀림없었겠다. 중학교에서 제법 공부의 맛을 알게 되었는데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나에게는 이태리 뇌성마비 친구 마누엘 가족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혼자서는 먹거나 몸을 돌아 누울 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마누엘을 위해 우리 부부는 매년 연말이 되면 기꺼이 노래를 불렀다. 일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릴레이로돌보아주었던 자원봉자사자들과이웃들이 모인 자리에 가서 부른 우리 부부의 노래는 마누엘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인 동시에 봉사자들을 위한 격려와 자축의 이벤트이기도 하였다. 30대 초반까지 영유아가 먹는 이유식만으로 힘겹게 살다가 고인이 된 마누엘의 장례식에서 친지와 이웃들은 이렇게 회고했었다. 마누엘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희생과 봉사 그리고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 오히려 고마운 존재였다고 ... 우리는 결국 남을 힐링해 주면서 자신도 힐링을 받게 된다는 것을 함께 체험한 것이다. 그리고 부부가 자선공연을 하면서 도움을 주러 갔다가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운 감동을 받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서 차츰 이분법으로 강자와 약자, 정상과 비정상을 가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약한 것 같지만 강한 사람들, 강한 사람들 같지만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요즘은 힐링(Healing)이 대세인가 보다. 치유라는 뜻의 외래어인데 아마도 구체적인 시술을 하는 치료(Treatment)와는 구분을 두고 있는 용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치유음악회를 하자는 청이 제법 많다. 아마도 우리 부부가 부르는 노래 가사들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히 치유적인 요소가 있다는 걸 느끼는가 보다.그런데 힐링(Healing)이 유행하다 보니 아무 상관없는 듯한 내용에 치유 또는 힐링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또 상업적 마케팅을 위한 용어로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 걸 보면 이쯤에서 영어로 힐링이 뭘까 한번 의미 있게 생각해 본다. 힐링이라는 용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수 년 전 내가 공연기획 시안에 영어로 Hilling이라고 썼더니 아내가 이를 검토하면서 철자가 틀렸으니 Healing으로 고치라는 것이었다. 나의 영어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나는 힐링이란 것이 언덕(Hill)처럼 내 주위를 북돋우어 바로 세워주고 기분을 업(Up)시켜주어 그러다 보면 병도 자연스레 나아지겠거니 하는 개념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그러다가 정말 궁금하여 영어사전을 펼쳐보았더니 Healing은 치유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성당이 많은 로마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다가 생긴 재미있는 모짜렐라 성당 얘기를 해본다. 로마의 시가지를 오가며 수많은 성당들을 지나던 중 신호대기를 하고 있을 때 한 아가씨가 가이드에게 창 밖에 보이는 성당이 무슨 성당이냐고 물었다. 초짜 가이드는 공부를 많이 하였지만 하도 성당이 많아서 다 외울 수도 없고 생각이 나지도 안았다. 그러나 대답을 못하면 체면이 깍일까봐 그냥 즉흥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성당이름을 지어내었다. 아 그 성당은 모짜렐라 성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가이드의 대답을 듯고 다시 묻는 것이었다.가이드 아저씨 모짜렐라는 우리나라 두부처럼 생긴 먹는 거 아니예요? 초짜 가이드는 낭패를 맞았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다시 대답을 만들어 내었다. 네 맞습니다. 이 성당은 우리나라 두부장수처럼 모짜렐라를 만드는 업자들이 장사 잘되게 해달라고 돈을 모아 건축한 성당이라서 일명 모짜렐라 성당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 진땀은 났지만 그럴듯한 임기응변이었다. 서울과 로마 시가지 풍경중에 공통적인 것이 한가지 있다면 교회가 많다는 것이 아닐까.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야경 중에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수많은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음악을 배우러 이태리에 가서 나는 본받을 만한 이태리 사람들의 습관 하나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옆집 할아버지와 마을 어귀 공동묘지 앞을 지나게 되었다. 향나무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동묘지를 향하여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하듯이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묘지에 할아버지의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이 묻혀 있겠거니 생각하며 나도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쳤다. 이어서 고등학교 다니는 이웃집 여학생도 그 곳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았다.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묘지를 지날 때 살아생전을 회상하며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좋은 성찰의 시간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여겨졌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이태리에 있어 보니 이태리 사람들은 길을 가다 공동묘지가 보이거나 시내나 고속도로에서 장례차량을 보게 되면 대다수가 성호를 긋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타인의 죽음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그들이 왠지 모르게 좋아졌었던 기억이 난다. 정리해 보면 이태리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톨릭 신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리스트] 성악가의 비만으로 인하여 오페라의 초연이 실패로 끝난 경우도 있었으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명작 La Traviata가 바로 그 희생작이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얼마 전 큰 화재로 불타버린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에서 1853년 초연되었는데 캐스팅을 잘못하여 실패작이 되고 만다. 