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보며 비손 하는 날, 정월 대보름 정월대보름의 유래와 세시풍속 ▲ 정월대보름 달맞이를 하는데 맨먼저 본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 이무성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다. 구름 타고 천천히 운명을 항해하는 저 보름달을 본다. 뒷동산에 올라 너그럽고 따뜻한 달빛에 온몸을 맡긴 채 지난 어린 추억을 더듬는다. 바로 이틀 뒤에 다가온 음력 정월 대보름(1월 15일)의 풍경이다. 정월 대보름의 달은 한해 가운데 달의 크기가 가장 크다고 한다. 가장 작은 때에 비해 무려 14%나 커보인다는데 그것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이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는 농사를 기본으로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였다. 또한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해를 '양(陽)'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하고, 달은 '음(陰)'이라 하여 여성으로 본다.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땅으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 출산하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우리
설날은 낲설고, 삼가는 날 겨레의 큰 명절, 말밑과 세시풍속 ▲ 오늘도 오늘이소서, 내일도 오늘이소서! ⓒ 이무성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 주셨다.밤새도록 자지 않고눈 오는 소리를 흰떡으로 빚으시는어머니 곁에서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중략)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어머니는 햇살로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김종해 시인은 설날을 이렇게 노래한다. 어렸을 적 나는 섣달 그믐날 자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지키려다 잠들은 뒤 아침에 일어나서 하얗게된 눈썹에 놀랐었다. 설날 아침 설빔을 입고 세뱃돈을 받은 뒤 온통 내 세상 같았던 옛일이 그리워진다. 이 설날은 한가위와 더불어 우리 겨레의 큰 명절이며, 민족의 대이동이 있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 우리의 명절, 설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설"의 말밑과 유래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설은 묵은해를 정리하여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출발하는 첫날이다. 이 새해 첫날 “설”의 말밑(어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 몇 가지 설이 있다.먼저 "섧다"라는 뜻으로 본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이 '달도일(
조선엔 위대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서평] 고진숙의
오늘은 유두날입니다 명절의 유래와 세시풍속... 불편했던 이웃과 같이 웃는 날 ▲ 유두와 여름에 즐겼던 발담그기, 조선 중기의 화가 이경윤의 '고사 탁족도(濯足圖)'. ⓒ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겨레가 즐겼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를 말한다. 이밖에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 백중, 동지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은 유두(流頭 : 음력 6월 15일)와 백중(百中 : 음력 7월 15일)이 무엇인지도, 어느 날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오늘(10일) 음력 6월 15일은 '유두날'이지만 유두국수를 먹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유두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세시풍속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풍속이며, 동방의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으로 보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다. 유두를 신라 때 이두로 '소두'(머리 빗다), '수두'라고도 썼다.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 '물맞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요즘도 신라의 옛 땅인 경
오늘은 복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이다. 올해는 강원도를 비롯하여 온 나라에 큰 비가 내려 복날의 의미가 약해졌지만, 삼복의 유래와 세시풍속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데 하지 후 셋째 경일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 또는 삼복이라 한다.우리 조상은 해(년), 달(월), 날(일)에 모두 지지(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천간(자축인묘진사오미)을 조합하여 갑자·을축·병인 등으로 이름을 지었는데'경일'이란 지지의 '경' 자가 들어간 날을 가리킨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리는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며, 이를 월복이라고 한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다.'오행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의 기운, 가을철은 '금'의 기운이다. 그런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무학대사를 이긴 정도전의 궁궐 짓기는 잘못 국토사랑방, 2월 창경궁 답사 동행기 ▲ 창덕궁의 중심건물, 인정전 ⓒ 김영조 지난 1월의 국토사랑방 답사는 순천 선암사, 금둔사, 순천만에서 여수의 향일암으로 이어졌었다. 2월엔 가까이 있는 조선의 궁궐 창덕궁을 찾아보기로 했다. 토요일 늦은 2시 서둘러 가니 돈화문 옆 휴게실에 모여들 있다. 오늘은 꽃샘바람도 없이 온화한 날씨다.현존하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 들어갔다. 안내그림판 앞에서 문화해설사가 기본적인 설명을 들려준다. 금천을 가로질러 놓인 금천교를 건너간다. 아직 나무에 움이 트고, 꽃이 피기엔 이른 철이어서 조금은 쓸쓸한 모습이다.
