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향가 중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고하는 <와상 대목>을 소개하였고, 이 도령이 춘향에게 들려주는 ‘소통국 모자의 이별’, ‘오나라와 월나라 여인들의 부부이별’, ‘초패왕과 우 부인의 이별’, ‘왕 소군의 한궁 이별’ 등 이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연인들에게 있어 이별이란 상처를 남기게 되는 슬픔이고 아픔이란 점, 춘향가는 남녀가 만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리워하다가 다시 만난다는 극적인 구조를 지닌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헤어짐의 정표로 거울과 옥지환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와 이 도령과 헤어져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조로 표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도령은 떠나기 앞서 석경(거울)을 내어주며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당부하였고, 춘향 역시 끼고 있던 옥지환을 빼 주며 “여자의 명심불망 지환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이별의 정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민요 <이별가>에 이어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이 도령과 춘향의 이별 대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헤어지기 전날 밤, 춘향은 울부짖으며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다시 올 것인가? 바다가 육지가 되거든 올 것인가?, 말 머리에 뿔나거든 올 것인가? 까마귀 머리 희어지면 오겠는가?” 등 불가능한 조건들을 열거하며 다짐을 받으려 한다는 이야기, 이에 이 도령은 오나라 정부(征婦)이야기를 끌어 들이며 그녀들이 싸움터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듯, 자기를 기다려 달라는 주문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목이 오리정이 아닌, 춘향의 집안에서 이별을 고하는 느린 진양 장단의 <와상 대목>이다. 이 부분의 사설을 읽어보도록 한다. “와상(臥床) 우에 자리를 펴고 술상 차려 내여 놓으며 이왕의 가실테면 술이나 한잔 잡수시오.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권군갱진일배주 허니, 명조상이로막막을 여관한등 잠 못 들 제, 권할 사람 뉘 있으며 위로 헐 이가 누 있으리, 이 술 한잔을 잡수시고 <중략> 편안히 행차를 허오” 위 글에서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盡一杯酒)는 상대에게 다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울, 경기지방의 민요 <이별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자유스런 장단위에 간결한 가락, 시김새를 넣어 느리게 부르고 있다는 점, 노랫말은 “이별이야 이별이야, 임과 날과 이별이야”처럼 짧으며 앞귀(句), 뒷귀 각 8 글자를 기본으로 넘나든다는 점, 예전에 바다 건너 중국을 가는 사람들을 전송할 때에 마치 이별가조와 같은 배떠나기를 불렀다는 점, “닻 들자, 배 떠나니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만경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소”라는 노랫말에서 ‘달 뜨자 배 떠나니’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전혀 의미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속풀이에서는 이별가, 곧 정든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서 부르는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위에서는 경기민요의 이별가와 배떠나기에 관한 노래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이별이라고 한다면 심청가에서 아버지와 심청의 이별도 눈물겹지만, 남녀가 사랑을 나누다가 이별을 하게 되는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 대목에서는 어떻게 그 감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인가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상황은 이 도령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춘향 집을 찾아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2좌창 중의 한 곡인 출인가(出引歌)를 소개하였다. ‘출인’이란 가는 사람을 못 가게 잡아당긴다는, 이별의 뜻을 담고 있는 노래라는 점, 출인가 속에 <향단>이나 <오리정> 등이 나오고 있어 춘향가의 한 대목을 경기소리제로 부르는 노래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일반적인 남녀의 사랑 노래 속에 춘향의 이야기를 끌어 들였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이 노래는 본래 선유가(船遊歌)의 별조로 취급되던 노래였으나 세간에 퍼지면서 출인가라는 고유의 곡명을 갖게 된 노래라는 점, 그래서 곡조의 흐름이나, 구성음, 장단 등이 선유가와 유사하다는 점, 이별의 감정을 담은 노래들은 본디 슬픔을 전제로 하나, 서울 경기의 소리제는 그 감정이 비통에 이르지 않아 비교적 단정한 음악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라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서울 지방에서 불리는 이별을 주제로 하는 노래, <이별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경기민요 이별가는 장단 없이 느리게 부르며 간결한 가락에 창자의 기교나 시김새를 넣어 애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노랫말은 10여종이 넘고 있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노랫말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소리의 전승 체계와 관련된 이야기로 3인의 예능보유자 인정 제도를 1인으로 통합 운영하면서 위축되고 있는 전승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정당시 3인의 보유자들은 각기 다른 스승의 특징적 소리제를 형성해 왔기에 인정이 된 것이라는 점, 이를 1인으로 통합하는 체제로 전환한 뒤 경기민요 전승자들의 포기가 늘고 있다는 점, 따라서 문화재청 담당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해 주기 바라고, 그래서 경기소리가 다시 한 번 중흥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고민해 주기 바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12좌창 가운데 한 곡인 ‘출인가(出引歌)’라는 노래를 소개해 보도록 한다. 이 노래는 오랜 기간 묵계월 명창이 전승해 준 악곡으로 유명하다. 