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그를 기다리며 김상아 내가 기다리는 그는 벙거지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일 것이다. 모직코트에 겨자 색 조끼를 받쳐 입었으며 낡은 청바지에 갈색 부츠를 신었을 것이다 산골 출신답게 되바라지지 않았으며 책을 사랑하여 그윽한 눈빛을 지녔을 것이다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바람도 잠시 멈추고 듣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때론 로드 맥퀸의 완성도 높은 음악을 심오한 표정으로 듣기도 하지만 김정호의 “님”을 들으면 눈시울을 적실만큼 아픈 사연도 있는 사람일 것이다 기다렸다오 우리 여기서는 처음이지만 깊은 인연이야 별 몇 개가 사라질 만큼 오랜 것이라오 어디서 왔느냐 어떻게 살았느냐 묻지 않겠지 개울가를 뒤 덮은 하얀 들찔레 모래톱의 벌거숭이 아이들 동그랗게 닳은 조약돌 뒤뜰의 감나무 단풍 눈 내린 달밤의 부엉이 소리 그리고 그리고 음악 그래, 이거면 됐지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딸의 바다 슬픈 사람에게는 피어나는 꽃도 슬픈 법 이제 저 바다를 어찌 보랴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냐, 이미 정신을 잃었을 거야 크레인이 건져 올린 깡통을 따자 꽃망울 다섯 송이가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추웠을까 경찰 위에 검사 검사 위에 기자라더니 어느새 몰려와 사진을 찍고 촬영을 해대느라 단내가 난다 "강릉 해안도로 승용차 바다에 추락 탑승자 10대 다섯 명 전원 사망" 곱기도 했다 아가야 엄마 왔다 엄마다 눈 좀 떠봐 흐느끼는 어미를 어린 딸은 고운 침묵으로 맞았다 눈은 또 돌고래 눈처럼 어찌나 맑던지 "자, 확인절차 끝났습니다. 이제 장례식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 놈은 무슨 빽으로 저리도 무심할까 이게 꿈같은 생시인가 생시 같은 꿈 인가 이 꿈이 깨기를 바래야하나 깨지 말기를 바래야하나 꺼이꺼이 우는 녀석 앙앙 우는 계집아이 컥컥 쉰 소리 홀짝 홀짝 코울음 학생 손님만 칠백 명도 넘게 왔대 어린 것이 꽤 잘 살았네 칠백 명이면 뭐 하고 칠천 이면 뭐 하나 잘 살았으면 어떻고 못 살았으면 어떠랴 다 소용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지푸라기 삼아 울음들과 함께 넣어 관 뚜껑을 닫았다 슬픈 사람에게는 빗소리가 오히려 다정한
[우리문화신문=고명주 작가] 하얗게 부서질지라도 파도였다고 바람에 실려 온 파도가 매섭다 멍든 가슴 때리고 또 때린다 때리고 부서지는 포말이 석양에 어린다. 바람에 밀려오는 것은 파도만이 아니다 파도처럼 밀려가는 인생도 들이친다 속절없이 부서지는 젊음도 떠나간다 포말로 남기고간 하얀 유서는 장엄하다 온몸 하얗게 부서질지라도 파도였다고 마지막 포말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더 큰 인생의 파도에 휩쓸렸을지라도 두 눈 감게 하고 저 곳에서 죽더라도 똑바로 서서 거친 파도와 맞서라고
[우리문화신문=고명주 작가] 모르고 틈만 있으면 기어코 기어나오는 너 누군 잡초라 무시하고 밟고 가겠지 너에게도 소중한 세상이 있는 줄 모르고 밟혀도 뽑혀도 그래도 죽지 않는 너 누군 고생만 시키는 몹쓸 거라 하겠지 너에게도 피워야만 하는 삶 있는 줄 모르고 모진 추위 지나가고 또다시 만나게 될 너 누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손사래 치겠지 너에게는 너를 보고 싶어 다시 피는 줄도 모르고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가로등과 초승달 텅 빈 목로에 생맥주 두 잔을 나란히 놓고 마주 앉는다. 오늘도 공쳤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낮에 막벌이노동이라도 해야 하나 다 때려 치고 시골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식당설거지알바라도 나갈까요? 편의점은 너무 짜고, 파출부가 낫겠어요. 못나서 면목이 없네요. 그게 뭐 당신 탓인가요. 내일부터 생활정보지 뒤져봅시다. 그래요, 어떻게든 살아봅시다. 뒤따라 나서는 임차료와 공과금, 대출금 이자를 억지로 밀어 넣고 방화 문을 잠근다. 고생 많았어요. 당신도 애썼어요. 오른손엔 장갑 왼손엔 아내 손 연리지의 우리말이 뭘까요? “잇나무”라 하던데요. 우리의 그림자도 화석으로 남을까요? 그럴걸요, 우리의 이야기도. 왼손엔 장갑 오른손엔 남편 손 우리가 묻힐 이팝나무도 환생을 하고 새가 죽으면 노래가 되나요? 별이 내려와 샘물이 되고 어린 바위가 자라서 믿음이 되나요? 진실의 씨앗이 있나요, 싹 틔울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세상을 진실의 숲으로 덮을 수 있을 까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가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한 자에게만 복이 오게 할 수 있을까요? 등 뒤엔 가로등 하늘엔 초승달.
[우리문화신문=고명주 작가] 연길 새벽시장 빙관* 앞 새벽시장 난 그 새벽시장이 참 좋다. 아침마다 들려 또우짱*과 요우티아오* 먹으며 각지에서 키운 먹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저 먹거리, 팔거리 속에 수많은 사연이 차고 넘치리 자두 하나 달걀 한 줄 참외 송이버섯……. 오고가는 사람들 아침거리 준비하러 온 암씨들 한 손에 또 한 손에 두둑이 들고 걸어간다. 자식들 아침거리 준비해서 오손도손 먹을 생각하며 걸어들 간다. 사고파는 삶의 흥정 소리가 신선한 아침공기와 만나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누가 오라하지 않았어도 그저 있으면 좋은 새벽시장 그 삶을 통해 아이들 키우고 내일도 이곳에 와서 새벽시장을 준비하겠지. 들어오다 좋아하는 참외를 한 근 샀다. 덤까지 받은 자두 저것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없는 땀으로 범벅되었을……. 그 수고스러움을 한 움큼 들고 새벽시장을 나온다. - 2018년 8월 연길 * 빙관(宾馆) : 호텔 * 또우짱(豆浆) : 중국의 콩국(두유) * 요우티아오우짱(油条) : 기름에 튀긴 꽈배기
[우리문화신문=고명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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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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