컴퓨터가 없던 옛날,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서평] 세시풍속 의미 되짚어 보는 ▲ 책 표지 ⓒ 디딤돌 옛날엔 컴퓨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 아이들은 무척 심심하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들은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어린이책 '다달이 철철이 우리 조상들의 한해살이'란 책이 도서출판 디딤돌에서 나왔다. 청동말굽(김경화)이 쓰고, 김동원이 그림을 그렸다.사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옛사람들의 생활방식, 세시풍속을 다 잊었다. 내가 몇 년 전 '기독교라디오방송'에 출연하여 설날의 세시풍속 5~6가지를 얘기하는데 프로듀서도, 아나운서도, 작가도 모두가 눈썹 하얘지는 것 말고는 모르겠다고 했다. 영어 배우기엔 혈안이 되어도 우리의 세시풍속은 소중한 줄은 모르니 당연한 일일 터이다.이 책은 명절과 24절기를 줄기로 이에 따르는 세시풍속과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그저 단순히 이러저러한 풍속이 있었다가 아닌 풍속 하나하나에 담긴 우리 조상의 철학은 무엇인지를 짚어내면서 아이들의 이해를 돋운다. 또 친절하게 그림을 덧붙여 흥미를 더하고 있음이다.먼저, 12달을 사철로 나누고, 그 철의 들머리엔 계절을 나타내는 그림과 함께
풍수지리는 마음으로 읽어내는 과학이다 지금까지의 풍수지리 비판한 ▲ (덕원, 정신세계사) 책 표지. ⓒ2005 정신세계사 주변에서 보면 돈이 좀 있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돌아가신 부모의 묘를 쓸 때 풍수지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곤 거창한 묘소로 집안의 위세를 자랑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명당자리를 위해 남의 땅을 가로채기했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그들이 위세를 떨쳐가며, 묘소를 단장하는 것이 어디 부모를 위함이던가? 자신과 후손의 영화를 위함임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더구나 문제는 그렇게 쓰는 묘들이 이젠 나라 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버려 심각한 지경에까지 와 버렸다. 문제는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묘를 쓰고, 건물을 짓는 데 바탕으로 삼았던 풍수지리가 거의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바로 (덕원, 정신세계사)란 책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다. 그동안 나왔던 대부분의 풍수지리 책들은 형기론이나 이기론에 의한 바깥 세계만 보았기 때문에 진짜 명당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그리고 글쓴이는 풍수지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현대과학으로는 아직 기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는 실제로 존재한다. 우주 만물은 각기 특유
아차산에서 고구려 가마터 추정 유물 발견 아차산 홍련봉 2보루 발굴 현장 설명회 ▲ 현장설명하고 있는 최종택 교수 지난 8월 15일은 우리 겨레가 광복을 맞은 지 60돌이 되는 날이었다. 아직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이 여전한 상황에서 고구려 유물의 발굴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의 지원 아래 아차산과 그 부근의 발굴이 한창 진행돼 왔다.그 과정의 하나로 16일 오전 11시에는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중인 '아차산 홍련봉 2보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가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산 10-1번지 발굴 장소에서 열렸다.홍련봉 2보루는 1942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터로 되어 있으며, 1994년 구리문화원에서 실시한 아차산 일원의 지표조사를 통하여 고구려 토기가 수습되어 고구려 보루로 보고되었다. ▲ 토기 가마터로 짐작되는 유적 이후 아차산 4보루와 시루봉보루, 홍련봉 1보루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어왔다. 특히 아차산 일원 보루들 중에서 유일하게 기와와 연화문와당이 출토되었던 홍련봉 1보루와 인접한 홍련봉 2보루는 구조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규모도 커서 서로 다른 기
옹기에서 노다지를 캐는 음식점들 음식점의 생명은 맛이 가장 먼저이다. 그래서 모든 음식점 주인장들은 맛을 위해 별별 방법을 동원하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뭔가 차별화 된 음식점에는 손님들이 줄을 잇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한국방송(KBS) 제2 텔레비전의 ‘브이제이(VJ)특공대’에서는 옹기를 이용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음식점들이 몇 군데 소개되었다. 옹기수제비, 항아리삼겹살, 옹기에서 숙성시키는 막걸리, 항아리치킨,옹기 황토오리가마구이 등이 그것이다. 그 음식점들은 혹시 옹기에서 노다지를 캐고 있을까? 음식점 주인뿐 아니라 손님들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옹기수제비는 점심만 200그릇을 판다고 하며, 400도 고온의 옹기 안에서 삼겹살과 오리를 구워내고, 옹기에 황토물을 가라앉힌 지장수물도 손님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숨쉬는 옹기가 맛을 살린다고 이구동성 말하고 있다. 정말 옹기가 그렇게 좋은 것인가?옹기(甕器)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였으며, ‘사람의 손길조차 닿지 않았던 것 같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성이 있다’라는 덧붙임 설명이 있다. 옹기는 깨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