출(出)은 나간다는 뜻, 인(引)은 끌다, 또는 잡아당긴다는 뜻이므로 <나가서 잡아당기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출인가라는 노래 제목에서 가는 사람을 못 가게 잡아당긴다는, 곧 이별의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긴잡가, 대부분의 가락이 그런 것처럼 5음, 곧 ‘솔, 라, 도, 레, 미’의 5음 구성이며 잔가락이나 경과음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금의 12가사처럼 서울 경기지방의 긴소리 12곡을 12잡가, 또는 12좌창이라고 하는데, 잡가(雜歌)라는 명칭처럼 기악의 산조(散調)음악을 또한 <헛튼가락>, <허드렛 가락>,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불러 온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경기민요의 대표적인 긴소리를 잡가라고 부른 배경은 다양한 종류의 소리들이 한 권의 책 속에 잡거(雜居)하고 있기에 붙게 된 이름이란 점을 말했다. 긴소리 12곡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예능보유자 3인에게 각각 4곡씩 전승시키게 하였고, 이를 40여년 이상 시행해 오면서 수십, 수백의 이수자와 전수조교를 배출하여 경기소리 전승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는 점, 그런데 근년에 와서 묵계월이 타계하고, 이은주도 명예보유자로 물러나자, 1인의 보유자가 12곡을 모두 전승시키도록 제도를 바꾸어 시행하고 있는데, 그 결과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심각한 이야기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주에 이어 경기소리로 대표되는 긴잡가와 경기민요의 전승 체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앞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 묵계월 명창이 소리 잘하는 명창으로 이름이 나기도 했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명창이었다는 이야기, 그의 소리는 외양(外樣)이나, 즉흥적인 표현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편이었고, 공연활동, 방송, 음반, 교육을 통한 경기소리의 확산에 앞장서 왔다는 이야기, 그는 UCLA 한국음악부가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금을 쾌척하기도 했으며, 예능보유자 자리를 스스로 용퇴한 거인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묵 명창의 제자들이 준비한 첫 종목은 80여명이 제창한 <출인가>라는 좌창이었다. 출인가(出引歌)가 경기 12좌창 가운데 한 곡이기는 하나, 노랫말을 보면 ‘향단’이라든가, ‘오리정’과 같은 친숙한 말들이 나오고 있어서 판소리 춘향가의 한 부분을 경기소리제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제는 상식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다시 한 번 경기지방의 소리 종류를 정리한다면 부르는 속도에 따라서 느리게 부르는 긴소리가 있고, 빠르게 부르는 휘모리 소리가 있어서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느리게 부르는 소리를 긴잡가라 하고, 빠르게 부르는 소리는 휘모리잡가라고 구별해 부르고 있다. 서울 경기지방에서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일제시대, 경기소리의 대가였던 주수봉은 묵계월을 약 2년여 가르치면서 그녀의 재주가 범상치 않음을 발견하고 자신보다 더 유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최정식 명창에게 보냈다는 점, 최정식은 학강(鶴崗) 최경식의 수제자로 이름을 떨치던 명창이었으며, 학강은 당시 서울의 소리선생들이 배웠다고 하는 큰 명창이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최경식의 윗대가 장계춘, 그 윗대가 추, 조, 박으로 알려진 추교신, 조기준, 박춘경 등이니 묵계월의 소리는 경기소리의 정통파 계보라는 점, 묵계월은 당일 배운 소리를 그날로 완전히 암기하고 자신있게 부를 때까지 밖에 나오지도 않은 노력파라는 점, 그의 소리는 강약과 명암의 대비로 음빛깔이 다르고, 음폭이 크며 역동적인 고음(高音)과 저음의 안정감이 일품이라는 점, 송서(誦書), 삼설기(三說記)를 배워 송서의 단절 위기를 막았다는 점 따위를 이야기 하였다. 고 묵계월 명창은 소리 잘하는 명창으로 이름이 났거니와 또 다른 면으로는 인간적으로도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따뜻하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명창이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간혹, 그의 제자들이 스스럼없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묵계월 명창의 타계 5주기 추모음악회가 3월 28일 저녁, 국립국악원 예악당 에서 열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러한 음악회는 스승에 대한 예술적, 또는 인간적 존경심이 두터운 제자들의 정성이 모여서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묵계월의 본명은 이경옥이고,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이 가난했던 탓에 묵 씨네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그는 권번의 소리선생, 주수봉(朱壽奉)에게 배우며 본격적으로 소릿길에 들어섰다는 이야기, 주수봉은 초창기 3대 명창의 한사람인 박춘경에게 배워 경서도 소리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후에는 협률사(協律社)나 원각사(圓覺社) 등에서도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30년대 전후, 권번을 중심으로 기녀들에게 소리를 가르친 경기지방의 잡가 명인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묵계월을 가르친 주수봉이라든가, 최정식, 원경태, 원범산 등이 있고, 좌창은 물론이고, 왕십리의 선소리꾼으로 이름난 이명길을 비롯하여, 이명산, 김태운, 탁복만, 탁연근, 엄태영, 김태봉, 유태환, 유개동, 김운태, 이광식 등이 있으며, 송서로 유명한 이문원, 그밖에도 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여러 회에 걸쳐 송서와 시창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해 왔다. 송서는 책을 읽되, 음악적으로 고저를 넣어 읽는 형태이고, 시창은 한문으로 지은 시(詩)를 노래하는 지식인 계층의 소리라는 점, 현재 서울시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앞으로는 전국 시(市), 도(道)의 무형문화재로 확대되어야 하고, 나아가 국가문화재, 세계무형유산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 특히 서울시는 송서의 책읽기 운동이나 시창의 시 읊기 운동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각 문화원 교양강좌의 개설이나, 경연대회의 주최, 구청별 시범학교의 선정 및 운영방안의 필요성을 제언하였다. 또한 책읽기나 노래 부르는 방법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심성이 황폐화 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어린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도 책읽기 지도가 중요하다는 점, 책을 읽되, 송서나 율창 형태의 독서생활화가 필요한 현실이란 점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고 묵계월 명창의 타계 5주기 추모음악회 이야기로 이어간다. 경기소리 예능보유자 임정란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며 정성껏 준비한 음악회가 지난 3월 28일 저녁,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예맥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