그 이유는 여주인공 역을 맡은 소프라노가 너무 비만이어서 폐병으로 고생하다 가련하게 죽어가는 비올렛따 역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 역을 맡은 테너는 감기에 걸려 충분한 기량을 선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일 년 뒤 재연되었을 때는 큰 성공을 거두어 현재까지 가장 많이 상연되는 감동적인 오페라가 되었다.몇년전에 세상을 떠난 파바로티의 경우도 젊어서는 훤칠한 미남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몸이 거대해지고 그의 체중은 해외토픽으로 관심사가 되었고 파바로티가 주인공으로 나오면 뚱보 시인, 뚱보 왕자, 뚱보장군이 되어 자칫하면 코메디를 보는 듯하여 연출가들의 고충은 그야말로 컸고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파바로티가 세상에서 성악가로 명성을 얻은 후에 그의 체중이 늘어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98년 이태리. 나와 아내의 연애시절에 우리가 주로 다녔던 로마-띠볼리 주변 국도는 항상 잘 뚫려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길에는 교통 체증이 거의 없어 좋았다. 어느 날 보기 드문 쌍무지개가 떠오르는 것을 함께 보며 우리 두 사람의 희망도 함께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함께 가는 길이 탄탄대로일 것 같다는 설렘에 우리는 너무도 행복했었다. 그러나 달콤한 순간도 잠시.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나고 우리는 옆으로 차를 멈추고 한참을 피해야만 했다. 사실은 창피하게도 우리는 거의 매일 교통 정체의 주범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타던 자동차는 18년이나 된 피아트(600cc) 자동차였는데 공랭식이었고 속도를 조금만 올려도 경운기 소리가 나고 덜덜거려서 항상 평균 50~60킬로로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앞에서 달리던 성능 좋은 차들이 빠르게 사라져버리니 우리는 길이 항상 뻥 뚫려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꼴찌였지만 항상 선두에서 뒷 차들을 이끌고 다녔다. 재미있다. 제일 느린 차가 선두라니.... 더 아슬아슬했던 사건은 어느 날 성악레슨을 가는데 차가 너무 막혀서 갓길주행로 부득이 하게 되었다. 평소에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름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지름길로 가면 빨리 갈 수 있기에 대부분 지름길을 좋아한다. 현대의 경쟁사회에서 지름길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그래서 그런지 요즘 학생들과 부모들은 바쁜 세상이니 빨리빨리 배워서 바로 유학 가서, 빨리빨리 전문의사, 전문변호사, 박사가 되고 ..일정기간을 거치면 빨리빨리 개업하여 돈 벌어서점점더 크게 .. 아마도 빨리빨리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데나는학생을가르치면서 지름길이 보이는데 그 길을 빨리빨리 알려주어야 할지 아니면 더 있다가 알려주어야 교육자로서 옳은 것인지 갈등하곤 한다. 왜냐하면 지름길만이 최상의 길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지름길에 대한 고민은 아이 이름을 짓는데도 은근한영향을 주었다. 이태리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의 이름을 수로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받침이 없는 이름이어야 이태리학교 선생님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고 선생님도 아이의 이름이 쉽게 각인되어야 부담감 없이 빨리빨리 익숙해져서 우리 아이의 이름을 더 많이 불러줄 것이라는 이태리교사친구의 충고를 따른 결과였다. 아이의 돌림자는 섭燮자였고 이태리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한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에게 지난 해 작곡하여 제작한 노래시 음반 한 장을 전해 주러 갔다가 오히려 최근 출판했다는 책을 다섯 권이나 선물 받았다.고마운 마음으로 점심을 대접하며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받은 책 3권이 이 윤옥이라는 시인이 쓴≪서간도에 들꽃 피다≫라는 아주 특별한 시집임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시집을 읽어 보니 거기에는 많은 조선의 구국여성 60여분이 시를 통하여 소개되어 있었다. 사실 내가 아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는 유관순 누나 밖에 없는데 한 장 한 장 넘겨 보니 가려져 있었던 많은 한국의 잔다르크들의 이야기가 나를 숙연하게 하였고, 시와 함께 곁들여 있는 그림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한국화가 이무성 선생님의 민속화여서 더욱 눈이 갔다. ... 일왕의 도쿄 황거를 폭격코자 장개석 휘하 혁명군이 되어 11년의 세월을 싸웠다는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 권기옥 ... 학교에서 중국 아이들이 나라도 없는 망국노라는 놀림을 해대는 것을 참지 못해 그 길로 책상을 뒤 엎고 광복군에 입대하였다는 16살 소녀 오희영 ... 허드렛일 하면서 밥을 얻어다 옥살이하는 아들 뒷바라지를 했고, 상해임시정부 시절 시장 골목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남다르게 늦은 나이에 음대에 학사편입을 하여 성악을 배우면서 나는 어떤 소리를 타고났으며,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하는가? 에 대한 참으로 많은 고민과 뒤늦은 방황을 하였었다. 한 때 이런 과정들을 잘 정리하여 책도 내려고 자료 준비를 꽤 많이 해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재미없는 분야의 이론을 누가 사서 읽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악도 가운데 나만큼 고민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이론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에 그냥 덮어두고 말았다. 하지만 대학강사로 노래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정리해 둔 것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예외 없이 제자들에게 처음 한 것은 동물왕국의 미운 오리새끼 레슨이었다. 만약 내가 동물이라면 어떤 소리를 타고났는가에 대한 인식을 학생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다행히도 자신의 태생을 잘 찾고 인정한 학생들은 남아서 오래 배웠지만, 저 높이 더 멀리 나는 기러기가 되고 싶었던 타조학생들은 이 선생이 날개이식 수술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금방 떠나곤 하였다. ▲ 팝페라부부 듀오아임 가족공연 내가 생각하기에 성악레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